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결혼 좀 하고 먹고 살다 보니까 마이피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마이피가 방치되다 보니까 여행기도 쓰다 말았네요.
제 블로그에서 긁어서 다시 올립니다.
구름이 많이 껴서 지난 밤에 별은 못 봤고 순례길 중 가장 아름다웠던 폰세바돈의 새벽은 봤다.
날이 흐리고 춥다.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동네라서 그런가?? 어제 아침과는 다른 기후다.
오늘은 철 십자가를 지나 폰페라다까지 가는 일정.
평소라면 해가 떠야하는데 구름에 모든것이 가려져 있다.
폐허와 같이 보이지만 지금도 간혹 꿈에 나오는 폰세바돈 마을.
출발 할 때는 해가 조금 뜨려고 했는데 잔뜩 흐려지고 가랑비가 온다.
다행스럽게도 눈으로 바뀌진 않았다.
저 멀리 철 십자가의 모습이 보인다.
철 십자가 (Cruz de Fero).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상징 중 하나이며 프랑스 길에서 해발 고도가 제일 높은 곳에 도착했다.
십자가 아래에는 각 나라 언어로 적힌 돌맹이와 사연이 담긴 편지, 사진 등이 산재하여있다.
이 장소의 의미는 자기가 지고 있는 마음의 짐, 욕심, 후회를 내려놓는 곳이라고 한다.
철 십자가 아래에서 짧은 기도라도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순례길 중 비를 피할 곳이 없으면 차라리 걷는게 낫다. 우비가 있어도 옷은 어차피 젖기 마련이고 체온마저 내려가면 답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동해서 휴식 공간을 찾는것이 좋다.)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지 조금 뒤에 '알베르게' 만하린이 나온다.
다 쓰러져가는 사당 같지만 무려 알베르게.
성당 기사단의 전통적인 운영방식을 고수한다고 하여 보일러, 전기 그런거 없다.
화장실도 극 자연주의로 수풀에서...ㅋㅋ
주로 철십자가를 지나 온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떠나는 곳으로 따듯한 음료와 간식은 자율 기부제로 운영중이다.
알베르게 입구이자 간판에는 온갖 언어들로 가득차있다.
산티아고까지 222km 남았다는 말이 보인다.
반대편 산 능선은 안개가 자욱하다.
비는 어느샌가 다시 가랑비로 체급이 떨어졌다.
비가 잦아들면서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안개와 추위, 젖은 옷의 삼박자 조합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출발한지 3시간도 안됐는데 물 먹은 솜 같이 무거워지는 몸.
갑자기 길이 험난해지고 날은 더 추워졌다.
비가 와서 자갈길이 엄청 미끄러워서 고생 좀 했다.
그래도 발 아래에 구름이 껴있고 만성 비염 환자가 이렇게 상쾌하게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너무 좋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는 시야가 조금 걷히더니 마을이 나왔다.
마을 이름은 엘 아세보(El acebo).
산 위에서 바라보는 마을 지붕들이 기사들 갑옷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산 중턱인데 갑자기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잡혔다.
(마을로 내려갈수록 신호가 약해졌다. 뭐지...? )
마을 입구로 왔는데 날씨에 마을 입구 모양새가 영 유령마을 같다..
여기까지 11km 밖에 못 걸었지만 일단 몸을 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천후가 나아질 기미가 안보여서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으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카페를 찾았다.
마을은 그다지 크지는 않아서 금방 카페를 찾아서 젖은거 죄다 말리기 시작.
친절한 주인이 난로 앞에서 젖은 장갑, 우비를 같이 널어준다.
와이파이로 날씨를 찾아보고 비가 곧 그칠거라는 소식에 속는 셈치고 더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엘 아세보를 나오니까 비는 그쳤다. 우비를 벗으려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서 그냥 당분간 입기로 했다.
체온 유지에 우비는 좋은 아이템이다.
엘 아세보가 보였던 것 처럼 저 멀리 몰리나세카가 보인다.
거리상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저기서 점심을 먹고 이동하기로 했다.
내리막길만 걸어와서 부담감이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몰리나세카 입구가 짜잔.
여기서부터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나기도 했다.
(3분뒤에 바로 비가와서 그렇지 해가 나긴 한다.)
비 피하고 몸 말리느라 시간을 좀 지나긴 했는데 걷다보니 괜찮아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로 출발
그런데 몰리나세카 나오고 딱 10분 뒤에 그냥 몰리나세카에서 마무리 할 걸 그랬나 사실 후회 좀 했다.
방향표시석 위에 신발 공구리 친 줄 알았는데 진짜 신발이었다.
폰페라다 근교 도착. 근데 이길로 오면 폰 페라다 시내까지 한참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다시 순례길을 가면 저 신발 올려져있는 방향표시석은 무시하고 차도 따라서 갈 거다.
1.3km면 끝날 길을 괜히 4km나 돌아서 갔다.
마지막에 돌고 돌아 폰 페라다 입성.
대도시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동네가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북부 교통 허브이자 큰 쇼핑몰도 있는 큰 도시였다.
이게 대도시가 아니면 대체 대도시의 기준이...?
알베르게 들어가서 짐 풀고 씻고 돌아다니다가 성 발견.
입장시간 지나서 들어가보지는 못함.
걸을때는 하루종일 비오고 바람 불더니 더 안걸어도 되니까 하늘이 맑아졌다.
저녁 먹을 식재료 대충 구입해서 알베르게로 돌아가는데 벽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흔한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나올 것 만 같은 그림체.
오늘 비를 너무 맞아서 우비가 마를 것 같지가 않으니 내일은 비가 오면 일찍 마무리 해야겠다.
아침식사 : 3.5 유로
커피 (기부) : 1.5유로
커피 + 빵 : 2유로
점심식사 : 6유로
식재료 + 술 : 8.11 유로
총 21.11 유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