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 세기말 맨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2017.01.01 PM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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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말 맨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석양이 넘어가는 풍경을 보며 창문 넘어 녀석들을 보았다. 흐느적흐느적거리면서도 잘만 걸어다니고 있었다. 이따금씩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편의점 근처에 세 놈이 있었다. 한 놈은 편의점 앞 주차 된 차량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차량 반대편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다. 녀석들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들이 좀비라고 얘기하고 또 누군가는 퇴폐한 인류라고 표현한다.

편의점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하나 주워 던졌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주차된 차량의 창문을 향해 똑바로 던졌다. 돌은 정확히 차량을 향해 날아갔고 그 결과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차량의 경적이 울렸다.

경적이 울리자마자 녀석들은 차량을 향해서 걸어갔다. 저들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아는 거라고는 눈을 감지 않아 시력이 극도로 퇴화했다는 것과 인육을 먹고, 죽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면 좀비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녀석들은 영화에서 보던 좀비만큼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조금만 조심해도 저 머저리들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제 됐나?”

가방에 음식물을 챙기고 그나저나 이제 이곳도 물건이 많이 사라졌다. 음식이 떨어지면 매번 들렸는데 어느새 바닥이 들어났다. 텅텅 비어있는 진열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

끼이익.

최대한 살살 문을 열고 나갔다. 녀석들은 내 예상대로 차량에 주위를 배회하고 다녔다. 녀석들은 소리에 민감했다. 인간이 시각을 잃으면 청각이 발달하듯이 녀석들도 귀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들었다.

천천히 최대한 차량을 피해가며 달렸다. 다행히 녀석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안심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허업.”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제길. 하필이면 편의점 모퉁이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젠장, 젠장! 얼른 가방에서 몽키스패너를 꺼내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미국이었으면 나도 총을 폼나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양손으로 쥐고는 녀석을 보았다. 녀석이 나를 보았다. 역시 이렇게 짧은 거리라면 녀석들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키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녀석이 달려들었다. 이빨을 내세우고는 나를 향해 몸을 던졌다. 황급히 몸을 낮춘 후 녀석의 상반신을 흘려 보내고 발로 등짝을 걷어찼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녀석은 분한지 더 크게 울었다. 젠장 이러다 몇 놈이라도 더 나타난다면 꼼짝없이 이 녀석들 저녁식사가 될 것이다. 하기는 싫지만 몽키스패너를 높이 들었다. 녀석이 한번도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타이밍을 맞춰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내리 찍었다.

, , 고기를 다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녀석이 쓰러졌다. 깨진 머리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뇌도 조금 보이는 듯싶었다. 녀석은 아직도 죽지 않았는지 몸을 꿈틀꿈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죽어 개자식아.”

몽키 스패너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한번 두번 그렇게 쉴새 없이 내리찍었다. 한참을 내리찍다보니 어느새 녀석의 움직임이 살라졌다. 사늘하게 굳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을 보고는 몽키 스패너를 가방에 넣었다.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집을 향해 혹시나 녀석들을 마주치더라도 소리 하나 흘리지 않고 달렸다. 집에 도착하고는 얼른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얼른 변기를 붙잡고 토를 했다.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내고 나서야 정신이 조금씩 들었다.

거울을 보았다. 양손에는 아까 한 녀석을 처리하다가 묻은 피가 흥건했다. 손가락 끝에는 뇌가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비틀거리면서 손을 물티슈로 닦았다.

손을 닦고는 거실로 가 통조림들을 꺼내왔다. 이번에는 운 좋게 과일 통조림을 얻었다. 과일을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 캔따개로 통조림을 열고 황도를 꺼내 한입 베어먹었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서 그런가? 식감이 이상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그날 밤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황도를 먹은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싶었다. 화장실에서 변을 계속 보는데 창문을 통해 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동물이 우는 것도 사람이 말하는 것도 아닌 기묘한 소리이다. 벌써 저 소리를 듣고 살았던 것이 어느새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바탕 설사를 마치고는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또 다시 통조림을 구해야하고 이제는 물도 구해야한다. 얼마 전에 구했던 물들은 죄다 마셔버려 이제 남은 거라고는 수돗물을 담아둔 한 통뿐이었다.

과거 사람들이 세기말이라는 것이 요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어떻게든 살아가는데 더 이상 희망을 찾기 힘들었다. 한때는 군대가 놈들을 무찌르고 생존자들을 구해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수년 전 얘기다.

세기말 맨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차라리 저들처럼 좀비라도 되는 게 행복할지도 모른다. 자살이라도 할까? 칼을 들어 손목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고 싶다. 한줄기 희망이라도 있다면 아직 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화장실을 나와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끌어올리고 몸을 웅크렸다. 이제 내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이다.

 

아저씨, 아저씨는 사람이에요?”

다음날 음식을 구하러 돌아다니는데 웬 꼬마를 만났다 많이 쳐봐야 중학생 정도로 밖에 안보이는 핏덩이였다. 꼬마는 어느순간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주변에 좀비들이 있던 말던 녀석은 녀석 나름대로 조심하며 내 곁에 붙어있었다.

너는 갈 곳도 없니?”

참다 못해 내가 얘기했다. 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팔을 들어 한 구석을 가라켰다. “저기. 저기 다들 있어요.”

고개를 돌려 꼬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컨테이너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는 곳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주위에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실제로 피난소 같은 것이 있을 줄이야. 조금 놀랐다.

일단 여기는 위험하니까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꼬마와 함께 컨테이너 쪽으로 걸어갔다. 당해히 놈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엇다. 주변에 설치되어있는 울타리를 지나고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마 한 가운데로 빨간 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웬놈이냐? 사람이냐?”

손을 펴고 양손을 들어올렸다. 괜히 저항을 하다가 총에라도 맞으면 나만 손해이니 여기서는 얌전히 따르는 것이 좋겠다.

이 꼬마를 데려다주러 왔습니다. 바깥은 위험하니 애 간수 좀 하세요.”

그러자 레이저가 사라지고 한 남성이 나왔다. 한손에는 작은 권총을 가치고 있었고 나를 겨냥한채 꼬마에게 다가갔다.

어디 있었어? 다들 걱정했잖아.”

미안. 미안. 그래도 이 아저씨랑 같이여서 괜찮았어.”

남자가 총을 거두고 내게 다가왔다. 조금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군. 고맙네. 요즘 아이들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네도 그런 줄 알고 오해했네. 미안하네.”

됐고.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손을 뿌리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컨테이너 박스는 하나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십 개는 되는 것 같다. 보아하니 단순한 컨테이너가 아닌 것도 몇 개 정도 있는 것 같다. 밖에서도 보이는 총이나 화기가 심상치 않았다.

여긴 생존자들의 피난소 같은 곳이야. 이곳에서 백신을 연구하고 다들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고 있지.”

백신?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 녀석들도 결국 의미 없는 짓이나 하고 있다니.

잠깐. 당신 팔의 붕대 안쪽을 좀 보여줄 수 있나?”

역시. 이렇게 나올줄 알았다. 하지만 딱히 숨길 생각은 없기에 붕대를 풀었다. 천천히 붕대를 풀면서 보았다. 상처는 아문지 오래고 흉터만 남아있었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어느새 총을 꺼내 내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이런 젠장! 너 이새끼 감염자였어?”

워워. 진정하라고. 이건 물린지 몇 년이나 된거라고.”

?”

남자의 반응은 당연했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나라면 이빨 자국이 있는 시점에서 머리통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설마, 너 항체를 가지고 있는 거야?”

아아. 어째서 이 얘기가 나오지 않나 싶었는데. 결국 나와버렸다. 항체. 나도 알고 있다. 내 몸에 좀비 바이러스 항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좀비에게 물렸을 때는 목이라도 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겁쟁이에 불과했고 그렇게 불안과 초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게 일주일이 흐르고 한달이 지나고 수년째 되는 데도 나는 아직 멀쩡했다. 보통은 하루면 다들 감염되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 그런 셈이지. 그럼 난 이만 간다.”

남자가 내게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싫은데. 이런 거 딱 질색이다. 무슨 구원자라도 만난 마냥 나에게 매달리는 모습.

어디가려고? 항체가 있다면 백신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인데. 당신 우리와 함께 있어야겠어. 우리가 살 곳과 음식도 제공해 줄게.”

거절하지. 난 내 집이 있어서.”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걸어갔다. 남자가 당황했는지 나를 따라왔다. 내 발걸음에 맞춰가면서 계속 여기 있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렷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야. 항체만 있으면 백신도 만들 수 있어.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해결?”

그냥 가려고 했는데 이 멍청이가 한 말에 뒤돌아보았다.

백신이라고? 웃기지마. 백신을 만드는 게 무슨 동네 약국에서 약 찍어내는 건 줄 아냐? 어마 무시한 시간과 물자가 들어. 그 뿐만 아닐 수 많은 실험을 해서야 겨우겨우 만드는 거라고.”

남자는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해결? 해결 좋아하시네. 백신이 만들어졌어.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 바보야? 백신은 좀비가 되지 않게 도와줄 뿐이야. 너가 좀비한테 찢기고, 먹히고, 죽는 걸 막을 수는 없다고. 단지 좀비가 안되게 해주는 것만 가능하다고. 멍청아. 백신을 만들어도 주위의 좀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남자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어차피 이제 희망 따위는 없다. 백신이고 나발이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고개를 돌려 컨테이너를 쳐다봤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놓치 않고서 살아가겠지. 하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여전히 길거리에는 놈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조용히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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