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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6개월 뒤에 봅시다 -세계의 파편(모바일) (0) 2015/11/26 PM 11:59


전 TCG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옷장 서랍 안에 있는 상자에 수백 장의 유희왕 카드가 잠들어 있지만, TCG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전에서 쉽게 승리하기 위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정형화 된 덱을 사용하는 것도 끔찍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보다 강한 능력의 카드팩이 출시돼서 끊임없이 카드 팩을 구입해야 하는 시스템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텀블벅을 통해 세계의 파편을 후원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파편이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매복 시스템은 유희왕에서의 함정카드를 연상하게 해서 다채로운 덱을 구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스토리텔링을 강조한 게임구성은 유저 간 대전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AI를 대상으로 재미있는 방식의 대전을 즐길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식 출시된 세계의 파편은 이 둘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했고 전 생돈 오만원을 허공에 날린 셈입니다.



1. 시작부터 하고 싶지 않은 디자인.

후원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클로즈 베타 때의 일입니다. 게임을 실행하니 허전한 로딩화면이 나왔고 로딩이 끝나니 썰렁한 흑백 배경의 메인화면이 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클로즈 베타이니 아직 배경이나 세부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았구나’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세계의 파편이란 게임이 어떤 이야기 배경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내세우는지에 관한 주제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당연히 ‘미완성’ 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허나 이 디자인은 정식 출시가 되어서도 전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나왔습니다. 꼴 보기 싫은 정도의 나쁜 디자인은 아니나 뭔가 있어야 될 것이 없는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의 디자인입니다.

게임의 첫 화면에는 흰색 바탕에 사선을 넣었고 사선으로 만든 칸 안에 현재 공개된 스토리인 에피소드 0와 에피소드 1의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에피소드가 추가되면 될수록 화면을 채우겠다.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의도는 알겠지만,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첫 화면을 어떤 건더기도 없이 하얀 국물만 있는 설렁탕처럼 만든 건,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어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를 포기한 셈입니다.

게임 시작 후 메인 화면의 경우는 나쁘지는 않지만 최선의 디자인은 아닙니다. 메뉴간 이동이 빠르다는 점은 높게 평가하나 원래 뭔가 있어야 할 부분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일 아쉬운 디자인은 게임의 핵심인 대전 모드 때의 디자인입니다. 한 화면에 아군 필드 여섯 장. 적군 필드 여섯, 세 장의 매복 카드 슬롯과 무덤 슬롯.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 패 카드까지 합치면 한 화면에 스무 장의 카드 슬롯이 표시되는 셈입니다. 당연히 화면은 비좁고 플레이어 이름과 아이콘, 자원 표시는 틈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어 있습니다. 글자와 숫자 폰트도 세련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카드는 필드에 내려놓으면 카드에 쓰여 있는 효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카드를 눌러 확대시켜야 합니다. 필드에 내려놓을 카드를 원형 그대로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외관을 축소하고 디자인을 변형시켜 필드를 좁히고 플레이어 이름을 비롯해서 게임 내 표시되는 정보들을 큼직하고 세련되게 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게임에서 사용되는 특수 자원인 선, 중립, 악 속성 자원 표시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대전 모드의 디자인은 재설계 되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특정 카드를 사용했을 때 화살 비가 필드에 꼿히거나, 블랙홀이 등장해 모든 카드를 빨아들이는 효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스토리 모드의 디자인은 흠잡을 게 없습니다. 단 하나만 꼬집으면 스토리 모드에 진입하고 나서는 덱을 교체할 수 없어 다시 메인 화면으로 나가 덱을 교체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 걸렸습니다.



2. 컨텐츠의 부재.

정식 오픈한 세계의 파편을 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게임도 6개월 뒤에 망하겠구나.’ 이거였습니다. 사전등록코드를 배포하고 유저들을 끌어모아 좋은 시작을 했으면서도 서버 문제 때문에 접속을 못하고, 버그 때문에 스토리 모드는 다음 스테이지로 진행 불가능, 일반전은 매칭이 되지 않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고 당연히 유저들이 불만을 제기하며 오픈 당일 날 게임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스타에 맞춰 무리하게 오픈일정을 잡았던, 개발진들의 경험이 미숙해서 운영이 서툴렀던, 어떤 이유가 있었던 간에 최악의 스타팅을 한 셈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PVP 대전과 스토리 모드가 두각을 들어내지 못했습니다. PVP는 현재 일반전만 공개되어 있는데, 이는 유저의 실력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매칭되어 공방이 오가는 제대로 된 게임을 하기가 힘들어. 과금 유저들 만의 리그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자랑했던 스토리 모드는 꼴랑 세 시간이면 모두 클리어가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일 퀘스트가 있습니다. 이를 클리어 하면 카드를 제작할 수 있는 샤드가루와 시나리오를 개방하거나 부스터 팩을 구입 할 때 사용하는 샤드 원석을 얻을 수 있는데 RPG 게임에서 슬라임을 30마리 잡아라. 마른고기를 100개 구해와라. 식의 노가다 퀘스트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지루하고 반복적입니다. 어떤 속성 카드를 몇 번 사용해라. 소환을 몇 번 해라. 매복 카드를 몇 번 사용해라, 대전에서 승리해라. 이런 내용 들입니다.

아직 도입되지 않은 PVP의 랭크전이 도입되고 이에 따른 보상을 지급 받게 되면 컨텐츠의 질이 상승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장 지금 할 게 없고 유저들은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할 텐데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3. 스토리 모드.

제 직업은 소설가입니다. 소설을 쓸 때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겁니다. 연출이라고 줄여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의 파편의 시나리오는 배경과 설정은 만들어 놨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관해서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디자인, 컨텐츠 부재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파편은 메인 시나리오와, 추가 시나리오가 확실히 독립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메인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0의 내용이고, 추가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1의 내용입니다. 이런 구조라면 메인 스토리를 무겁게 해서 자리를 확실히 잡아 준 다음. 추가 컨텐츠로 뒷받침을 해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일 텐데. 세계의 파편은 메인 스토리와 추가 컨텐츠를 직선상에 늘여놓았습니다.



시나리오 0는 고작 챕터 하나로 끝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사용하는 말로 치면 시즌 1까지 끌어갈 수 있는 플롯을 가지고 있고 연속극을 방송하는 것처럼 일정 기간마다 다음 이야기를 푸는 식으로 구성하면 유저들을 게임 안에 계속 잡아 두는 방법이 될 겁니다. 메인 스토리는 무료로 즐기면서 추가 시나리오는 돈을 지불하고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설계하고 여기에 랭킹전와 이벤트까지 추가되면 매일 접속해서 게임을 하고 싶어질 겁니다.

뻔한 스토리텔링 기법이고, 어느 게임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인데 왜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건지 의문입니다. 현재 세계의 파편에는 메인 스토리는 없고 배경과, 설정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속에 전투 스테이지가 잘 녹아 있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인터뷰에서 보길 전투 때문에 스토리를 방해받는 것이 싫어서 이 둘을 분리했다고 하는데 텍스트 어드벤처로서 장점인 비주얼을 사용한 연출, 그리고 선택지에 따른 이야기의 다양성. 이런 것들을 부각 시킬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모드도 아니면서 왜 개발사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무기인 게임을 스토리와 분리시켰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전투 스테이지에 돌입하기 전에 나오는 팝업 창을 보면 대당 전투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이 나오긴 하는데 까놓고 말해서 꿈 속에서 복수를 한다거나, 스토리에서 언급되지 않은 맹수와 싸운다거나 하는 구색 맞추기 스테이지가 즐비한 걸 보면 이야기 안에 게임을 녹아낼 수 없어 적당한 핑계를 댄 것처럼 보입니다.



4. 결국 카드 빨, 운 빨 게임.

게임 룰은 재밌습니다. 허나 어렵습니다.
1-2-3-4-5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아래서부터 위로 쌓아 올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처음부터 10을 사용하는 전력 싸움입니다. 때문에 룰과 게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시스템을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하고 상대에서 무참히 패배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보니 개발사는 이를 가지고 컨트롤로 요구되는 게임이라 발언했는데, 이건 컨트롤이 아니라 게임의 접근성이 떨어져 익히는데 게임을 완전히 익히는데 개인차가 나는 것이지 무슨 대단한 컨트롤이 요구되는 게임은 아닙니다.

어느 TCG던 간에 다 마찬가지지만, 세계의 파편의 카드 빨은 유난히 더 돋보입니다.
카드는 체력과 공격력이 있고, 체력을 0으로 만들면 파괴되는 규칙을 가집니다. 그러나 전투가 일어는 해당 턴에 카드의 체력을 전부 깍지 못하면 다시 최대 체력으로 회복됩니다. 즉 카드 스펙의 차이가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상대의 카드를 파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비록 강한 카드일 지라도 매 턴 마다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축적시켜서 파괴하는 것이 시스템 적으로 막혀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적의 직접 공격을 아군 카드로 막아내면서 역전의 기회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배틀이 끝나면 체력이 회복되는 시스템과, 아군이 카드가 파괴되면 카드를 소환할 때 사용한 비용만큼 플레이어가 데미지를 받아 버티기도 불가능합니다.

매복 카드를 사용해서 카운터를 날리는 시스템은 재밌습니다. 처음부터 최대자원을 사용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살린 요소로. 상대가 날린 카운터를 또 카운터로 받아치는 쾌감은 세계의 파편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재미입니다.

개인적으론 벌써부터 덱 구성이 정형화되고 플레이 방법이 패턴화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카드 간의 밸런스가 아니라 게임 시스템의 밸런스를 최우선으로 손을 봐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리합니다.

누군가 제게 세계의 파편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오픈 당일과 비교해서 지금은 게임이 많이 안정화 된 상태이긴 합니다만, 랭킹전과 앨범 모드가 미구현이고, 다른 TCG 게임과 차별화 될 거라고 생각했던 스토리텔링은 기대 이하입니다. 여기에 재미없고 반복적인 일일퀘스트는 게임 룰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손이 가지 않습니다.
저는 이 게임은 하고 싶다면 6개월 뒤에 하라고 권하겠습니다. 세계의 파편은 게임의 안과 밖 모든 부분이 미흡합니다. 구멍 뻥뻥 뚫려 있는 것이 보이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재배열 할 수 있고,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해서 어떤 모습으로 간에 변신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디에 먼저 집중 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부디 6개월 뒤에도 이 게임을 볼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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