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잘 만든 명작이기에, 그냥 힛갤에만 남겨놓고 묻히게 놔둘 수는 없다 싶어 탁본을 남깁니다.
밑에 원작 있음.
AK 깎던 노인
글쓴이: 끼요끼요(pan***)
출처: 2012-02-16 루리웹 힛갤 메인
벌써 40년 전이다. 갓 내전 난지 얼마 안되어서 전쟁터에 내려가 용병짓을 할때다.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AK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AK를 한정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는냐고 했더니,
'총자루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날이 저무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총알이 날라오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알라의 요술봉 연기에 갑갑하고 지루하고 이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그만 달라'고 했더니 ,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생쌀이 채족한다고 밥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요,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이러다 총 맞겠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승전은 어차피 틀린것
같고 해서,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릅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종이에 대마를 말아 피우고 있지 않는가,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라다가는 AK가 다 깎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AK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총이였다.
다음 전쟁에 다시와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굽히고 태양을 향해 기도 하고 있었다.
그때,그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와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막사에 와서 AK를 내려놨더니 전우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전우의 설명을 들어 보면 개머리판이 너무 부르면
힘들어 견착시 어깨가 빠지길 잘하고,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견착이 되지 않고 눈에 멍들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서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오늘 전쟁기념관에 나왔더니 밀덕이 AK를 들고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AK로 적들을 쏘던 생각이 난다. 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총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그 옛날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전 AK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작: 방망이 깎던 노인
작자 : 윤오영(尹五榮 1907-1976)
형식 : 수필(경수필)
문체 : 우유체, 간결체,
성격 : 교훈적, 신변잡기적, 회고적, 서사적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 )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 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