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유년시절에 영향을 줬던 것중 하나는 슈퍼전대 시리즈였습니다. 당시엔 비디오를 대여점에서 빌리려면 삼천원 가량의 돈으로 주고 빌려야 했었고 만약 빌린다 해도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으면 볼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윗집에 살던 있는 집 형 덕분에 비디오로 바이오맨, 후뢰시맨 같은 특촬물을 제법 챙겨봤었습니다.
그렇게 끝나버렸을 것 같았던 슈퍼전대에 대한 추억은 TV에서 파워레인저 시리즈를 방영하면서 이어져 나갔고 나이가 제법 들었을 땐 투니버스에서 아바렌쟈, 마지렌쟈를 종종 보며 프로그램을 즐겼습니다. 최근에는 EBS에서 삼국전이란 국산 특촬물을 방영하고 좋은 결과를 거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근근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의외로 말이죠. 이렇게 인기도 많고 시리즈도 많은 슈퍼전대인데 정작 게임으론 큰 재미를 못봤습니다. 슈퍼로봇대전을 만든 반프레스토가 슈퍼특촬대전이란 것을 만들었지만, 그닥 좋은 게임은 아니었고 나머지는 액션게임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파워레인저 리부트를 기념으로 관련 게임이 하나 나왔었는데 그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슈퍼전대는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고 그렇기에 게임을 만들어도 어린이를 타켓으로 만드는 건 당연합니다만, 특촬에서 추억을 느끼는 어른들을 위한 게임 정도는 나올 법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슈퍼로봇대전처럼 말이죠.
지금부터 이야기할 크로마 스쿼드가 딱 그런 게임입니다. 성인들을 위한 슈퍼전대를 주제로 한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1. 게임의 장르는 전형적인 SRPG
게임을 간단히 소개하면 특촬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과 동시에 감독의 요구사항에 맞춰 쇼 프로그램을 찍어 팬과 수익을 얻어 점점 큰 사무소로 성장해 나가는 시스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얻은 보상으로 장비를 비롯한 성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주인공을 강화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전형적인 SRPG라 보시면 됩니다.
뻔한 시스템인데 테마를 제대로 잡아 뻔하게 보이지 않는게 크로마 스쿼드의 특징입니다. 캐릭터를 강화하는 건 사무소 시설을 업그레이드 한다는 말로 꾸몄고 캐릭터들의 장비는 특촬에 이용하는 가품으로 장비마다 외관이 달라 B급 특촬제작 팀에서 A급 팀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슈퍼전대의 특징을 게임에 담아내기 위해 어떤 장르가 어울리는지 고심한 흔적이 보이고 거기서 끝내는게 아니라 자칫하면 뻔한 SRPG가 될 수 있었던 게임을 슈퍼전대의 테마에 맞춰 구성함으로서 단순히 자금을 사용해 캐릭터를 강화하는 시스템인데도 특촬 사무소를 운영하는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이 부분은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로마 스쿼드는 단순히 적절한 테마를 사용한 것에서만 끝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운영의 요소에 힘을 붙여줬습니다. 시청률, 스폰서 그리고 팬들로부터의 메시지는 내가 촬영하는 특촬이 게임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변화하는지 알수 있어 게임 속 시청자와 소통하는 느낌이 납니다. 칭찬해 주고 싶고 대단한 부분입니다.
2. 출동하라 강철전대 파이브 스틸!
위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크로마 스쿼드는 특촬이란 테마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한 게임이고 이는 당연히 주인공인 ‘스쿼드’에게도 적용됩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 다섯의 외형과 변신후 색상을 지정하여 나만의 팀을 꾸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으며 전대물의 법칙을 따른 특징을 가집니다. 리더가 있고 총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기술자, 지원가 이런 것들이요.
진짜 재미있는 건 게임을 시작후 팀 이름부터 변신구호, 필살기 이름, 로봇호출 대사, 로봇이름까지 모두 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고 게임 내에서 이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뻔한 SRPG 게임인데도 테마를 제대로 게임 안에 반영해 몰입감 있는 플레이를 선사합니다.
전투 시스템은 심플한 SRPG 게임입니다. 아군턴이 되면 순서에 상관없이 원하는 아군 유닛을 선택 조종할 수 있고 공격, 스킬, 팀워크 이렇게 세가지 액션 메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격은 말 그대로 평타를 말하는 것이고 스킬은 MP나 SP를 소모하는 것이 아닌 쿨타임 시스템으로 한번 스킬을 사용하면 일정 턴이 지나야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팀워크는 크로마 스쿼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팀워크를 사용해 턴을 종료하면 아군과 함께 합체 공격을 하거나 아크로바틱을 이용해서 팀워크를 사용한 아군을 지지대 삼아 멀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공격이 적중했을 때 예상데미지가 표시되는 등. 뭐랄까 그냥 싸우면 쉽지만 메 스테이지 마다 부여되는 부가목표(감독의 지시)를 달성하려면 제법 머리를 써야 합니다.
3. 전투 밸런스는 글쎄......
SRPG이다 보니 인물마다 특징있는 고유 스킬이 있습니다. 리더의 경우는 멀리 있는 적을 끌어와서 공격하거나 도발 그리고 힘찬 격려로 아군의 공격력과 체력을 회복하는 기술이 있고 기술자는 무기를 이용한 범위 공격 혹은 장비를 아군에게 부여해서 일시적으로 방어력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킬들은 레벨 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즌으로 넘어갈 때마다 한 단계씩 개방됩니다.
이쯤되면 눈치가 빠르신 분은 아셨을 것 같습니다.
크로마 스쿼드에는 레벨업을 통한 성장이 없습니다. 오로지 장비구입으로 인한 능력치 강화, 시즌 클리어를 통한 스킬 개방 그리고 마케팅이나 스튜디오 개발로 얻을 수 있는 패시브 능력치 강화가 전부입니다.
1회차 어려움 난이도로 게임을 진행한 경험을 말씀드리면 자금이 부족한 초반에는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다가 자금이 넘쳐 흘러 모든 업그레이드를 하고 원하는 장비를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인 후반으로 진입하니 게임이 늘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이는 단지 게임 난이도가 급락해서 그런 것 뿐만은 아니고 게임 승리조건 및 보스들의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게임 내 이벤트에 집중해서 다채로운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듭니다.
거대 로봇 전투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테마는 제대로 살렸으나 같은 전투의 연속이라 시간 낭비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 아쉬었습니다. 허나 파츠를 조합하여 나만의 거대로봇을 만드는 과정은 즐거웠습니다.
4. 문제는 다채롭지 않다는 것.
크로마 스쿼드의 초반 몰입도는 아주 큽니다. 재미있고 현실적이지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는 설명하지 못하나 미스터리한 요소도 있어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질은 좋은데 풍부하진 못합니다.
메일로 받는 여러 가지 상황에 선택지를 사용해 답변을 할 수 있는데 이게 시나리오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치 않습니다. 극초반과 극후반을 제외하곤 체감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메일 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도 플레이의 결과에 따라 시나리오가 변화하고 하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직선적인 구성으라 2회차가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압니다. 너무 큰 걸 기대하고 있는 것을요. 그러나 크로마 스쿼드를 플레이하다 보면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걸 곳곳에서 느낄 수 있고 제작여건 때문에 무산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 아쉽니다. 반대로 말하면 스토리 추가 DLC가 나오면 구입할 의향이 있는 게임입니다.
정리합니다.
인디게임 수준의 볼륨감이고 인디게임 이상의 게임 디자인, 게임성을 지녔습니다. 특히 슈퍼전대를 좋아하는 팬들이 한다면 실소나 나오는 장비설명이나 배경 이미지가 있어 플레이 내내 즐거웠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좋은 게임이기에 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 정도로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슈퍼전대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쯤 플레이 해볼 것을 권합니다.
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