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부터 1953년 사이
한국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소개합니다.
이 사진들은 Dewey McLean(듀이 맥린)이라는 미국의 교수가 찍었는데, 그는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겨 준 소중한 기록들을 만나볼까요.
이른 아침, 짐을 한 아름 짊어지고 걷는 남자의 뒤로 엉망이 된 서울 시내의 모습이 보인다.
무너진 담벼락을 뒤로한 채 거리에 나선 노신사.
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중절모까지 갖춰 썼다.
전쟁 중에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팔고 있는 서민들. 살기 위해서는 무어라도 팔아야 했다. 이 모습은 당시 흔하디 흔한 모습이었다.
비료로 쓰일 분뇨를 옮기고 있는 모습.
이 또한 당시에는 매우 흔한 광경이었다.
본인의 몸집 만한 배추 더미를 옮기고 있는 남자. 맥린은 이를 보고 어려운 생활을 버티기 위한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으리라고 말했다.
꽁꽁 언 강물을 불에 녹여서 겨우
빨래를 하고 있는 모녀.
남산 근처에서 땅을 일구고 있는 노인.
1950년 10월, 새로운 한강 철교가 완공되었다. 사진은 1951년 6월, 철도를 시범 운행하고 있는 준공식 때의 모습이다.
어느 더운 날, 군용 트럭이 다니는 길 위에서
동생을 업고 급히 지나가는 한 소녀.
(Dewey McLean은 아직도 이 작은 소녀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남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던 조선 신궁. 이는 일본인들이 조선의 곳곳에 설치했던 수많은 신사들의 본부와 같은 곳이었다.
이는 조선인들을 위압할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조선 신궁에 가려면 1,000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이 계단 역시 전쟁 직후 사라졌다.
조선 신궁 바로 위 성곽에서 포즈를 취한 맥린 박사의 모습. 촘촘하고 정밀하게 쌓여있는 성곽이 인상적이다.
조선 신궁에서 찍은 서울의 모습.
한국전쟁 때의 용산중학교 모습.
우측 상단에 보이는 건물이 조선신궁이다.
당시 용산중학교 건물은
제3 철도 수송단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용산중학교에서 찍은 남산의 모습.
한국전쟁 당시 서울역의 모습. 서울역은 2004년 서울 역사를 신축하면서 폐쇄되었다가 2011년에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는 '문화역 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52년 서울역의 모습. 미국의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의 방한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1952년 12월, 미국의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선거 운동 당시 "한국전쟁 장기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한국으로 가겠다"라고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1952년, 용산구 후암동의 흙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숭례문의 모습. 안타깝게도 이 숭례문은 2008년에 방화로 일부 소실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미츠코시 백화점이었던 이 건물은 전쟁 당시 미군의 PX로 사용되었다. 이 모습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장식을 한 모습이다.
현재 이곳은 신세계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맥린이 찍은 덕수궁의 모습.
중화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산등성이마다 빼곡히 자리 잡고 있는 판잣집들.
1953년 봄 용산, 미군의 주최로 열린
부활절 잔치에 온 한국의 어린이들.
한강은 당시에도 푸르렀지만, 가끔 사람의 뼈나 해골 더미가 흘러가기도 했다고 한다.
(좌측에 있는 섬은 뚝섬으로 추정된다.)
Dewey McLean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서울에서의 첫날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가 전해 온 메세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