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선과 악의 환상] 신념과 절망 (6화)2022.07.07 PM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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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천사 루시퍼가 한 인간에게 말했다.

 

-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 모든 것을 신께서 만드셨다고 하셨다.

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지.

오직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

그러나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해야 할 천국에 시기와 불신이 싹텄고,

그 해결책으로 내 놓은 것이 다름 아닌 추방이었다.

거짓말을 한 거야.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내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처럼 너희의 생명에 한계를 둔 것이나 고통을 방관한 것에 숨겨진 뜻 같은 건 없다.

전지전능하다는 거짓말로 모두를 속이고 두려움을 심어놓은 것뿐이야.

그러니 우리가 직접 신을 찾아가 우리의 신념을 전하고,

창조주로서 세상을 방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이전 이야기들은 링크를 통해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남탄이 악마를 찾아 집을 떠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도시를 샅샅이 살피며 많은 악마를 찾아냈고,

이제 제법 악마를 처벌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신념이나 사명감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미행을 들키는 자잘한 실수는 물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적도 있었고, 찾아낸 악마를 놓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악마역시도 추적 도중 놓쳐버려

그를 뒤쫓아 이제 막 새로운 도시에 들어선 참이었다.

 

‘더러운 악마 놈이 잘도 숨어들었군. 냄새까지 기분 나쁜 도시야.’

 

꼬박 이틀을 쉬지 않고 걸어왔음에도 잠시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도시재건 건설현장을 찾았다.

어느 도시나 건설현장은 늘 사람이 많았고,

사람이 많은 만큼 악마가 숨어들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여러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역시나 현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매서운 눈으로 그들 한명 한명을 살피며 귀찮아 손사래 치는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을 이어가길 몇 시간.

귀에서는 웅~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고,

이따금씩 눈앞이 흐릿해지기까지 했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한계를 느낀 남탄은

식사도 할 겸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않았다.

손이 얼고, 발이 어는 12월의 싸늘한 기운에 건설현장 곳곳에는

태울만한 것을 닥치는 대로 주워 넣어 불을 피운 드럼통들이 여럿 보였고,

그 드럼통 하나가 남탄 앞에도 있었다.

찬바람 속에 실려 오는 따뜻한 온기가 좋았던지

남탄은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심호흡 하며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어깨를 가로질러 매고 있던 가방 안에서 빵조각 하나를 꺼내

입에 물자 어디선가 몰려온 인부 세 명이 드럼통 앞에 달라붙어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남탄은 때때로 그런 대화를 통해서도 중요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역시 무심한 척 행동하며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제 밤에도 갑자기 검은 비가 내렸었잖아.

작업하다 두고 온 연장이 생각나서 현장에 나갔다가

그 비를 그대로 맞을 뻔 했어.

별빛이 하나도 안 보이길 레 혹시나 해서 입고 간 전신방호복 덕분에 살았다니까.

근데 그때 나타난 거야 날개달린 인간 말이야. 내 앞을 휙 하고 날아갔다고!”

 

“이 사람이 하다하다 별 소릴 다하네.

그걸 자네가 직접 봤다고?”

 

“그래, 이 사람아.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착각일 수가 없는 게 그 깜깜한 데서 몸이며 날개며 허옇게 빛을 내고 있었거든.

그런 것이 내 앞을 휙 하고 가로질러 하늘로 날아갔으니

내가 본 것이 소문의 그거구나 했지.”

 

“이봐 자꾸 헛소리 할 거면 그만 쉬고 일이나 하러 가.”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 어디서 주워들은걸 말하는 게 아니고 내가 직접 본거야.”

 

“근데 이 사람이 자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날개달린 사람, 실은 나도 봤어 일주일쯤 전에.”

 

“뭐라고?”

 

“여긴 아니고 다른 순찰 구간이었는데 야간 순찰 중에 이 친구 말대로

허연빛이 보이길 레 저게 뭔가 하고 살피러 갔었지.

처음엔 누가 손전등을 비추며 장비를 훔치는 건줄 알았다니까.

근데 가까이 가려니까 그게 휙 하고 내 앞을 가로질러 날아가더라고.

너무 깜짝 놀라서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날아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사람이었어.

그런 게 하늘을 날아 구름 속으로 사라지더라고.”

 

“어허, 이 사람들이 정말.

자꾸 헛소리 할 거야! 정신 차려.”

 

“아니, 내가 정말 봤다니까!”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난 무렵부터 날개달린 인간을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다른 소문과는 다르게 모두 자신이 직접 본 목격담이었지만목격자가 그리 많지않아

다들 그저 관심 좀 끌어보려고 지어낸 이야기쯤으로 여길 뿐이었다.

 

“이 사람들아 자꾸 그딴 소리하면 여기서 쫓겨날 수도 있어.

이럴 때는 설령 봤어도 못 본 척, 들었어도 못들은 척하라고.

정신 나간 놈으로 낙인찍히면 그 길로 배급도 끝이야.

요즘 또 이상한 소문이 나돈다고 단속하고 다니는 거 못 봤어?”

 

“이상한 소문이라니. 우리가 모르는 뭐가 또 생긴 거야?”

 

“최근에 들은 건데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땅 밑 어딘가에 모여 있다는 거야.”

 

“땅 밑이라니, 죽어서 묻었다는 소리야?”

 

“그런 게 아니라 땅 속에 무언가 거대한 시설을 만들어놨다나.

여태 사라진 사람들 모두가 그곳에 있다더군.”

“에이, 아무리 소문이라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는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그리고 대체 뭐 때문에 땅 속에 모아놔.

먹을 건 또 어쩌고.”

 

“난들 알겠어, 나도 들은 것뿐이야.

이런 젠장 내가 그새 또 떠들고 있었네. 이거 어디 가서 나한테 들었다고 하면 절대 안 돼!

그냥 잊어버려.”

 

“뭐 좀 믿을만해야 떠들지. 대체 그런 건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

 

“혹시 그 여자한테 들은 거야?”

 

“그 여자라니?”

 

“자넨 아직 못 봤나? 아까 여기 온 걸 봤었는데... 아, 그래 저기 있네.”

 

“저 여자?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우연찮게 잠시 몇 마디 나눈 것뿐이야.”

 

“우연이라고? 응? 우연히!”

 

“그래, 누가 봐도 우연은 아니겠어.”

 

“너무 그러지들 말어. 알고 보면 딱한 사람이야.”

 

“이런, 정신은 자네나 차려 이 사람아. 딱한 건 자네 집 사람이라고.

알아들어!”

 

남탄도 덩달아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얼굴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묘한 매력이 묻어나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겨진 모습이 있었으니

남탄의 왼쪽 눈에 비친 그녀의 실체는 여자도 아니었고, 더욱이 사람도 아니었다.

온몸이 불에 타 검게 그을린 타락천사. 그 증거로 다 타버려

뼈대만 남은 앙상한 한 쌍의 날개가 등 뒤에 달려있었다.

 

‘괴이한 소문이 이상하게 많다 했더니 더러운 악마 놈들의 소행이었구나.’

 

비록 뒤쫓고 있었던 놈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 사냥감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미행을 눈치 챌까 조심스럽게 따라다니길 반나절.

악마는 모두가 집으로 향하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 속에 섞여

그들과 함께 노동하며 그들 틈에 섞여 같이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질 즈음이 되어서야 바래다주겠다는 남자들의 호의를 수차례 거절하며 홀로 길을 나섰다.

남탄은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 찾아낸 이 순수한 악마를 반드시 처단하고 싶었고,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한참을 더 뒤쫓았다.

그러나 천국과 지상을 통틀어 수천 년을 살아온 노련한 악마가

어설픈 인간이 내뿜는 살기를 모를 리 없었다.

이리저리 남탄을 질질 끌고 다니던 악마는 이내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곧바로 그곳에 암흑을 뿌려 함정을 만들었다.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남탄은 골목길 안에 들어서자마자

함정에 빠져 어둠보다 더 깊은 암흑에 휩싸이고 말았다.

 

“흥, 악마 놈이 부린 술책인가. 이따위 것쯤...”

 

나무창으로 빛을 비추어 함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생각과 다르게

제아무리 밝게 비추어보아도 주위에 분간할 수 있는 사물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주위 모든 소리마저 차단돼

공간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남탄은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분명 바닥을 딛고 서 있는데도 마치 바닥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으니

그만 제발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건물 벽에 매달려 남탄의 머리를 뽑아내려던 악마가

넘어지며 휘두른 남탄의 나무창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덕에 악마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악마는 마치 냄새를 맡는 것처럼 킁킁대며 남탄에게 말했다.

 

“그 빛. 분명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는데... 그래, 알았다. '

네놈 미카엘의 하수인이구나.”

 

악마에게 대꾸할 필요가 있을까. 자리에서 일어난 남탄은

악마의 가슴을 노려 이리저리 나무창을 찔러댔다.

그러나 재빠른 악마는 마치 거미처럼 벽에 붙어 그 모든 공격을 피했고,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그를 조롱했다.

 

타락천사는 분명 지금까지 상대해왔었던 악마가 된 사람들과 격이 달랐다.

그런데. 눈앞의 악마를 상대하기에도 벅찬데.

남탄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이내 크로울리로 변했다.

크로울리는 눈앞의 악마에만 집중하고 있는 남탄의 목을 옥죄기 위해

조용히 두 팔을 들어올렸다.

바로그때.

 

“이봐, 거기!”

 

누군가 이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기 때문에 크로울리의 기습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것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또 뜬금없었는지 악마와 크로울리 그리고 남탄까지

모두가 소리 난 쪽을 쳐다봐야했다. 그곳에 강철이 있었다.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야.”

 

양 손으로 권총을 감싸 쥔 강철은 크로울리를 정조준하며 최적의 사거리까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보통 때라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딸을 위해 그 어떤 위험에 휘말릴까

보고도 안본 척 안전한 길로 되돌아갔을 테지만

이들이 상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째서인지 검은 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강철은 그 비의 정채를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이대일 이라니 비겁하잖아. 이쯤 해두는 게 어때.”

 

입으로는 상황을 중재하려 하면서도 행동은 여전히 크로울리를 위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그림자 속에서 연기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지금도 인간과 거미를 합쳐놓은 것 같은 괴물이 벽에 매달려 있었다.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지만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까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 모든 상황을 인식하려 애썼다.

그렇게 완벽한 사거리 안으로 들어섰을 때 크로울리가 마치 강철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봐, 아직 네가 나설 차례가 아니야. 돌아가 있어. 그러면 곧 ㄹ...”

 

그러나 지금은 대화시간이 아니었다.

크로울리가 방심한 틈을 타 남탄이 창을 크게 휘둘러 그의 팔에 꽂아 넣었다.

노린 것은 가슴이었지만 어쨌든 성과가 있었다.

 

“끼아아아악!”

 

남탄은 고통에 겨워 비명 지르는 크로울리를 향해 다시 창을 높이 들어

이번엔 정확히 가슴을 조준 했다.

그러나 귀가 아플 정도로 세 번이나 연속해서 총소리가 울렸기에

남탄은 본능적으로 총소리가 울린 곳을 바라보았다.

총구는 남탄의 머리 위를 향해 있었고,

남탄이 다시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자

칼처럼 날카롭게 변한 날개로 남탄의 목을 노렸던 악마가 비틀거리며

건물 위로 도망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로울리도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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