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선과 악의 환상] 두개의 길 (2화)2022.06.02 PM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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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천사 루시퍼가 한 인간에게 말했다.

 

-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 모든 것을 신께서 만드셨다고 하셨다.

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지.

오직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

그러나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해야 할 천국에 시기와 불신이 싹텄고,

그 해결책으로 내 놓은 것이 다름 아닌 추방이었다.

거짓말을 한 거야.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내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처럼 너희의 생명에 한계를 둔 것이나 고통을 방관한 것에 숨겨진 뜻 같은 건 없다.

전지전능하다는 거짓말로 모두를 속이고 두려움을 심어놓은 것뿐이야.

그러니 우리가 직접 신을 찾아가 우리의 신념을 전하고,

창조주로서 세상을 방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첫 번째 길

 

동틀 무렵 집을 나선 남탄은 해질녘까지 열두시간이나 힘든

육체노동을 했음에도 또다시 교회 수리를 도맡아했다.

전기나 수도, 도로 같은 공공실설의복구가 중요한 이 시점에

종교시설 복구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다행인것은 완전히 부서진 다른 교회들과 달리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멀쩡했고, 엉성하게나마 외벽도 붙어있어 급한 대로

비바람을 막고자 수리를 시작한지 이제 열흘째였다.

지난 10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돼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보니

수리하면서 쓴 자재라고는 다른 부서진 건물에서 주어온것들 뿐이었고,

그래서인지 외관이 영 흉물스러웠다.


불이라도 밝힐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해가 저물자 들쑥날쑥

시커먼 건물 윤곽이 교회를 더욱 흉물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삐걱 대는 소리가 음산한 기운마저 풍기며 이상한 소문이

나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남탄은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고,

힘든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최서을 다해 교회수리에 임했다. 

한참 수리에 열중하던 남탄을 부른 것은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신부님이었다.

기도문을 낭독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보다도 어두웠다.

교인모두가 힘을 모아 겨우 양초100여개를 모았지만 그 또한 아끼고

아껴야 했기 때문에 단 몇 개만을 깔아두어 간신히 길을 밝히는 수준이었다.

모든 것이 모자라고, 또 많은 것이 불편했어도 뿌리 깊은 믿음과

강직한 신념을 지닌 자에게는 기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식처가 되었고, 남탄은 그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교회의 모든 일정이 끝난 것은 자정이 가까워 진 때였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빠져 나간 사람들로 교회는 금방 비었다.

신부님은 텅 빈 교회 안에서 잠시 혼자만의 기도를 이어가던 남탄을

기다렸다가 그가 일어서자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다리 다치신 곳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그럼요. 신부님 기도 덕분에 진작 다 나았습니다.”

 

“그거 참 다행입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형제님이 계셔서 저희 모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신부님.

여기 이곳에 안식처가 있다는 것이야 말로, 그리고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신부님이 계시다는 것이야 말로제게 크나큰 위안과 위로와

도움이 된답니다.”

 

“저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자매님들 또한 형제님을

귀감으로 삼고 있답니다. 형제님은 참으로 은혜롭고, 또 자상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이곳에 오신지 얼마 안 되셨다죠?”

 

“네, 10년 전쟁동안 이곳저곳 참 많이 떠돌아다녔었습니다.

그러다 곧 전쟁이 끝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이

두 달 전입니다.

그 믿음대로 얼마 전 발표한 종전 선언을 듣고서

이 도시에 정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군요.

힘든 시기를 잘 견디어 내셨습니다.

그 어느 전쟁이 안 그렇겠느냐 만은 우리가 겪은 10년 전쟁 또한

참으로 비참하고, 또 참담한 전쟁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반복하여 일어나는 걸가요.

잃은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 덕분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깃들어있는 오만함을 모두 벗겨내고,

신께서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 나가다보면

참된 행복이 우리 앞에 올 것이라 믿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신께서 뜻 하신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요.”

 

“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신부님은 진심으로 남탄을 존경했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에는 신부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그만의 깊은

신앙세계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종종 어색한 경우가 생기곤 했다.

신부님이 어물쩍 작별인사를 전하자 인사를 마친 남탄이

드디어 교회 밖으로 나왔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저 앞에 몇 개 되지 않는 가로등이 깜박이며 길을 밝히려 애쓰고 있었지만

무심하게도 하늘을 가득 매운 시커먼 먹구름이 세상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들었다.

먹구름은 한가득 비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교회를 나와 몇 걸음이나 뛰었을까 예상대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에 젖을세라 어렵게 얻은 식량 가방을 품에 안고 한동안 달리다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처음엔 피곤하기도 하고, 또 온전치 않은 가로등이 하도 깜빡여 대니

그 때문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니 그게 아니었다.

 

‘이상해...... . 이 빗방울 분명 검은색이야!’

 

세상에 검은 비가 처음 내린 이날 검은 비를 목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전쟁 때문에 나타난 기현상쯤으로 여겼다.

전쟁 막바지에 종종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시커먼 먼지가 날리곤 했었으니

지독히도 쌓인 전쟁의 먼지를 씻어 내리느라 검은 색인 된 것 인줄로만 알았다.

남탄 역시 이 검은 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래서 귓가에 낮선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것을 검은 비와 연관 짓지 못했다.

그랬기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속삭임을

오직 신께서 내려주신 계시라고만 생각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머릿속으로 들어와 말하는 것 같았고,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토록 원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

속삭임은 계속해서 남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었으며

그것에 자신의 이해를 더하자 그 어떤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 문장은 마치 환청처럼 남탄 스스로 완성해낸 것이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수많은 악마가 창궐해 네가 사는 세상에 숨어 살며 너희를 유혹하고,

또 악행을 일삼고 있으니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질서가 무너졌고,

그리하여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혼란스럽기 그지없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이 좋지 아니하니 네가 그들 모두를 찾아내어

그들에게 내 뜻을 전하고, 그 책임을 묻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그 끝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

 

남탄은 깊이감동해 주르륵 눈물을 흘렀다.

살아오면서 이런 해방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그 누구도 얻지 못한

인생의 정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목적이 분명하고, 목표가 분명하며 더욱이 신께서 원하시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비록 아내와 어린 딸이 있지만 그것은 신의 계시 다음 문제였다.

남탄은 신이 내린 계시대로 모든 것을 걸고 악마를 찾아내

그들을 섬멸하길 갈망했다.

그럼 이제 악마를 찾아 나서면 되는데, 그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내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신의 뜻을 전할 수 있지?

남탄은 하늘에서 전해져 내려온 속삭임을, 신의 계시를 더욱 자세히 듣기 위해

근처에 있는 부서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때부터 속삭임이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제가 미천하여 당신께서 전하신 이야기를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찾아내고, 또 어떻게 처벌 할 수 있겠나이까.”

 

마치 기도하듯 혼자 중얼거리며 한동안 건물 안을 서성였지만

귀에 울리는 것은 밖을 어지럽히고 있는 빗소리뿐이었다.

느닷없이 불안이 찾아와 남탄의 가슴을 옥죄었다.

방금 전의 해방감은 온대간대 없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떤 답답함에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본 것은 그때였다.

잘못 본 것일까.

금이 가고 더러워진 유리여서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한쪽 눈,

정확히 왼쪽 눈이 빨갛게 빛나는 것 같았다.

한순간 그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불안이 극에 달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귓가에 울리는 것은 쿵쾅대는 심장 소리뿐이었고,

시야가 점점 좁아지더니 결국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참동안을 심호흡을 하며 겨우 정신 차린 남탄은

시력이 돌아오자 미친 듯이 무언가를 찾아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 깨진 거울 조각 하나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고는 천천히 거울에 얼굴을 비추자

왼쪽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비록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음에도 그 모습이 혐오스러워

깊은 곳에서부터 구토가 올라왔다.

 

‘내가 속았구나.

놈들에게 속은 거야. 이건 마치......’

 

단지 한쪽 눈이 붉게 물든 것뿐이었지만 남탄은 확신 할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고, 또 증오하던 악마의 모습.

남탄은 어느새 악마가 되어있었다.

 

‘놈들이 함정을 판 거야. 그런데 언제, 어디서 함정에 빠진 거지?

...검은 비다! 맞아 검은 비야.

비가 검은색 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그 비를 맞으면서 부터

속삭임이 들려왔고, 비를 피해 여기 들어오자 멈췄어.

놈들다운 짓이야.

악마의 속삭임을 신의 계시로 알아듣다니, 이 추태를 어떻게 속죄해야 할까.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그래, 비를 피해 이곳에 들어온 것은 분명 신께서 나를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야.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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