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인기 아이돌 가수인 오카다 나나는
당시 라이벌 아이돌과의 경쟁으로 인해 심신이 지치고 실의에 빠졌음에도
자신의 열성팬이 곰돌이 탈을 쓰고 직접 응원 영상을 찍어 보내오는 비디오에 힘을 얻어
재기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러던 오카다 나나는 외출 후 집에 돌아올 시
쿠션과 옷가지들이 미묘하게 바뀌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후 오카다 나나는 예의 곰돌이 탈을 쓰고 찍은 영상을 담은 비디오를 받고는
끔찍한 진실과 조우하기에 이른다.
바로 힘들 때마다 기운을 북돋아 준 그 '곰돌이 탈을 쓴 열성팬'이 오카다 나나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그녀의 침대에 눕고 옷장의 옷을 꺼내는가 하면
자신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7년 7월 15일, 일을 마치고 매니저와 함께 사무소에서 내준 자신의 자택 맨션에 도착해
평소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던 오카다 나나가 베란다 창문을 열고는 침대에 누워
당시 출연하던 NTV의 '우리들의 아침' 대본을 읽던 중 잠들어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오카다 나나의 광팬이 몰래 옆방의 객실을 통해 베란다를 타고 무단침입하고 만 것.
그렇게 광팬에 의해 감금당했던 오카다 나나는
이후 강도를 당했다고 언론에 밝히나
붙잡히게 된 광팬이 감금 동안 그녀를 성폭행함은 물론
입에 담기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고 자랑스레 공표하며
그녀의 연예계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나게 되었고
그 광팬은 교도소에서 오카다 나나를 좋아하던 죄수들로부터
집단 린치 등의 괴롭힘을 받아 출소 후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일본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오카다 나나는
불과 18세의 나이에 겪은 끔찍한 일로 인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중년인 최근에서야 연기자로 간간이 연예계 생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은 물론 국내에도 널리 퍼져 있던 해당 이야기는
2011년 4월 10일에 공중파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를 통해 소개되며
더욱 발 빠르고 넓게 웹 사이트들로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끔찍한 이야기가 모두 진실일까?
당시 아이돌 가수로의 입지를 다졌던 18살의 오카다 나나는 1975년 드라마에 데뷔해
1976년엔 영화 '청춘의 구도'를 통해 일본 영화&TV 프로듀서 협회가 선정한 신인상을 수상하며
가수와 연기자의 길을 동시에 걷게 된다.
그리고 1977년 7월 15일, 일을 마치고 22시 30분경
당시 28살이었던 매니저에 의해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자신의 고급 맨션 8층에 도착한 오카다 나나는
당시 출연 중인 NTV의 '우리들의 아침' 대본을 보며 침대에 누워 있던 중 그만 잠이 들어버렸고
평소 에어컨 바람을 싫어해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은 사이
모자를 눌러쓴 복면 차림의 괴한이 침입하게 된다.
괴한은 20cm가량의 과도를 쥐고 있었는데
잠에서 깬 오카다 나나가 괴한을 향해 저항하던 중
그만 과도에 의해 오른손 엄지 관절과 왼손 손바닥에 30바늘에 달하는 중상을 입게 된다.
이에 당황한 범인은 처음부터 준비했던 넥타이 4-5개를 사용해
오카다 나나의 양손과 양발을 묶고 재갈을 물리는 한편 침대 시트로 그녀의 손을 감싸놓은 뒤
자신을 팬이라고 밝히고는 새벽녘에 나가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신곡 노래와 안무를 추는가 하면
갈증이 난다며 냉장고에서 토마토를 꺼내 먹기도 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오카다 나나는 이후 토마토를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2시경 무단 침입한 괴한은 7시가 되자 경찰에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는
오카다 나나의 손발을 풀어준 뒤 그녀의 피가 묻은 시트 등을 가지고 현관문을 통해 떠났으며
오카다 나나는 곧장 사무소의 사장에게 연락하며 경찰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초기 사무소는 해당 사건에 대해 부정하는 방침을 세웠으나
경찰의 조서가 진행됨에 따라 결국 오카다 나나의 감금 사실을 인정하고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양손에 붕대를 감싸고 기자회견에 나온 오카다 나나 본인은 오히려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이틀 후 예정되어 있던 드라마 '우리들의 아침'에 출연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오카다 나나는
범인은 30살 전후에 180cm 전후의 신장, 그리고 입가에 점이 있었다고 증언하였으나
눌러쓴 모자와 복면으로 인해 실질적인 몽타주 작업이 불가능했고
범인은 끝내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잡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오카다 나나의 부정에도 감금 동안 성폭행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자유롭지 못하게 되며
아이돌=청순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되나
해당 사건 이후에도 7장의 싱글앨범과 13장의 기타 음반발매,
그리고 1980년부터 본격적인 여배우 입문길에 오르며
매년 수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필모그라피를 자랑하는 중견배우이자
수십 편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및 CM에 출연하며 꾸준한 연예계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일본 웹 사이트들을 통해 괴담이 퍼지며 정형화된 루머가 만들어지게 이르렀으며
이는 일본의 유명 도시괴담 중 하나인 '스토커 비디오' 이야기가 뒤섞여 국내에 잘못 전파되기에 이른다.
실제론 사건 당시 일본 경찰이 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으나
추가 증거가 부족해 범인 검거에 실패했으며
이는 오카다 나나가 범인의 넥타이에 의해 감금 상태가 된 것 외에는
추가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추정이 무게를 얻고 있다.
(오카다 나나의 예상치 못한 저항으로 생긴 출혈로 인해 범인이 당황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음)
때문에 이후 붙잡힌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자랑하며 오카다 나나의 성폭행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은
흔한 웹 사이트를 통한 괴담이었으며
실제론 해당 범인이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도 잡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선 이 괴담과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존재하는데
야쿠자 생활을 하다 교도소에 복역하는가 하면
출소 후 소설가로 등단해 자신의 교도소 시절 체험담으로 인기 작가에 오르기도 하며
이후 만화 '레인보우 2사6방의 7인' 원안을 집필하기도 한 아베 조지가
당시 오카다 나나를 성폭행했다고 자랑하는 범인을 교도소에서 두들겨주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 그 자신이 오카다 나나의 팬이었기 때문.
또한, 당시 오카다 나나는 맨션에서 혼자 살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친과 함께 살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사건 당일은 모친이 없던 날이었으며
'서프라이즈'를 통해 방송된 스토커 비디오 이야기도 일본의 유명 도시괴담이 섞이 이야기일 뿐이다.
(어느 날 한 여성이 배달온 비디오를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시청했는데
영상 속 남자가 괴이한 춤을 추고 있었고 배경이 그녀 자신의 집이었다는 이야기)
현재 오카다 나나는 중견 여배우로서 계속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으며
지금도 적지 않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도 미혼인 채로 독신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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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본의 인기 여자아이돌이 오타쿠한테 감금당하고 성폭행 당해서
인기 박살나고 연예인 생활 쫑남.
(나도 여기까지만 알고있었음)
그런데 그건 진실이 아님
강간도 안당했고 범인도 못잡음 ㅇㅇ
지금도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