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와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것에 대한 갈등속에 빠져있다.
돈, 명예, 지위 등등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사회가 정한 규칙 속에서 그것들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또 좌절하기도 한다.
그 와중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한 '불법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그것들을 강탈하는 이들도 있다.
흔히들 범죄자. 범죄 용의자. 나쁜놈 등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들의 목적은 대부분 금전이다.
왜 그들은 돈을 위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보다 돈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해답이 아니다.
연출된 장면이지만 크리스찬베일 감독의 '다크나이트'에 히스레저가 연기한 조커를 보자.
그에게 있어서 돈은 그것의 태생처럼 수단일 뿐이다.
돈을 원하는 이들은 한국사회의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된, 자본에 주입된 힘에 도취된것 뿐이다.
'합법적'인, 자본의 유무로 힘을 판단하는 한국식 자본주의 아래서 그저 권력에 취하고 싶었던것일 뿐이다.
돈과 범죄자 이야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한것은 성폭력 피의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성욕이 일어날때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욕구를 해결한다.
대부분 자위행위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며 부족한 경우엔 '불법'이지만 자본으로 욕구를 해소할 대상을 찾기도 한다.
(다른 몇가지, 욕구해소를 위한 방법이 많겠지만 중요한게 아니기에 넘어가자.)
그렇기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남여 모두를 포함해)을 단순히 욕망에 지배당한 어리석은 인간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대부분의 성범죄의 대상이 여성이고 행위자가 남성인것은 남성의 욕망이 더 강렬해서가 아니다.
(언제까지 그런 마초히즘,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허우적댈것인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받고 싶어한다. 권위와 권력앞에 굴복하는 이들을 보며
그들은 정서적 포만감을 느낀다.
자신의 정서적 포만감을 위해 상대적으로 힘없고 복종시키기 쉬운 여성을 타켓으로 했으며
여성을 성폭행함으로 그녀를 정복했다 라는 사회적 인식또한 이에 일조 했을것이다.
화학적 거세로 그들의 성적 욕구를 억제한다면 성 범죄는 줄어들지 모른다. 하지만 또다른 곳에서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보게될것이다.
우리의 역활은 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시키는것보다 정서적 욕구를 해소시켜 줘야 한다.
자존감과 자신감. 그들 스스로 자신의 자존감을 느낄때 성폭력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여성들의 눈물이 줄어들리라.
/그래서 '격리'가 필요한게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