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뜨겁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일어나서 길을 걷기로 한다.
오늘 출발은 아침 7시. 평소보다 이른 편이다.
오늘 걷는 구간 중에 프랑스 길에서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간다.
에스테야를 나와서 숲길을 1시간 정도 걸어가면 이라체 수도원이 나온다.
옛날부터 순례자들을 위해 공짜로 와인을 제공해 왔다고 하는데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온다.
심지어 싸구려 와인맛도 아니다. 맛있다. 공짜잖아?
원래는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관리를 하던 곳인데 수도자 인력이 점점 줄어
지금은 수도원은 박물관으로 운영 되고 있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와인 박물관이 있지만 해가 점점 높이 뜨고 있는 관계로 빨리 떠나기로 했다.
뻥 아니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수도꼭지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물이 나오고 하나는 와인. 국내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고등학생때 수도가 물 틀면 물 대신 음료수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던게 문득 떠올라 피식 웃어본다.
아침이지만 적당히 마시고 한병 가득 채워 가기로 한다.
박물관이 되어버린 옛 수도원. 근데 시간 맞춰서 종은 울린다.
종탑 뒤로 해가 떠오르는게 보인다. ㄷㄷㄷㄷ
오늘도 익혀지기 전에 알베르게 들어가는걸 목표로 얼른 가야지..ㄷㄷ
빨리 나온 편임에도 불구하고 해가....Ahㅏ...... 갈 길은 멀었건만 그늘 하나 없는 포도밭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라체 수도원에서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도로 옆에 새로 난 길하고 조금 돌아서 산 기슭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후자를 추천한다.
아스팔트 길은 발에 물집이 잡히기도 쉽고 무릎이나 관절에도 좋지 않다.
똥을 밟을 위협이 있지만 흙을 밟는게 장거리 도보 여행에는 훨씬 유익하다.(똥도 섞이면 흙이다.)
콘크리트에 센스있게 새겨놓은 '부엔 까미노'
방향 표시석 아래에 흙 먼지 낀 'LOS ARCOS'가 보인다.
대충 근처까지 온 것 같은데 땡볕 아래서 걷느라 지쳤다.
가지고 있는 지도책을 봐도 거의 다 온 것 같길래 가방 비우기 차원에서 준비한 점심을 조금 빨리 먹었다.
대략 오후 1시경, 오늘은 시에스타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리가 짧은 탓도 있었지만 걷기 시작한지 6일째라 슬슬 몸이 익숙해진다는 뜻이겠지.
난생 처음 와 보는 나라, 처음 걷는 길 위에서 방향 표시석하고 지도만 보고 걸어가다 목적지로 정한 곳이 눈 앞에 나타날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굳이 비교하자면 별 생각없이 게임하다가 뜻밖의 업적이나 트로피를 따는 기분..??)
오후 2시가 다가오니까 햇빛이...... 다 도착해서 문제가 생겼다.
스페인의 사순시기에는 열지 않는 공립 알베르게가 상당히 많다.
편하자고 온 순례여행이 아니고 돈도 최소비용으로 해결하려고 계획한 만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가 닫았을 때 그 당혹감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돈이 많으면 안해도 되는 고민)
여기서 더 가느냐, 멈추느냐의 결정을 해야했다.
고민이고 자시고 일단, 광장 앞 테이블 빈 곳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맥주부터 시켰다.
요 몇일동안 걷다가 알게 된 에릭이라는 친구가 여기서 비아나까지 열린 알베르게는 하나도 없고 비아나까지 15km를 더 가야 열려있는 알베르게가 열렸다고 알려줬다.
4~5km면 모르겠는데 15km면 더 이상 고민 할 필요없다.
처음으로 사설 알베르게를 이용하기로 한다.
시에스타가 끝날 쯤에 식료품도 살 겸, 내일 갈 길도 미리 봐둘 겸 출구쪽으로 나와서 뒤돌아 봤다.
12세기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이름은 '아치가 있는 산타마리아 성당'
가지고 있던 누룽지 약간과 구매한 식료품으로 에릭 일행하고 저녁 식사를 해먹었다.
사설 알베르게가 좋긴 좋은게 와이파이가 진짜 빵빵했다.
덕분에 로비에서 좀 늦게까지 머물렀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서 걸어야겠다.
그리고 이 날 식료품을 충분히 사놓지 않아서 다음 날 후회하게 되는데......
맥주 1유로.
알베르게 9유로.
식료품 6.4유료.
총 16.4 유로 사용.
도보 6일 차.
산티아고 콤프스텔라까지 남은거리 640km.
전 윗길 갔는데 사람 없어서 너무 좋았어요.
지나가던 애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 나중되면 친해지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