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람 소리에 오늘도 아침일찍 잠을 깼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다니 마치 이등병 시절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여행 오기전엔 방바닥에 쩍하고 달라붙은 껌딱지 마냥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빈둥대는 생활을 했었는데
여행을 오니 하루하루가 재밌는게 몸에 활기가 드는 느낌입니다.
비행기 타는 순간에도 만사가 귀찮아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오늘이 로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니 만큼, 안가본데를 가야겠습니다.
일단 처음 목적지를 보르게세 미술관으로 정하고, 아침 일찍 움직입니다.
이동하던 중에 찍은 트레비 분수. 역시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로 꽉 들어차 발디딜 틈도 없던 분수 바로 앞까지 텅 빈것이
역시 아침일찍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0.2초간 듭니다.
분수 옆에 항상있던 노점상들도 안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저같이 아침일찍부터 움직이는 관광객들 뿐입니다.
일찍자고 일찍일어나는 것이 아무래도 전 새나라의 착한 어린이인가 봅니다. *^^*
자, 이제 트레비 분수를 지나 스페인 계단으로 향합니다.
오...텅 비었습니다. 역시나 이른시간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숙소에서 지하철도 안타고 걸어다녔더니 발바닥이 아픕니다.
좀 쉬기도 할겸, 앉아서 사람구경을 합니다.
한낮이나 밤에 오면 발디딜 틈 없이 꽉 차는 계단이지만,
이른시간이어서 인지 가족단위의 소수 관광객들 뿐입니다.
이런 관광객들 사이로 꽃을 든 남자가 지나갑니다.
으음...
이 꽃남이 아니라;
꽃 강매꾼 입니다. 막무가내로 손에 꽃을 쥐어주고 1~2유로씩 강탈해 갑니다.
한번 건네준 꽃은 돌려받지도 않으니 그냥 무시하는게 상책 입니다.
쉬기도 했겠다. 사람구경도 했으니 다시 이동합니다.
지나가다 보니 골목 사이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영묘가 보입니다.
제정 로마의 기틀을 잡은 초대 황제의 무덤이지만, 그 업적이나 명성에 비해 상당히 초라한 모습입니다.
인간이 얻은것중 영원한것은 없다고, 그 대표적인게 권력이 아닐까 합니다.
영묘를 지나 시내 북쪽에 위치한 보르게세 공원으로 이동합니다.
보르게세 공원은 로마에서 가장 큰 녹지공원으로 안쪽에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넓은 공원을 한참 해매다 겨우 발견한 보르게세 미술관 입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17세기 초에 건설되어 계속 보르게세가(家)의 소유였지만
1891년 P.보르게세의 파산으로 600여점의 수집품을 국가가 사들여 미술관으로 개장했다고 합니다.
베르니니와 보티첼리의 작품이 있다보니, 아직 이른 아침시간임에도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서고 있습니다.
겨우겨우 차례가 되서 안쪽에 입장하려고 하니, 예약 했냐고 묻습니다.
응? 예약?
벙찐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안했다고 하니, 예약을 안했다면 5시 이후에나 출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내가 입장불가라니!! 으허헝 슈발ㅜ
한시간 반이나 기다려서 겨우 들어갈랬더니 예약 안했다고 안된다니...
그제서야 어제 잠결에 사람들이 예약 어쩌구 했던 소리가 생각 납니다.
그냥 원래부터 회화에 관심이 없었으니... 하는 마음으로 쓰린 속을 달래고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ㅜ
어제 약속했던 분들과 만나 주말마다 열리는 로마 벼룩시장으로 이동합니다.
원래 계획은 베드로 광장에 가서 교황님 한번 보는 거였지만,
다들 이래저래 약속시간도 늦고, 볼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 벼룩시장에 가는걸로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벼룩시장 가는 길을 아무도 모르다보니 길을 물어봐야 합니다.
옆의 이탈리안 아줌마에게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어보자 자기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서 지갑은 절대 꺼내지 말고 항상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벼룩시장쪽에 소매치기가 많다던데, 아무래도 진짜 조심해야 하나 봅니다.
버스에서 내려 감사하단 인사를 한뒤, 본격적으로 시장구경을 합니다.
로마의 벼룩시장은 없는게 없다할 정도로 온갖것을 갖다놓고 팔고있습니다.
각종 악세사리부터 옷, 가방등등 없는게 없습니다. 로마 여행을 하다 도둑을 맞으면
이곳에서 찾을수 있다란 말이 있을정도로 온갖 물건들과 장물들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중에 눈길을 잡아 끄는게 있습니다.
한글로 씌여진 - 식용 - 츄리닝이 걸려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상한 한글이 씌여 있는 옷을 입은 외국인들은 봤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니 그냥 헛웃음만 나옵니다.ㅋ
이런 옷이나 악세사리, 잡화들 뿐만 아니라 골동품들도 있습니다.
무슨 세면대에 이상한 청동품들...등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슨 큰 소리가 납니다.
깜짝놀라 뒤를 보니 같이온 일행중 한분이 집시에게 걸려 지갑을 뺏길뻔 했습니다.
아기 모양의 인형을 던지고. 그것을 받으려는 순간에 지갑을 채가려 한 것입니다.
아테나 정우성이 당한거랑 비스끄므리하게...
허...ㄹ
2006년 부시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때 집시소굴인 테르미니역을 보고싶다고 하자,
열받은 이탈리아 총리가 집시들을 싸그리 잡아 국경밖으로 내쫓았다고 하던데 아직도 일부는 남아있나 봅니다.
지갑을 조심히 한채로 캐리어 구경을 합니다. 여행 오기전에 배낭하나에 20kg를 꽉꽉 채워왔더니
계속매고 다니면 어깨가 무너질것 같아 짐을 좀 분산시켜야 겠습니다.
중간크기가 15유로. 비싼건 아니지만 정찰시장도 아닌이상 흥정은 필수! 12유로에 살수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릿하더니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합니다.
캐리어도 싸게 샀겠다. 시장도 슬슬 접는 분위기겠다. 다시 시내쪽으로 갑니다.
역시나 비가와도 사람이 많긴 하지만, 확실히 어제보단 수가 줄은 느낌입니다.
비오는 날의 판테온은 구멍으로 비가 안들어 온다는데 직접 그모습을 볼수 있다니 운이 좋습니다...만
어?
비가 들어옵니다... 그것도 아주 그냥 호쾌하게 쏟아집니다.
비가와도 빗물이 안들어온다더니.. 개 뻥이었습니다.
비가오면 바닥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물빠짐을 위해 배수구도 뚫어놨습니다.
이런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줄 알고 있었다니...
이런 거짓정보를 유포해 저같이 선량한 사람을 현혹시키는 나쁜놈을 찾아 혼꾸멍을 내야겠습니다.
원래 만신전 이었던 판테온은 지금은 카톨릭의 성당으로 쓰여 주말이면 결혼식도 열립니다.
만신전 안쪽에는 여러 인물들의 무덤이 있습니다.애무..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와 라파엘로등 중세의 예술가들이 묻혀 있습니다.
재밌는것은 이탈리아 축구선수 또띠가 죽으면 여기 묻자는 말이 많답니다.
인기야 둘째치고, 아직 살날도 많은 사람을 벌써 묻을 생각부터 하다니.ㅎㄷㄷ
비가 와서 그런지 맑았던 어제보단 사람이 조금 줄은거 같습니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다보니 어느덧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집니다.
계속 이곳에 있을순 없으니 비가 조금 약해졌을때 움직여야 합니다.
판테온을 나와 나보나 광장으로 이동합니다.
으음...역시나 비가와서 인지 화가들도 별로 없고 관광객들도 생각보다 별로 없습니다.
그냥 사진이나 몇장찍고 다른곳으로 가야겠습니다.
어제 야경만 보고 왔던 산탄젤로 성으로 이동합니다.
산탄젤로 성. 원래 하드리아누스의 영묘였지만 현재는 무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성 꼭대기에 보이는 청동상은 대천사 미카엘 상입니다.
재미있는것은 이 미카엘 상이 번개를 끌어들여 몇십번이나 녹아버려 계속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청동상 위에 피뢰침을 세워 놨다고 합니다. ㅎ
날이갠 탓인지 사람들이 많아진것 같습니다.
성 바깥쪽에서부터 줄을 서서 안쪽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합니다.
표도 끊었겠다.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하드리아누스 영묘의 복원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로마황제 무덤위에 지어진 기독교의 성이라... 음...
성 내부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쓰이던 무기를 전시 해놓고 있습니다만,
촬영은 금지 되어 있습니다.
촬영금지인줄 모르고 한장 찍었;
좁은 내부 통로를 따라 주~욱 올라가다 보면 대천사 미카엘 상이 있습니다.
로마에 페스트가 창궐했을때 하늘로부터 미카엘 천사가 나타나 페스트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 미카엘 상을 만들고 성의 이름을 안젤로(Angelo, 천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성 상층부에서는 바깥쪽을 내려다 볼수 있습니다. 높은곳에 올라오니 시야가 확 트이는게 좋습니다.
방금 비가 갠 탓인지 공기도 깔끔하니 시원합니다.
테베레강 앞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이 보입니다.
일직선 대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어 좋아보이지만 광장을 설계한 베르니니는 원래 좁고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 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광장을 보고 받는 충격과 감동을 극대화 하려 했다고 합니다.
무솔리니가 아무생각 없이 뚫은 이 도로는 그러한 베르니니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산탄젤로 성까지 보고나니 어느덧 점심 시간도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배가 고프니 뭘 먹긴 해야겠는데...
다들 처음이니 딱히 아는 음식점도 없고... 이틀전에 갔었던 파스타 집으로 갑니다.
확실히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서 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의 추천메뉴-피자 한판과 스파게티 두개를 시킵니다.
추천 피자. 맛은 그럭저럭 입니다.
3인이 먹기엔 조금 많은 양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스타 하나가 3인분 짜리입니다.
입에 맞지도 않는 파스타를 억지로 쑤셔대니 구역질이 납니다. 돈이 아까우니 먹긴 해야겠고...ㅜ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파스타ㅜ 어찌어찌 절반까지 먹었지만 더이상은 무리. 미련없이 일어납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밖으로 나오니 베네치아 광장에서 웨딩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색이나 얼굴을 보니 동아시아 3국중 하나인것 같은데...
일반인이 웨딩촬영하러 여기까지 오진 않을것 같고... 무슨 화보집 촬영인가 싶은가...
했는데 그냥 돈많은 중국인 같습니다.
밥도 먹고 구경도 했겠다. 다른곳으로 이동합니다.
판테온 옆에 있는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교회로 갑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중 유일한 고딕식 교회로, 교회 앞에 있는 코끼리 조각상은 베르니니의 작품입니다.
이 성당 안에는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의 무덤, 베르니니와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로마의 다른 관광지들에 비해 관광객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편입니다.
어느덧 해도 뉘엿뉘엿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저녁먹을 시간입니다.
밥먹으러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숙소 근처에 있는 젤라또 집에서 젤라또 하나 먹습니다.
젤라또도 먹었겠다. 이젠 사람들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옵니다.
내일이면 나폴리로 떠나는 날입니다. 아침 기차를 타고 가야 하니 미리 짐을 다 싸놓습니다.
그럭저럭 지낸것 같은데 벌써 6일째라니, 시간이 참 빠른것 같습니다.
짐도 다 쌌겠다. 저녁 밥을 먹고 야경구경하러 밖으로 나옵니다.
분수근처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바로옆에 있는 스페인계단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구경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혼자 있는건 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좋습니다.
이렇게 로마의 마지막 날도 갑니다.
내일은 세계 3대 미항(美港)중 하나라는 나폴리로 내려갑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