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윤봉길의사에게 도시락과 수통 폭탄을 전달하여
거사를 결행캐 하였다.
윤봉길의사는 폭탄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김구선생에게 말했다.
"제 시계는 6원짜리인데 선생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시계를 바꾸도록 합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몇 시간밖에 더 쓸 일이 없지 않습니까."
김구선생은 시계를 받고 "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라고 대답했다.
윤봉길의사의 희생으로 인해 일본군의 막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도시락 폭탄의 자폭실패 이후 의연히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는 이사건을 보고 "중화군사 100만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한사람의 조선인이 해냈다" 라고 격찬 후 임시정부의 지원을 약속했다.
독립후 김구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어머니를 찾아가 시계를 전달하였으나
어머지는 처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구선생은 죽는 날까지 시계를 곁에두었으며
지난 2006년 전시회에 74년이 지난후에야 두 시계가 같은장소에 모일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