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던 작년 여름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신검을 받으러 신길동에 있는 병무청에 갔습니다.
이미 30이 넘은 나이에 파릇파릇한 스물들과 같이 줄을 서려니 창피함이 앞서더군요.
심지어 나라사랑카드같은 것도 없어서 임시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또 줄 서야 했었습니다.
그래도 재검자라고 주황색 조끼를 입고 필수코스만 돌아서 전부 돌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죠.
제가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곳에는 3명이 있었고, 군의관이 주황색 조끼를 입은 신검자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무슨내용인지는 관심도 없었지만, 주황색 조끼는 열심히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군의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류만 뒤적이고 있었죠.
무료한 시간이 지나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카드를 찍고, 준비해간 두툼한 서류와 CD를 군의관에게 건내줬죠.
제 서류를 본 군의관이 고개를 들어 제 얼굴을 봤습니다. 조금 당황한 표정의 얼굴에 저는 웃으며 답해줬죠.
군의관과의 면담이 끝나고, 저는 바로 출구쪽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카드를 대는 순간 "삐- 1급 현역입영 대상자입니다." "삐- 2급 현역입영 대상자입니다."로 신검자들의 멘탈을 날려버리고 있는 그 기계가 있는 곳이었죠.
10년도 더 전에 이 작고 쓸모없는 기계 앞에서 "2급 현역입영 대상자입니다."라는 메세지를 받고 좌절했던 경험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더군요.
자신있게 기계에 카드를 대었습니다.
"삐- 5급 면제입니다."라는 메세지. 10년전에 그렇게 듣고싶었던 그 메세지가 나오더군요.
그리고 파릇파릇한 20대들의 놀라움과 부러움, 시기심이 섞인 시선들을 느끼며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왔습다.
나가기전에 군무원이 저를 보며 말하더군요.
"결과 서류는 집으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아니요. 필요없는데요?"
단언하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군무원은 포기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기념삼아 보내드릴께요."
두 번권하는 건 사양하는게 아니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바탕삼아 알겠다고 하고 나왔습니다.
이건 해병대 전역하고 동원도 끝난 예비군 5년차의 여름에 있던 일입니다. 씨X.
덧. 군의관과의 대화
군의관 : 아 이거 아쉽네요. 현역이면 면젠데.
나 : 그러게나 말이죠.
덧2. 당시에는 너무 아파서 할수밖에없었는데 민방위도 면제라 회사 풀 출근해야합니다. X발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