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보며 나를본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2021.04.14 PM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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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제목은 Feynman`s Rainbow. 지리의 힘 이후로 외국 책을 볼 때 영어 제목 먼저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 습관이 언제나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제목 간에 괴리가 상당하게 느껴졌으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둘 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제목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굉장히 잘 알려진 물리학자로 아인슈타인 이후 스티븐 호킹과 함께 물리학계의 최고 스타...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나 '시간의 역사'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스티븐 호킹의 연구와는 달리 파인만의 연구는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지만 이 정도로 연구 내용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리처드 파인만이 과학자가 인기를 끄는 것을 매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싫어했기 때문인데, 그의 연구를 일반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한다. 깊은 수준의 관련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실제로 이해할 수 없다. 


  노벨상은 양자전기역학이라는 연구로 수상하였다. 양자전기역학... 이게 뭔 말인고 하니, 양자역학으로 기술되는 전자기학을 완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뭐... 그냥 제목만 알고 넘어가는 게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 외에도 다양한 부분에 족적을 남겼으나, 연구 자체를 나 같은 과학에 무지한 이가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파인만에 관련한 여러 책들은 그의 연구 결과라기보다는 행적이나 삶의 태도 등에 집중했다고 하는데, 그  대한 책들은 언젠가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내가 파인만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떤 유튜브 영상이었는데, 그 영상을 아래에 첨부한다. 파인만이라는 사람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 영상을 보면서 그에게 빠져들었다. 내가 느낀 그의 매력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길. 

 

 

 


이 책은 운 좋게(?) 파인만의 가까이에서 일하게 된 물리학자의 이야기로, 삶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물리학자가 파인만에게 영향을 받아 방향을 정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려울 수 있는 작가 본인의 연구 이야기나, 파인만의 연구 이야기 등은 거의 나오지 않고 각자의 캐릭터에 집중하여 이야기가 진행 되기 때문에, 그냥 에세이 읽듯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거 진짜 에세이인가....? 이 책을 에세이라고 해도 별 무리는 없을 듯. 진짜 장르가 뭐지 이 책.... ? 


 파인만이 이 책의 작가에게 한 조언 증 가장 중요한 것,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재미있는가? 와 가슴이 뛰는가?이다. 글쓴이의 문체 때문인지, 실제로 파인만이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파인만이 본문에서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가장 큰 특징이 뭐였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이라며 자답하고는 '잊지 말게, 재미있어야 하네'라고 말하는 부분이 왠지 자조적으로 들렸다. 감정을 빼고 건조하게 다시 읽어보면 자조적인 말이 아닌데, 왜 처음에 읽을 때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재미를 느낀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랬던 것이 대체 언제였던가.... 


 글쓴이가 파인만을 알게 된 시기는 이미 파인만의 인생에서 거의 마지막 시기... 여러 번의 암 수술 후 거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책 안의 파인만은 상당히 정력적으로 보인다. 미련이 없기 때문일까.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구절을 그대로 옮겨 본다. 


 


  나는 아를린과 함께 있어 행복했네. 우리는 몇 년 동안 아주 행복했지. 그러다 아를린은 결핵으로 죽었네. 나는 결혼할 때 아를린이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네, 내 친구들은 나더러 결혼하지 말라고 했지. 아를린이 결핵에 걸렸으니까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네. 하지만 나는 의무감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은 아니야. 아를린을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지. 사실 친구들은 내가 결핵에 걸릴 것을 걱정했는데 나는 걸리지 않았어. 우리는 아주 조심했지. 우리는 병균이 어디서 오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런 쪽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네. 정말 위험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어. 


 이런 경우 과학은 예컨대 죽음에 대한 나의 태도에 영향을 주지. 나는 아를린이 죽었을 때 화를 내지 않았네. 누구를 향해 화를 내겠나? 신을 믿지 않으니 신에게 화를 낼 수도 없잖은가. 그렇다고 박테리아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무런 원한이 없었고, 복수를 노릴 필요도 없었네. 회한도 없었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천국이나 지옥에서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네. 내가 믿는 것은 나의 과학으로부터 온다는 것이 나의 입장인 셈이지. 나는 과학적 발견을 믿네. 따라서 나 자신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있네. 나는 얼마 전에 병원에서 퇴원했고, 이제 얼마나 더 살지 몰라. 어차피 조만간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야. 모두 죽지. 단지 언제냐가 문제일세. 하지만 아를린하고 있을 때는 한동안 정말 행복했네. 따라서 나는 이미 다 가졌다고 봐. 아를린이 죽은 뒤는 내 삶이 그렇게 좋지 않다 해도 상관이 없었네. 나는 이미 누릴 것을 다 누렸으니까. 



 굉장히 감동적인 말이지만 파인만은 아를린 이후 두 번 더 결혼했고, 카사노바로 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그렇게 카사노바로 산 것이 아를린을 못 잊어서 였을 수도 있겠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아를린이 죽었을 때 남들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괜찮은 척했다고 하지만, 사망 후 옷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진열되어 있는 옷을 보고 아내가 저 옷을 좋아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길거리에서부터 집에 갈 때까지 미친 듯이 울었다고도 한다. 또 사별한 아내에게 슨 편지의 내용 중 일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난 여러 여자를 만났고 그 중에는 함께 있고 싶은 멋진 아가씨들도 있었지. 하지만 두세 번 만나면 다들 재가 돼 사라지는 것 같아. 내게는 당신만이 남겨져 있지. 당신만이 진짜야. (후략)

추신.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한 걸 용서해 줘. 하지만 난 당신의 새 주소를 알지 못하는걸... "


데카르트에게 무지개가 그랬듯이, 파인만은 그의 바람대로 평생 가슴 뛰는 것, 즐거운 것을 하다가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행운을 누렸다. 파인만은 평생 그의 무지개를 보며 살았고 작가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샘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인생들이다. 부럽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나의 무지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파인만을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사람, 삶의 방향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추천한다. 

이미 잃은 방향성을 이 책이 찾아줄 수는 없겠지만. 


댓글 : 2 개
재미있어 보이네요
저도 사봐야겠어요!
책이 두껍진 않아 사서 보시긴 아까울 수도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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