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김씨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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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2014)] [13 Day] 2014년 3월 14일 부르고스 - 온타나스 31Km (0) 2017/01/11 PM 05:04

대도시에서 나가는 날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아침에 너무 힘들다.

첫 번째. 지난 밤 편안한 잠자리와 좋은 식사.

두 번째. 도시가 너무 커서 빠져가나는데 한두시간은 각오해야 한다는 점.



그래도 떠나는 이유는 목적지가 있으니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동 트는 시간에 걸어나가는 느낌은...음.. 가끔 새벽미사 드리러 갈 때 느낌이랑 비슷한것 같다.

더 자고 싶은데 참고 가야하는것도 그렇고 막상 나가면 괜시리 좋은거?



부르고스가 안끝난다.... 너무 일찍 나와서 아침을 먹을만한 카페도 안열었고...마치 일요일 새벽 같은 분위기.




오전 10시쯤 타다죠스 도착. 대략 8km를 3시간만에 왔다.

역시 사람은 아무 생각을 안할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것 같다.

여기 카페에 들어가서 늦은 아침을 먹고 본격적으로 메세타를 향해 출발. 



메세타의 시작은 이 돌산을 걸어 올라가는것부터 시작이다.

비가 오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돌 산은 비가오면 걸어 올라가기가 참 힘들고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쨍한 날씨가 좋다.

근데 원래 스페인 북부에 독수리가 사나??


산 올라가는데 뻥 안치고 엄청 큰 독수리? 같은 맹금류 들이 막 떼 지어서 날아다니느데 솔직히 조금 지릴뻔..ㄷㄷ



메세타 걷는 사람들은 이 나무 꼭 찍길래 나도 찍어봤다.

이 넓은 고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게 혼자 걷는 나랑 처지가 참 비슷한것 같아서 많이 외로워 보였다.



쟤는 몇 살이나 된 나무일까. 언제부터 혼자 있었을까. 음... 유한양행..?



순례길을 떠나면서 걷는 중에는 동행 없이 혼자 걷기로 다짐했었다.

여러가지 일로 마음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고 내 버킷리스트 속 순례길은 꼭 혼자서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힘든 길이라는건 수 많은 검색과 자료 수집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기 위해 생장에서부터 매일 묵주 기도를 올리면서 걸었다.

물론 각자의 카미노는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뭐가 옳다는건 없다.

다시 이 길을 걷는다면 그 때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왁자지껄하게 걸어보고 싶다.



길 옆에는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색이 될지 궁금하게 생긴 흙이 쫙 깔려있다.

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기간, 엄밀히 말하면 겨울 카미노의 끝자락이라서 이렇게 쓸쓸한 풍경밖에 못 보는데 부활절 이후에 메세타 고원 양 옆에는 유채꽃밭이라고 한다.

나 자체가 그렇게 밝고 예쁜 사람은 아니라서 이것도 뭐 나쁘진 않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음... 두 시간 더 가면 저기 도착하겠구나.



그리고 정확히 1시간 52분 뒤 도착.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은 점심 먹고 쉬어가기 딱 좋은 시간.




날씨가 상쾌하게 좋아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아무 벤치에나 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쉬는것도 참 좋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늘을 본 적도 없고 봐도 고층 건물, 교회 십자가, 전봇대, 전선 등 그냥 보기에 좋은 풍경은 아니라서 잘 보지도 않았었지.



이제 다시 출발이다.

하루종일 이런 풍경들만 바라보니까 잡 생각도 많이 안들고 잡 생각이 없으니까 마음이 참 평화로웠다.

순례길 끝나고 한국가서도 이 마음상태로 살면 참 좋겠지만... 그럴수는 없겠지.



그나저나 오늘의 목적지가 슬슬 보일 때도 되었는데 노란 화살표도 안보이고 계속 같은 길만 펼쳐진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뱀의 길 같다. 

오늘 목적지 도착하면 계왕님 만나서 원기옥 배우는건가...? 

슬슬 지쳐가고 어딘지도 모르겠는 와중에 뻘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음... 여기서도 앞에 마을 같은건 안보이니 오늘은 틀렸구나...

잡 생각은 관두고 묵주기도나 더 하면서 걷기로 하는데 뒤에서 나한테 말을 건다.

키가 크고 마른 금발 청년이 내 묵주를 보고 이거 로사리오냐고 묻는거 같긴 한데 이 친구 말이 독특하다.

처음 들어본 억센 억양. 영어도 안되고 저 친구가 하는 이탈리아 말은 내가 모르고 스페인어는 둘 다 모르고..

서로 어설픈 영어와 몸짓을 섞은 우리의 괴이한 10분간 대화 속에서 서로 알게 된 건 둘 다 카톨릭 신자고

둘 다 묵주기도를 올리면서 걷고 있고 폴란드 사람, 한국 사람이라는것. 


서로 부엔 카미노를 외쳐주고 폴란드 청년은 빠르게 나는 천천히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해 다시 걷는다.



윈도우 배경화면 같다.

경치 하나는 진짜 예술인것 같다.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에 풀 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참 좋다.



진짜 이쯤에서 오늘 목적지가 나와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보여서 큰일났다. 나 진짜 어떡하지??

여기서 노숙하는건 안되는데..... 절망감이 들기 시작하던 이 때 한걸음 더 앞으로 내딛어보니.




이렇게 언덕아래에 숨겨진 오늘의 목적지 온타나스가 거짓말 같이 눈 앞에 나타났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다가 진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이 황량한 고원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니!!!




기쁜 마음에 알베르게를 향하여 걸어간다.

체크인을 하고 샤워부터 하고 찬 물에 발을 담근 채 맥주 한캔을 마시고 내일을 향해 휴식.





알베르게 5유로

식재료 7.80 유로

맥주 1.30 유로

커피 1.20 유로

물    0.60 유로

총 15.90 유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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