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노블. 요즘은 상표권 때문에 시네마틱 노블 혹은 텍스트 어드벤처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게임이냐, 아니냐는 화두를 가지고 언쟁이 생기는 장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게임에 관해 복잡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게이머이자,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평론을 시작하기 전에 이 것부터 말해야 되겠습니다. 시네마틱 노블이라는 장르가 게임을 표방하던 소설을 표방하던 간에 둘 중 하나로 길을 잡았으면 확실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면 게임적인 요소가 확실히 들어가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겠고, 후자의 경우는 그림과 연출, 사운드, 시나리오 등에 공을 들여서 독자에게 감동을 줘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어우러진 게임이야 말로 시네마틱 노블의 진수라 할 수 있겠지만, 모바일에서는 좀처럼 이런 것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나마 최근 비타로 좋은 게임들이 나와 다행입니다.
블루문 파크는 주인공 크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악마. 그것도 왕의 아들인 크로는 어느 날 아버지의 부하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이끌려 강제로 여동생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게 됩니다. 크로는 이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혼란을 틈타 동생을 포위망에서 벗어나게 해 집으로 도망시키지만, 자신은 적들을 유인하다 부상을 입어 동생과 헤어집니다.
기절에서 깨어난 크로는 여우 요정 벨과, 토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티아를 만나게 되며 벨은 친구들의 힘을 빌려 동생을 찾아 줄 테니 대신 ‘블루문 파크’로 들어 갈 수 있게 도움을 달라 합니다. 크로는 벨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벨과 티아와 함께 천사들만 출입이 허용된 유원지 블루문 파크로 향합니다.
일전에 프리뷰에서 주인공 크로의 독백이 이상하다.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는데 사실 블루문 파크는 동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해리포터 같은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로 만들어진 소설입니다. 이것을 감안하고 보면 크로의 독백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읽어주는 형태로 보이기 때문에 납득이 갑니다. 일러스트와 연출 수준은 모바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스탠딩 CG의 눈이 깜빡이는 것 까지 구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도중에는 블루문 파크의 모든 단점을 잊을만큼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몰입감 하나는 최고입니다. 하지만, 게임의 첫 번째 엔딩을 보고난 후 연출의 마법이 풀리는 순간 블루문 파크의 단점이 크게 부각됩니다.
블루문 파크의 결제 시스템은 챕터 별로 이천 원씩 구입하여 다음 내용을 해금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 합쳐 팔천 원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전에 평론한 탐정의 왕과 같은 결제 시스템입니다. 허나 이 게임들은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정의 왕의 경우 각 챕터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확실히 존재하고 챕터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에피소드라 만족도가 컸던 것에 비교해 블루문 파크는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를 네 개로 잘라서 판매하는 구조입니다. 분량 면에서도 게임적인 재미 면에서도 실망이 아주 큽니다. 어느 정도냐면 한 챕터당 선택지가 꼴랑 두 개 뿐입니다.
여기서 하나 집으면 블루문 파크는 선택지 외에 게임적인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즉 선택지에 따른 이야기의 다양성이 블루문 파크의 세일즈 포인트인데 블루문 파크의 선택지에 따른 이야기 변화는 엔딩 말고는 어떤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야기 중에 변하는 건 선택지에 따라 어떤 캐릭터와 호감이 쌓였나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며 이야기 전개가 달라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엔딩도 불만인 게 베드엔딩이라 부를 수 있는 하나를 제외하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모두 이런 전개로 결말이 나는지라 ‘깼다!’ 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엔딩을 수집하면 해금되는 추가 에피소드에서 진짜 결말이 나오는 가 했지만, 이는 그냥 보너스에 불과해 일러스트 수집의 목적이 아니면 플레이 할 가치가 없을 수준입니다.
이것이 짜증나는 이유는 그 만큼 블루문 파크의 이야기가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자 진형 형태의 짧은 이야기지만, 플레이를 하면서 반전과 가슴 아픈 이야기에 울컥하며 어딘가 진짜 엔딩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모든 엔딩을 수집하게 하게끔 만듭니다.
왜 이런 엔딩이 나와야 했나 생각하니, 답은 금방 나왔습니다. 게임, 블루문 파크는 원작, 블루문 파크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원작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이야기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원작을 읽어라. 이렇게 말하는 거 같습니다.
정리합니다.
블루문 파크는 잘 만큼 모바일용 그림 동화. 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뒷맛이 좋지 않고 볼륨도 부족함을 느끼는 터라 구입이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볼륨이 적다면 다른 면에서 강렬한 특징을 내세웠어야 했는데 연출과 그래픽, 사운드를 내세웠다 해도 가장 중요한 음성이 빠져있기 때문에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화책 원작, 주인공 크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문체. 이런 것을 고려했을 때 음성지원이 됐다면 들려주는 동화책이란 컨셉으로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