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값올리기 v2] 손가락 절단사고2015.05.11 PM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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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절단사고가 발생했다.
경유편으로 20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타국의 생산기지에서
금형수리를 의뢰하여, 국내 최고 베테랑 기술자를 섭외하여 보냈는데

열손가락에 들어간다는 기술자가 손가락을 잘라먹었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사고 이틀전에, 여행의 목적이었던 우리회사 금형이 완벽하게 수리되었고, 양산을 위한 연속동작에서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오겠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다.
남은 기간, 구경 잘 하고 맛있는거 얻어먹고 오라고 했지만 부지런한 기술자의 못된 버릇.... 일이 있으면 손을 못 놓는다.

비행기 탑승까지 약 9시간 정도 남은 시점에서 온 전화는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였고, 그도 상황을 모르는 듯 했다.
"손가락이 잘렸다"
"병원으로 이동했다"
"비행기를 탈 수 없을것이다"
"스케쥴을 변경해달라"


모르는 사람 붙잡고 이리저리 물어봐봤자다. 나는 우선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는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한국시간으로는 퇴근시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안받더라.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서 한국의 나쁜 버릇이 쳐나온다.
내가 여행사를 통해 비싼 수수료를 더 물어가면서 항공권을 예약하는 이유는, 전문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장도 "국내 해당항공사 창구가 퇴근해서 연락이 어렵다. 니가 현지항공사로 연락해라" 라고 한다.

'그걸 니가 해야지 씹쎄야...'


사람 손가락이 잘렸는데, 지금 이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현지항공사 데스크 번호를 찾았고, 자료를 만들어 현지회사의 출장서포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1. 출장자의 건강과 손가락 복구를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해라.
2. 거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니 회사돈이던 니 개인돈이던 우선 집행해라
3. 모든 비용에 대한 것은 내가 책임진다. 모두 물어준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조치는 무조건 해라. 망설이지 마라
4. 그리고, 첨부된 연락처 항공사로 연락하여 일정을 연기해라. 수술 직후 상처가 터질 수 있으니, 약 일주일 후 가능한 일정으로 잡아라.
5. 판단이 필요하거나 망설여지면 무조건 전화해라.


나는 현장의 서포터가, 비용적 문제 또는 개인 책임문제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할까말까 망설이는 상황이 가장 두려웠다. 한국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주 빈번하게 일으키는 실수인데, 경영자나 조직 리더계층 사람들이 하나같이 ㅄ인 경우가 많아서 (혹은 사장이 ㅄ을 양산한다) 책임문제부터 따지기 시작하면, 필요한 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급이 오를수록 실무에서 멀어지고, 권한이 생기는 것은, 문제발생시 책임있는 판단결정을 할 수 있는 노하우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직급이 높을수록 그걸 피한다. 나는 그걸 걱정했다.


메일을 발송하고, 전화를 걸었다.
평소 비용문제로 어플로 걸거나,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닥치고 001로걸어야 한다.
명심해라, 당황한 상대 연락창구가, 회신만 눌러서 나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해아한다.


"손가락 상황을 알려주십시오. 접합이 가능한 상황인지, 완전히 잃어버렸는지 여부와 현지 의사의 소견과 현재까지 조치상태를 알려주세요"


금형에서 절단사고는 절단부위의 완전손상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금형은 형체압이 1000톤 이상이 보통이다.
여기에 말려들어가면 사람은 2~3mm 두께로 찌그러지는데, 온 몸의 혈액이 주스처럼 짜여져 기계밑으로 두 다리만 서있게 된다.

손가락이 말려들어갔으면 그냥 끝이다.


그런데, 손가락이 살아있다고 한다.
손가락은 한마디 반 정도가 잘려나갔으며, 인도 의사 의견으로는 단순접합이 불가능하며
수술을 위해서는 장기간 입원하여, 엉덩이 조직을 이식해가면서 살려내야 한다고 한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 손가락을 잘 냉장포장하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손가락 절단면에 판막혈액이 응고되면, 절단면을 어디까지 더 들어내야 접합이 가능할까??

일단,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공장장님에게 전화를 시도하였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
어버이 날이라고, 아이들이 한잔 산다는 전화에 신이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마도, 그 시간동안 전화기를 엎어둔 것 같다.

이 상황은 보고체계를 통해 사장님에게 보고되어야 하고, 사장님은 보상문제/책임문제를 계산해야 한다
혹은 담당자인 내가 권한문제로 망설이는 것에 대비하여, 내 질문에 즉답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공장장님이 전화를 안 받는다.


고민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자동위임된 것이고, 후에 책임문제로 인한 나의 불이익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의 손가락을 살리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자"
"손가락이 살아있다는 것은, 금형이 닫히면서 생긴 사고가 아니라, 제품을 꺼내기 위한 취출동작 중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수백kg의 후퇴력을 가진 동작구조라면, 절단면은 완전히 으스러졌을 가능성이 있다"

살릴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한다.

그때였다.
현지 서포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기, 잠깐, 비행기 그대로 두세요. 오늘 탑니다, 당사자 바꿔줄게요"
"대리님, 비행기 오늘 탈게요. 연장하지 마세요."

"손가락 상태는 어떤가요? 의사의견은 뭐라고 하나요?"

"대리님, 별거 아닙니다. 손가락 버리고 갈게요"






순간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
나름 정신력이 강한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다음에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멍때린 후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미래를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우리 직원도 아닌, 다른 직원을 빌려서 보낸 출장에
손가락이 잘렸다면.. 그 가족에게 뭐라고 해야하나
보상비용은 어찌해야하나, 저 사람 일하는데 지장은 없는가. 이후 저 사람을 통해 퍼져나갈 입소문은 어떻게 작용할까
비겁해 보이지만, 경영리더로써 꼭 고려해야만 하는 영역이었다.

본인으로부터
"포기하겠다" 라고 담담한 의견을 들은 순간부터
360도 모든 가용변수를 수용하고자 하는 나는 극도로 편협한 한줄 길만이 계산되어졌다.

내 가장 큰 장점이 박살나 버렸다.




멋진 리더는 바로 이 순간에 증명된다.
내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바로 내 사수의 이야기이다.
사고당시, 내 사수도 수술때문에 입원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국내영업담당인 그가 이번 일로 힘을 쏟는 것을 나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공장장님 연락부재 상황에서 사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그가 직접 관련된 것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전화가 왔다. 사수로 부터.
"메일에 안좋은 소식이 다니던데, 어떤 일인가??"

"출장지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손가락이 잘렸으며, 왼손 중지 약 한마디반 정도입니다."
"현지 서포터.부장이 함께있으며, 현재 병원이고, 현지의사는 수개월의 입원치료와 조직이식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또는, 손가락을 포기하고 절단면을 처리하는 치료 중 선택하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전화가 와서 손가락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야, 지금 바로 전화해서, 손가락 보존처리하고 오늘 비행가 그대로 타라고 해!!"
"나는 병원부터 알아볼테니까"

"살리는 겁니까?"
"살리고 뭐고 무조건 살린다. 살리는 걸로 일 진행시켜!"


사수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비행기 일정은 픽스하고
현지에서는 손가락을 처리하여 가지고 오도록 했다.
비용부분은 걱정말고 선진행 하고, 후처리 하기로 했으며, 환자에게는 비용문제에 대해서 걱정시키지 않도록 했다.

밤 늦은시간, 사수로 부터 연락이 왔다.
1. 국내 최고의 수지접합 의사를 인맥중에 찾아내서, 직접 수술해주기로 했다. (도착 당일이 주말이었다)
2. 병원 역시, 수지접합으로는 국내 3대 병원에 들어가는 곳.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국내 3대라고 하면 세계5위권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 1~2개 병원을 빼고 나머지 한국병원순서라고 한다)
3. 앰뷸런스를 공항에 대기시키기로 했으니, 너는 일정처리를 맡아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영업,리더,경영의 가장 중대한 역할이다.
나는 그러한 모든 포지션에 걸쳐있는, 우리 회사의 영업담당이고 지금은, 출장자의 창구이다.

"손가락을 못 살리더라도, 우리회사는, 우리 사장님은, 그리고 나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

인명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는 당연한 것이고
회사 이미지, 영업적 가치, 사고가 발생한 고객사의 입장, 사고당사자의 가족에의 입장 등 모든 상황을 고려 할 때
비용 몇천만원이 더 나가는 것은 비싼 것이 아니었다.
이건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사수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의도를 감지했고
다음 날 시간에 맞추어, 항공사와 공항에 모든 협조를 얻어내었다.

비행기는 착륙 직후, 마운트하기전에 뚜껑을 열어 사고자를 계단으로 인도하면
아래에서 공항앰뷸런스가 그를 태우고, 입국장쪽 차량마운트로 수송한다.
긴급마운트에는 병원의 앰뷸런스가 그를 이어받아서 병원으로 달려가고
병원에서는 미리 예약한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으며
병원에서는 환자가 들어가는 순간 마취의가 부분마취를 곧바로 시술하며
마취도중 환자가 이동하여 수술대에 눕자마자 집도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로스타임을 완벽하게 없애는 작전이 세워졌다.




변수가 발생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환자를 인도받은 앰뷸런스에서 전화가 왔다.
"환자 손가락이 짐칸에 있답니다"



씨발














작전은 수정되었다.
항공사 재량으로, 비행기는 짐칸에서 내려진 화물에서
손가락을 찾는 작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항공사 직원들이 동원되었다.
통상 30~40분이 되어야 짐이 돌기 시작하는데
비행기 착륙 후 10분째 전화가 울렸다.

"대리님, 짐 찾았습니다. 지금 C출구로 나갑니다"


"차장님, 짐 확보했습니다. 5번 마운트 앞 횡단보도에 절반 걸쳐서 대기하십시오"
"여어..지금 환자 담배피우러 갔다. 니가 와라"



씨발













앰뷸런스에 환자와 짐을 싣어주고는, 나와 같이 손가락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던 항공사 직원에게 속삭였다.
"저사람..업계 최고 베터랑인데 손가락 잘라쳐먹고, 혼자 잴 여유롭네요..ㅆㅂ"





나는 이후 문제처리를 사수에게 일임하고, 상황에 대한 알림을 요청하였다.
수지접합정보를 찾아보니, 이정도 수술은 10시간 정도의 대수술 이라고 하더라.
뼈를 맞추고, 모든 신경과 혈관을 하나하나 집어내서 이어붙이는 수술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수술 시작 3시간여 만에 전화가 왔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애초에, 사고발생 후 한국에 도착할때까지 시간을 약 35시간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정도 시간은 절망적인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다만, 인도의사가 절단부를 지혈한다고 다 막아놔서, 그게 더 오래 걸렸다"
모든 신경과 혈관을 다시 뚫어야 했으니까...지혈한다고 하는건 그냥 뭉그러뜨렸다는 소리다.
"초기대응이 신속했고, 보존상태도 좋았다."
"지금 확답할수는 없지만,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기대하는만큼 회복한다면"

"한다면?"


"흉터밖에 안 남을거라고 한다. 기능문제도 없대"





몸값올리기 실화
댓글 : 19 개
짱!
오오 무슨 소설읽는거 같네요
환자가 느긋햌ㅋㅋㅋㅋㅋ
와 저상태에서 담배 태우면 더 안좋을텐데

잘봤습니다. ^^
허헛.....한편의 엄청난 영화를 본것만같네요
근데 참 ㅂㅅ같은 인간도 다 있네요
글이 너무 재미집니다...
끝가지 다읽었어요 -_-b
한편 소설이네.. 소설이야 ㅋㅋㅋㅋ
손가락 잘려놓고 담배를.. ㄷㄷ
  • =ONE=
  • 2015/05/11 PM 06:51
글쓴이님 글 초기부터 쭉 읽어왔는데
볼때마다 참 긴박감 넘치고 흥미진진 하네요
마이피에 추천기능이 있다면 업뎃 될 때마다 추천폭격했을텐데요ㅎ
잘라먹은 사람이 제일 여유롭네요. ㅋㅋㅋ
대통령 해볼 의향 없으신지?
와 난 소설인지 알았는데... 필력 좋네요
재밌네요~~ 몰입도가 아주~~
긴글 잘 안읽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몰입해서 잘봤습니다!
햐... 대단하네요. 특히 중간에 씨발. 이 딱 두글자 박력 ㄷㄷ
와.. 진짜 욕조금 보태겠습니다.
님~ 졸라 멋지시네요!!!!!
진짜 앵간한 영화한편본 느낌입니다.
필력이 정말 ㄷㄷㄷㄷ
친추하고 갈께요..!! 받아주세요!!
잘라먹은 사람이 담배피는 여유라니 ㄷㄷㄷ
훌륭하십니다. 제가 당한일과는 전혀 다르네요.
늦게 현장일배운다고 반장들 따라다니다 삼성반도체에서 사고당해서 해고당햇습니다. 사고처리및 산재처리를 이상하게하더니 몇달간 연락안받으면서 회피하길래
산재신청하려고 서류보내니까 그제야 연락오고 공상처리운운하더군요.
결국 몇달치 돈받고 치료비받고. 해고됐습니다.
사고당하니까 같이일하는사람들 다 연락을 끊어버리더군요.
자신들은 모르는일이라는거죠.
그 상황과는 입장이 달라요.
금형업은 입지가 크기 못하고,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사람구하는 것이 정말 귀중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로 인하여 인재등용에 문제가 될만한 입소문이라도 생겨버리면 아주 곤란하지요.

이런 경영전략적 명분을 사장님이 납득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분은 명분인거고, 사고는 사고상황대로 좋은쪽으로 이용 할 겁니다.
그런데,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선 손가락을 살려내야 겠지요.

어제 확인한걸로는 100% 확신 못 한답니다. 간당간당 하대요
부디 살아나야할텐데요
멋지십니다 ㅎㅎ
역시 뭐가 중요한건지 확실히 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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