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국교 선포(380~391)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성부(하느님)과 성자(예수)가 별개라고 주장한 아리우스파를 배격하고, 삼위일체설을 체택한 니케아 신경을 발표한다. 다만 로마 제국 동쪽에서는 아리우스파가 우세여서 공의회 결과와 상관없이, 성부=성자를 주장해 공의회에서 승리한 아타나시우스를 주교직에서 추방시킨다. 이후 아타나시우스는 복권, 추방을 반복하다 366년 정식 복권된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니케아 신경 신봉자로 381년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확정하고 삼위일체설만을 인정한다. 이 무렵 아리우스파 기독교도들은 모든 도시에서 집회를 금지당했고 정통 가톨릭교회로 개종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385년부터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더욱 엄격히 금지하였고, 391년 로마와 이집트에서 일체의 비기독교 의식을 금지하고 이듬해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형태의 이교 숭배를 제국의 전역에서 불법으로 규정했다.
431년 에페수스 공의회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는 예수를 '인간'으로 보았는데, 당시는 예수가 신성+인성의 복합체로 여기는게 주류라 네스토리우스는 파문되고, 그 일파는 이단시 된다. 현재도 존재함.
451년 칼게돈 공의회 (오리엔탈 정교회)
예수가 인성+신성 복합체라는 것을 부정하고, 예수는 오직 신의 현신(신성)만을 주장했다. 다만 신성이 육체화 했다는 것은 받아들인다. 이집트의 "콥트 정교회" 시리아와 인도의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 에티오피아의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등이 현존한다.
11세기 대분열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분열)
11세기, 기독교의 5대교구(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 예루살렘)중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3대교구가 이슬람 세력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연히 나머지 2교구인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위상이 높아지는데, 그에따라 경쟁도 심해져갔다. 이때부터 로마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리인" 을, 콘스탄티노플 주교는 "전 세계의 총대주교"라고 자칭하면서 대립이 심해진다.
쟁점은 세가지로,
1. 5대 교구중 어디가 더 위인가 = 누가 짱이냐?
2. 성상 논쟁 = 로마는 성상을 중시했지만 이슬람 영향을 받은 동방에서는 성상을 우상으로 여겨 8세기 초 동로마 황제 레온 3세가 성상파괴령을 내리기도 했다.
3. 삼위일체 논쟁 = 7~8세기경 서방에서 "성령이 성부에게서 발현된다"를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서 발현된다"로 성자(예수)를 격상시킨다. 동방은 서로 상의도 없이 로마 주교만이 결정한 것이라고 반대.
하여간 3가지가 서로 안맞아서 서로 파문하고 남남된다. 현재 러시아 및 동유럽 쪽에서 많이 믿는게 동방 정교회.
성공회
성스럽고 공변된 교회란 뜻으로 거창하지만, 헨리 8세가 이혼하고 싶은데 교황이 허락 안해주니까 빡쳐서 만든것. 개인적인 문제로 만든 종교라 영향력이 왕 아래에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교리적인 측면은 로마 카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다.
16세기 종교개혁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중요한건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죄를 없애준다가 아니라 죄에 따른 벌받는 것을 면하게 해준다. 문서로 파는 건 아니고 고해성사 비슷하게 돈내면 해줌)를 비판했으며, 이에 영향받은 장 칼뱅은 종교의 권위가 로마 교황청이 아닌 성경에 있다고 주장했다. 칼뱅의 제자인 존 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세운것이 장로교이며, 잉글랜드에서도 예배나 의식등 카톨릭과 별 차이 없던 성공회를 비판하며 청교도로 발전된다.
이후 교리 해석에 따라 침례, 감리, 성결, 루터회 등등등으로 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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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교
예언자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창시한 종교로, 예수와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여긴다.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를 인정하고, 예수가 행했던 모든 기적도 인정하며, 최후의 심판일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신의 아들, 혹은 신의 현신설을 부정하고 25 예언자중 하나로 여긴다는 것. 당연히 삼위일체설도 부정하고 우상을 금지한다. 알라는 하나님(The God)을 의미하며, 꾸란 한국어판에서도 알라는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이슬람교는 성상(신이나 예언자를 묘사한 그림, 조각 등)을 우상으로 여겨 금지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십자가나 회화, 조각같은 상징물이 없다. 그나마 있는건 달과 천사의 별.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탈출할 때 빛이 되어서 앞을 밝혔다고 한다. 보통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 표시된다.
순니 파, 시아 파
7세기 이슬람의 대분열 때 시아파가 알리와 그의 후손들만을 진정한 칼리파로 추종하면서 발생하였다면, 수니파는 공동체에 의해 선출된 칼리파면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라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또한 순니파는 이슬람의 교리와 관련하여 하디스(이슬람의 경전으로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만든 꾸란(성경 내용이 포함되있다.)과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전승록인 하디스(Ahadith)가 있다.)에 바탕을 둔 근거가 없다면 인정하지 않는 고증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632년 무함마드 사망직후 후계자 선정을 놓고 아부 바르크(1대 칼리파)와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4대 칼리파)가 대립하여 분열이 시작 된다. 수니 파는 아부 바르크를, 시아 파는 알리를 지지했는데, 661년 4대 정통 칼리파였던 알리가 암살당하면서 통합 이슬람 시대는 끝나고 순니와 시아, 그 외 여러파로 분리된다. 중요한 것은 종파가 아니라 학파로 구분 한다는 점. 2004년 200명이 넘는 이슬람 학자들이 모여 8개 학파를 공표했으며,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같은 종교로 여긴다.
이들 종교는 모두 중동 셈족 종교인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기독교는 구약을 인정하고 이슬람교는 구약과 예수를 인정하지만, 유대교는 예수도, 무함마드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중에 등장한 종교일수록 대체로 전에 등장한 종교의 내용을 포용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미 있는 것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살짝 덧붙이는 게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