“백 겁으로 지은 업장, 한 생각에 없어져라. 죄도 없고 마음 없어 그 자리가 비었으니, 빈 마음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일세”

노란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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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글]] 즉문즉설 '실수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0) 2019/10/19 PM 03:53

본문에 앞서 재미난 이야기 하나 보시고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옛날 달마대사의 제자인 혜가대사란 분이 계셨는데요

 

어느날 밤에 한 문둥병환자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와서 하는 이야기가 '저의 죄를 사하여주십시요' 라며 부탁을 했다고합니다

 

이 사람은 젊었을적 문둥병에 걸려 집에서 쫒겨나 홀로 산속에서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신이 전생에 큰 죄를 저질렀고 그 대가로 지금 이렇게 괴로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40대쯤 혜가대사를 찾아가 그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혜가대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너의 죄를 내놔봐라'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문둥병환자는 살피고 살펴보아도 내놀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놀것이 없습니다' 하자 

 

혜가대사는 '내 이미 너의 죄를 사하였노라'

 

그리곤 인가하여 스님이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문둥병환자는 나중에 3대 승찬대사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끝-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요

 

 

 

 

 

 

 

 

 

질문자는 말을 꺼내기 전부터 눈물을 글썽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저의 큰 실수로 주차해놓은 차가 미끄러져서 어떤 아주머니를 돌아가시게 했어요. 

 

처음에는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에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시간이 약인지 이제는 밥도 먹고 여기 나와서 용기 내서 질문도 하게 됐습니다.


예전 같은 일상생활로 들어가기 위해서 정신과 치료도 받으며 약도 먹고 사람들을 만나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제 나름대로 극복해 보려고 스님의 동영상을 수도 없이 봐 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봐도 돌아가신 분께 죄송하고, 그분 또래의 아주머니를 뵈어도 울컥 눈물이 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롭습니다. 

 

주변 분들은 세월이 약이라 하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이 사실들이 없어지는 건 아닐 텐데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돌아가신 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요?”

 

 

 

 

 

 

 

 

중간중간 흐느끼며 울먹이는 질문자의 모습에 심한 자책감과 괴로움이 전해져 왔습니다.

 

 

 

 

 

 

 

 

“질문자가 어떻게 살아도 돌아가신 분한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

 

 

 

 

 

 

 

 

질문자의 흐느낌과 깊은 한숨이 이어져 객석도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질문자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자기가 너무 위대한 줄 알아요. 

 

질문자가 무슨 재주로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돌아가신 분이 돈이 필요해요? 돌아가신 분이 음식이 필요해요? 돌아가신 분이 무엇이 필요하겠어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조금이라도 사죄가 될까요.”

 

 

 

 

 

 

 

 

“질문자가 어떻게 해도 돌아가신 분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네.”

 

 

 

 

 

 

 

 

질문자는 더욱 흐느꼈습니다.

 

 

 

 

 

 

 

 

“질문자가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한테 나쁜 것도 아니고, 

 

슬피 울면서 산다고 돌아가신 분한테 좋은 일도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은 이제 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에요.”

 

 

 

 

 

 

 

 

“그런데 그 죄스러운 마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네, 본인이 울면서 살고 싶으면 울면서 살고, 웃으면서 살고 싶은 웃으면서 살고, 

 

본인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지 돌아가신 분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내가 음식을 준다고 돌아가신 분이 먹을 수 있으면 음식을 드리고, 

 

옷을 준다고 입을 수 있으면 옷을 드리고, 돈을 준다고 받을 수 있으면 돈을 드리면 돼요. 

 

그러나 돌아가신 분은 그것을 받을 수가 없잖아요.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에게는 돈을 드리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돌아가신 분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과는 합의가 된 상태입니다”

 

 

 

 

 

 

 

 

“가족들과 합의를 했으면 됐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가 어떻게 살 건지만 정하면 돼요. 

 

그분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요. 

 

내가 웃으면서 산다고 그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울면서 산다고 그분에게 좋은 영향 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은 아무 영향도 줄 수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어차피 본인이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돌아가신 분에게 아무 영향을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이 문제만 남은 거예요.

 

질문자는 어떻게 사는 게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울면서 사는 게 좋겠어요, 웃으며 사는 게 좋겠어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면 돼요. 그분 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까요. 사건이 생긴 지 얼마나 됐어요?”

 

 

 

 

 

 

 

 

“두 달 되어가요.”

 

 

 

 

 

 

 

 

“그럼 두 달 전보다 지금의 상태가 더 나아졌어요, 더 나빠졌어요?”

 

 

 

 

 

 

 

 

“많이 좋아졌어요.”

 

 

 

 

 

 

 

 

“그것 보세요. 그러면 앞으로 1년 정도 지나면 조금 더 좋아질까요, 안 좋아질까요?”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2년 지나면 더 좋아질까요, 더 안 좋아질까요?”

 

 

 

 

 

 

 

 

“더 좋아지겠죠.”

 

 

 

 

 

 

 

 

“그러면 2년 후에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지금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이제 본인이 결정을 하면 돼요. 

 

돌아가신 그분 하고는 더 이상 아무 관계가 없어요. 

 

울면서 조금씩 좋아지다가 2년 후에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오늘부터 좋아지는 것이 나을지, 어느 쪽으로 결정할래요?”

 

 

 

 

 

 

 

 

“다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려놓아지지가 않아요.”

 

 

 

 

 

 

 

 

“내려놓든 안 내려놓든 놔두고 우선 이 결정부터 해보세요. 앞으로 1년, 2년, 3년 지나면 조금씩이라도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좋아질 겁니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좋아져서 3년 만에 좋아지는 게 나아요, 오늘부터 좋아지는 게 나아요.”

 

 

 

 

 

 

 

 

“오늘부터 좋아지는 게 낫습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좋으면 3년 시간을 들여서 좋아지고요.”

 

 

 

 

 

 

 

 

“지금부터 좋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로소 질문자의 얼굴이 가벼워졌습니다. 청중도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분에 대한 죄스러움이 강해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그것은 정신 질환이에요. 

 

더 나빠지거나 그대로라면, 그것은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해요.


두 달이 지나고 보니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는 것은 자연치유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1년 지나면 조금 더 좋아질 것이고, 3년 지나면 최소한 웃고 다닐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에요. 

 

상황은 아무 변화가 없지만, 그때 가서 어차피 좋아질 거면 지금 좋아지지 무엇 때문에 3년 끌고 좋아지려고 해요? 

 

제 말에 동의가 된다면 당장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요. 

 

그런데 ‘스님 법문 들을 때는 그럴 듯한데 안 좋아집니다’ 하면 3년 시간을 끌고 좋아지면 돼요.


그래도 죄스럽거든 집을 팔아서 그분 가족에게 다 줘 버리고, 

 

그래도 죄스럽거든 있는 돈을 싹 찾아서 그분 가족에게 줘버리고, 그래도 죄스럽거든 속옷만 빼고 싹 벗어서 줘버리세요. 

 

혼자서 울고 있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것은 착한 척하는 자기만족이에요.


그런다고 그분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을 팔아서 돈을 주면 가족이라도 도움이 되지만 질문자가 우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짓을 한다는 것은 양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서 그런 겁니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10년 지나면 나도 웃고 살 거야. 그런데 10년 지난다고 그분에게 무슨 변화가 있을까?

 

죽은 사람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가족한테 내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내가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 10년 뒤에 좋아질 필요가 뭐가 있나?’


그래서 내가 히히 웃고 다닌다고 상대편 가족이 와서 ‘어떻게 사람이 그래 놓고 웃고 다니느냐?’라고 물으면 

 

‘그러면 울고 다닐까요?’ 하고 물어보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저도 울고 다녔는데 법륜 스님하고 얘기하니까 울고 다니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했어요. 

 

베개만 젖으니 웃고 다니라고 했어요.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하니까 그 사람 웃을 것까지 저보고 웃으라고 했어요.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저도 동의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남편이 돌아가시면 잠깐 동안만 울고 그 후에는 웃어야 합니다. 

 

시집 한 번 더 갈 수 있으니 좋잖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운다고 그 사람이 살아오나요? 운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돼요?


그러면 ‘그래도 눈물이 나잖아요’라고 하는데, 그래서 잠깐만 울으라고 하는 거예요. 

 

옛날부터 3일만 울으라고 해서 3일장, 그래도 좀 더 울고 싶으면 5일만 울으라고 5일장을 했습니다. 

 

절에서는 49일만 울으라고 해서 49재를 지냅니다.

 

49일이 지난 다음에는 웃으면서 지내라는 거죠.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 죽고,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대신 죽기라도 하겠지만,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자기감정의 낭비밖에 안 돼요. 

 

‘남편이 죽었는데 넌 뭐가 좋다고 웃고 다니냐’ 이렇게 남이 오해할 수는 있겠죠. 

 

왜냐하면 우리는 슬프게 사는 게 잘하는 줄 아니까요. 그러면 조금 우는 척하세요.” (모두 웃음)

 

 

 

 

 

 

 

 

“네.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나고 한 분이 스님의 답변에 불만족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이 분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질문자는 마음에 죄책감이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해소를 했으면 좋을까 싶어서 질문을 드린 것 같은데,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질문자에게 미진한 부분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가 밝아질 수 있게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부족하다고요? 그러면 질문한 분한테 마이크를 한 번 줘 보세요.

 

스님과 대화를 하고 나서 자기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았어요? 

 

아니면 아직도 전혀 해결책을 못 찾았어요?”

 

 

 

 

 

 

 

 

“저분 말씀처럼 제가 정말 너무 큰 죄책감 속에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좀 편하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방금 전에 ‘착한 척 눈물 흘리지 마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마음 속에서 죄책감을 탁 털어 버리고 싶고, 스님 말씀처럼 3년 후에 괜찮아질 거 오늘부터 바로 괜찮아지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 말은 사람을 죽여 놓고 자기는 죄책감을 탁 털어버리고 편하게 살겠다는 얘기 아니에요? 심보가 나빠요. 

 

진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3년간 울어야죠. 

 

아니 10년은 울어야죠. 그래도 죄가 안 갚아져요.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실수로 죽여 놓고 자기는 하루 만에 죄책감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나요?”

 

 

 

 

 

 

 

 

스님의 말씀에 질문자는 깊고 깊은 한숨을 쉽니다.

 

 

 

 

 

 

 

 

“한번 생각해 봐요. 그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잖아요. 

 

죄를 지어 놓고 왜 벌을 안 받으려고 해요. 죄를 지어 놓고 하루 만에 생글생글 웃겠다면 그건 나쁜 사람인 거잖아요.


제 얘기는 죄를 지은 바가 없는 도리를 얘기하는 거예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고, 죄를 지은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 오늘부터 웃어야 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죄를 지었다고 자꾸 주장하니까 '그러면 10년간 울어라' 이 말이에요. 

 

저는 죄를 지은 바가 없다는 도리를 얘기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죄를 지은 줄 알고 울다가 ‘아, 내가 죄를 지은 바가 없네’ 하고 깨달으면 지금부터 웃는 거예요.

 

본인이 생각해도 죄를 지어 놓고 3일 만에 방글방글 웃는다는 건 모순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착한 척하지 말라는 거예요.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아야 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죄를 지었는데 돈 좀 준다고 해결되고, 합의한다고 해결이 돼요? 죽을 때까지 참회를 해야죠.


그런데 저는 ‘죄를 지은 바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질문자는 계속 ‘나는 죄를 지었어요’ 

 

이렇게 주장하니까 ‘그래? 그러면 실컷 울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제 좀 이해가 되세요?”

 

 

 

 

 

 

 

 

“네.”

 

 

 

 

 

 

 

 

질문자의 짧은 대답에 좀 전과는 달리 가벼움이 묻어 보입니다.

 

 

 

 

 

 

 

 

“죄를 지었으니까 집을 다 팔아서 그분 가족들에게 갖다 주고, 계속 우세요. 

 

그분은 죽기까지 했는데 질문자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요. 계속 울어야죠. 죄를 정말 지었다면 죗값을 받아야죠. 

 

돈 좀 준다고 해결이 되나요? 며칠 운다고 해결이 되나요? 그런데도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그 심보가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데 스님이 딱 보니까 질문자는 죄를 지은 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웃고 살아라고 얘기한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됐어요, 아직 안 됐어요?”

 

 

 

 

 

 

 

 

“해결됐습니다.” (모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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