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선다는 건 해가 뜨는 과정을 지켜 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내 등 뒤에서 해가 뜨는 걸 직접 느끼고 걷다가 잠시 멈춰 선 후, 해뜨는 걸 지켜봤다.
해 뜨는 걸 처음 보는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벅참을 느낄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는 방향을 절대 잃을 일이 없다.
아침에 길을 나섰을 때 해는 내 등뒤에 떠 있다가 잠시 왼쪽으로 갔다가 목적지에 도착 할 때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진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 내가 걷는 방향 모두 서쪽에서 동쪽. 길 잃어버릴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걷기만 하면 되는 참 편안한 길.
해가 뜨고 얼마 안되어 도착한 산 안톤 수도원.
포장도로가 수도원을 가로지르는 참 신기한 모양새였다.
내 기억 속 수도원은 항상 외부와 구별이 확실해서 세상과 동 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하고 피정을 가면 그 점이 참 좋았는데 이렇게 연결되어있으니 신기할 수 밖에.
방향 표시석에 저 십자가. 성물방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만들어서 파는 거라고 한다.
성당 기사단 관련된거였나? 뭐라고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다녀오고 3년이나 지났으니 기억이 안날 법도 하고... 한번 더 가야하나??ㅋㅋ
산 안톤 수도원을 지나오고 나서 겁나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저 산 위에 건물은 무엇이며 마을은 어째서 산 아래에 펼쳐져 있는건가...두둥...
걱정을 안고 들어간 마을은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전형적인 순례길 위에 있는 마을이다.
오래된 성당 있고 사람들 거의 안보이고 바에 들어가면 와이파이 터지고 도장 찍어주는 순례길 마을.
여기가 원래 이 동네 성당인데 너무 지은지 오래되서 시설물 낙후로 위험해서 바로 옆에 다른 성당을 지어서 쓰고 있다고 한다.
보수해서 박물관으로 만들던지 한다던데.... 못 알아들음 ^^
이제 다시 메세타의 시작이다.
아. 약간의 등산과 함께. 마을 밖에서 보던대로 압박감이 드는 산타기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
슬슬 태양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오전에 적당한 이런 등산이라면 뭐.... 나쁘진 않다.
오늘도 내 눈 앞에 펼쳐지는 탁 트인 풍경.
여기와서 좋은것 중 하나는 탁 트인 풍경 원 없이 보고 걸어다니는 일이다.
고도가 기본적으로 높은 스페인 북부여서 그런가??
내 시력이 좋아진게 아닐텐데 시야가 참 넓다. 그리고 맑아서 좋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찍어본 것 같다.
해가 너무 내리 쬐지만 않았다면 이거 찍을때 누워서 하늘 좀 보다 갔을텐데 오늘도 29.5km 걸어야하고 햇빛이 장난이 아니라서 패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내리막을 돌아서 나오면 이렇게 탁 트인 시야.
난 이렇게 멀리까지 보이는게 좋더라.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이제는 힘들다는 생각도 그다지 안든다.
길 위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걷는 일 밖에 안했는데 나는 이때가 너무 좋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도 살다가 답답하거나 힘들었던 날에 잠이 들면 가끔 이때 걷던 풍경이 꿈에 나온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본 좋았던 풍경으로 아직 버티는것 같을때가 있다.
오늘의 목적지까지 거의 다 도착했을때 등장한 벤치와 비석.
팔렌시아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럼 곧 순례길 위 마지막 대도시 레온이 나오겠지.
첫 날 피레네를 돌아갈때만 해도 막막했는데 어느새 절반 지점에 다 와간다.
메세타가 곧 끝날거라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좋다.
좋으면서 싫은 이 애매한 기분은 정말 길 말고 아무것도 없어서 그럴지도...
비석이나 유적에 낙서하는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다 하는 건가보다. ㅋㅋㅋㅋ
여기서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서 더 이상의 사진은 없고 일기만 남아있다.
이 날 알베르게에는 스페인 단체 일행이 들어왔는데 떠드는 소리와 코 고는 소리가 가히 예술적이었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순례자 메뉴를 먹었는데 이 스페인 일행들 때문에 플러그가 모자라서 충전을 제대로 못해서 사진이 없다.
알베르게 4유로.
식사 9유로
음식 2,40유로
총 15.40 유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