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원 때부터 숙제가 적은 편이 아니었고,
숙제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리고 숙제를 하고 난 결과(정답률)에 따라
항상 보상(대부분 매를 맞는 벌)이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보면, 100점을 맞아야 무언가 보상이 주어지고,
100점 만점이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90점을 넘지 못하면 역시 매를 맞았다.
숙제의 경우, 하나라도 틀리면 매를 맞았다.
(그래도 그나마 나았던 건, 틀린 만큼만 맞았다는 것...)
그 때문인지 나는 숙제, 과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반드시 만점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결코 하나도 틀려서는 안된다."
"과제가 주어지면, 그 과제를 120% 완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내 막내인 나에게 "인스턴트커피를 사오라"라는 과제가 주어지면
가까운 편의점에도 커피 묶음을 파는데도 불구하고
번화가까지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대형마트가 더 싸다고
거기에서 구입한 뒤 돈을 남겨온다던가..
80%, 아니 70%만 달성하면 성공인 과제가 주어지더라도
그 목표 이상을 달성해봤자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해도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니 내가 할 수 없더라도 완벽하게 120% 완수할 때까지
정말 말그대로 집착을하게 된다..
할 수 없으면 될 때까지. 지금 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다며
잠이 와도 해결될 때까지 잠을 참아가면서
아무런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 채 계속 무한반복과 시행착오만을 반복한다.
그 때문에 정신도 메말라가고, 체력도 고갈되고,
수면부족과 함께 우울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게다가 그 문제 하나 때문에 다른 문제는 아예 읽을 수조차 없어서
아무런 결과도 제출할 수 없기에 성적과 평가는 바닥을 긴다.
성적은 결과로 인해 나타나기에,
(지금까지 들인 노력은)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밤잠을 참아가면서 쓸 필요 없이, 그냥 내일 일어나서 쓰면 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쓰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약을 먹고 극심한 졸음이 오지 않는 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18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고, 약물의 양도 늘어났다.
약을 먹어야 나를 유지할 수 있는 현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당신은 우울증이 아닙니다. 다만 전형적인, 불필요하게 과도한 노력을 하는 강박증이군요"
"선단공포증같은 그런 강박증과 당신은 똑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듣고 나서야, 내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나를 옭아맸던 습관을 쉽게 고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더군다나 현대사회 대부분은
과제를 수행할 때 80% 달성한 사람보다 120% 달성한 사람에게 보상이 더 크게 주어진다.
고쳐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도, 결국엔 다시 매달리게 되고 다시 집착하게 된다..
전에 다니던 회사도 이런 병적인 성격 때문에
남들은 쉽게 생각 하는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나는 너무나도 (불필요할 만큼) 어렵게 생각하고 해결하려 했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엔 그만두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옭아매는 거라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고
불필요한 완벽주의가 되어 매사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