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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담] 한참늦은 조커감상-아서의 캐릭터를 고찰하며 (1) 2019/10/10 PM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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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찐따의 삶을 살지는 않았나보다'
 영화 '조커'를 보고 처음 느낀 감상은 위와같은 것이였습니다. 극중 아서가 처한 현실에 일부분 동질감을 느끼고, 그가 품는 망상에 저 자신의 망상인냥 민망함을 느끼며, 그의 분노에 백번 공감할 지언정, 아서의 폭발에는 알수없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느낀 것이죠.
 영화의 완성도나 그 폭발적인 흡입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평가를 내린바, 저는 이 글에서 영화의 주인공 '아서'의 캐릭터를 고찰하는데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이 고찰을 통해 위에서 말한 '불편함과 부당함'의 정체를 파악해 보겠습니다.
 1. 아서는 정말 착한 사람이였는가?
 극중 아서의 인생이 불행의 연속으로 점철된 처참한 비극이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입니다. 어린시절 애정이나 관심이 아닌 다른 엉뚱한 목적으로 입양되어 끔찍한 학대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로인한 뇌손상으로 정신적인 문제까지 발생했으며, 덕분에 평생동안 다른사람들의 오해와 멸시를 견뎌내어야 했습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와중에 어머니까지 모셔야하는 팍팍한 일상에 나날이 꿈은 멀어져 가고 , 희망은 산산이 부숴진 나머지 덧없는 망상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끌고 나가는 인생인 것이죠. 마치 힘겨운 어깨를 늘어뜨리고 천근만근의 다리를 끌며 계단을 오르는 것 처럼.
 그러나, 이것은 아서의 비극이고 인생의 무게일지언정 아서가 착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될수 없는 것입니다. 아서라는 인물에 대한 연민의 근거일 지언정 그를 믿을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죠. 아서가 속해있던 광대 파견업체 사람들중 그 누구라도 아서보다 확연히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물론 아서와 같은 정신적 문제로 인한 오해와 멸시는 없었을지라도 모두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아닌가요? 하루하루가 힘겨운 나머지 자기 주변에 철조망을 두르고 조금만 틈이 보이면 서로를 찔러대며, 시기하고, 상처입히고, 모략하며, 웃음거리를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단 한사람이라도 아서에 비해 확연히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이제 광대 파견업체 사람들중 왜소증 장애인 게리를 한번 살펴 볼겠습니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요? 물론 아서같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였겠지만, 그가 평생 겪었을 멸시와 천대가 아서보다는 나은것이였을까요? 평생동안 남의 놀림거리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별볼일없는 파견업체의 광대가 되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연명하는것이 게리의 인생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서가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사무실에 돌아왔을때 진심으로 그를 위로한 사람은 게리 하나뿐이였죠. 그런 게리에게 누군가 '너한테는 미니골프가 진짜 골프겠지' 따위의 농담을 던졌을때 아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나도 웃어야해' '이것봐. 나도 큰소리로 웃고있어' 라는듯한 광소였습니다.
 누군가 내 벗겨진 머리를 보고 '애 데리고 스케이트장 갈 필요 뭐 있어? 그냥 니 머리위에서 태워.' 라고 했을때, 누군가 내 불뚝 솟은 뱃살을 보고 '이야 이것이 그 유명한 솟을 대배' 라고 했을때, 누군가 내 커다란 머리를 보고 '어우 그 인형탈좀 벗어' 라고 했을때, 단 한번이라도 이런 농담이 진심으로 재미있다고 느끼신분 계십니까? 우리가 이런 농담을 듣고 웃어 넘기는 것은 그 농담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 아닌가요? 평생을 놀림거리가 되어온 왜소증 장애인에게 위와같은 미니골프 농담이 재미있었겠습니까? 결국 자기자신의 불행과 분노만 억울할뿐 다른사람의 기분이나 불행에 별 관심이 없는것은 아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번에는 아서가 랜들에게서 총을 얻었을때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총을 가지면 안돼'라는 말로 한번 거절의 뜻을 밝히기는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총에대한 아서의 반응은 도취와 집착이였습니다. 총을 집에 가져와서 한껏 찐따미를 뽐내며 폼을 잡다가 실수로 한발 발사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서가 이 알량한 힘에 얼마나 도취되었는지 읽을수 있는 것이고, 어린이 병원에 공연을 하면서도 총을 가지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서가 이 알량한 힘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읽을수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아서가 처음 말한 것처럼 아서는 총을 가지면 안돼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그 알량한 힘조차도 담을 인격적인 그릇이 마련되지 못한 사람인 것이죠. 자신의 그릇으로는 다 담을수 없는 힘을 휘두르기 시작한 순간, 인간으로써의 아서는 파멸하기 시작합니다. 첫 살인이 저질러진(스스로 저지른것이 아닌) 것이죠. 우발적인 첫 살인이 저질러진 순간부터 아서를 붙들고 있던 '인간'의 끈은 끊어지고, 두번째 세번째 살인부터는 아서 스스로 도망가는 사람을 쫒아가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리곤 어딘가의 화장실로 숨어들어가 첫 살인의 쾌감에 도취된채 나른한듯 황홀하게 춤을 춥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서에게 처음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숨어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처음 우발적인 살인이 벌어졌을때 당혹감이나 죄책감을 느껴 상응하는 반응을 보인것이 아니라 주저없이 두번째, 세번째 희생자를 쫒아갔으며, 세번의 살인을 마치고 나서 다시 '인간' 아서로 돌아온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향해 휘두른 폭력적인 힘에 도취되어버린 것이죠.
 2. 망상과 현실의 경계
 영화는 아서의 망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여 진행됩니다. 때문에 어디가 망상이고 어디가 현실인지는 관객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일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랜들이 먼저 총을 건내준것이 망상이고 실은 아서가 먼저 총을 구입하려 했다고 해석할수도 있고, 어머니와 정답게 대화하던 그 모든 장면이 망상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으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극 전체가 사실은 '아서'가 아닌 '조커'가 아캄정신병원에서 상담중에 혼자서 행한 망상이였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조커'라면 바로 위 해석이 더 어울리긴 합니다. 이미 킬링조크에서 '여러버전의 과거'를 들먹인바 있고, 다크나이트에서 매번 다른 과거를 말한바 있으며, 근원을 알수 없는 혼돈이자 광기로써의 조커라면 극 전체가 망상인 쪽이 훨씬 그 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캐릭터의 완성과는 별개로 이 모든것이 망상이라면 극 전체의 주제가 붕괴하는바, 이번 '조커'라는 작품에 한정해 극 전체를 읽으려 한다면 망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지만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났던 일로 파악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가? 이 부분에서 저는 좀 엄격하게 '감독이 연출적으로 이 부분은 망상이라고 알려준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현실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즉, 처음 머레이 쇼에 관객으로 앉아있다가 출연하는 망상,같은층에 사는 소피와 사귀는 망상, 관련해서 코메디 클럽에서 공연후 갈채를 받았다는 망상(공연은 현실, 갈채는 망상)까지만을 망상이였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망상은 병리적인 망상과 자발적인 망상으로 구분할수 있습니다. 조현병등의 예후로써 스스로 통제할수 없거나 현실과 구분할수 없는 망상이 있고, 보통 우리가 하는 자기 위안적인 망상이 있습니다. 이중 우리가 하는 망상이란건 어떤 것일까요? 어느날은 날 괘롭히는 그새끼와 패거리를 17대1 상황에서 박살을 내주고, 어느날은 날 거들떠도 안보는 그녀가 내게 절절한 고백을 하고, 어느날은 멸망을 앞둔 세계의 구원자가 되어 마왕을 쓰러뜨리고...... 이런 밑도 끝도 근거도 가능성도 없는 망상, 우리는 왜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망상을 하면서 그것이 사실은 이루어질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망상을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잘 나갈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찐따에 별볼일없고, 놀림거리일 뿐이며,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습니다. 날 좋아하는 여자따위 있을리 만무하고, 내가 뭔가 두각을 나타내는것은 기껏해야 페이스북 좋아요 갯수나 내가 단 악플에 화를내는 사람들의 숫자 뿐이며, 이제까지도 앞으로도 내가 꿈꾸는 인생은 살아본적도 없고 살아가게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러니 근본없는 망상속에서라도 위안을 찾는 것이죠.
 다시말해 망상은 '나도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절규이고, 이루어지지 못한채 시들어버린 희망의 파편이며, 우리가 희망이라는걸 품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얼척없고 우습지만, 어쩌면 망상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마지막 증거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아서의 망상으로 되돌아와서, 아서의 망상은 어떤 종류의 것이였을까요? 통제할수도, 구분할수도 없는 병리적인 것이였을까요? 우리와 다를바 없는 찐따의 백일몽이였을까요?
 아서의 망상이 현실로 인해 붕괴하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로 머레이 쇼에서 아서의 비디오가 방영되던 시점입니다. 이때 아서의 첫 반응은 '내가 머레이쇼에 진짜로 나온다'라는 기쁨이였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단지 웃음거리라는것을 알고 분노하게 되죠. '어? 나 그때 분명히 갈채를 받았는데?'라는 의문이나 '이건... 뭔가 잘못 됐어.'라는 당혹감이 아니라, 확연한  분노를 먼저 느낍니다. 다시말해, 아서는 그날 실제로는 갈채를 받은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후 너무나도 실망한채 -짝사랑을 하다하다 선을 넘는 찐따들이 모두 그렇듯이- 소피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갔을때는 어땠나요? 소피와 자신이 진짜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했다면 왜 몰래 숨어들어가야 했나요? 게다가 소피가 자신을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때 아서의 반응은? '왜이래? 너 지금까지 나랑 붙어다녔잖아? 내 공연에 와서 웃어줬잖아? 키스도 했잖아?' 던가요? 소피와 있었던 일들이 실은 망상이였음을 알려주는 컷들이 하나하나 지나가고 그냥 힘겹게 고개를 떨구며 '오늘 정말 엿같애'라고 할 뿐이였죠. 이것이 과연 자신이 구분할수 없던 현실을 마주한 사람의 반응 같나요?
 3. 어쩌면 너,나,우리의 이야기
 아서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었고, 다른사람의 불행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우리가 그렇듯이 망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이였죠. 그리하여 아서는 현실의 우리들과 동등한 사실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그리 착할것도 그리 올바를것도 없는 그저그런 찐따들이잖아요? 아서가 개리만큼 착한 인물이였다면 오히려 '이런 착한 사람조차도 타락할 만큼 사회는 썩었다'라는 선동 영화가 되었을 것이고 아서가 최후에 갱생했다면 '그래도 이 사회에 희망은 있어'라는 프로파간다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허나, 감독은 아서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지도 갱생시키지도 않고, 그저 비극에 떠밀려 흘러가다가 인간으로써 파멸한 괴물-그는 더이상 희망도 애정도 자기위안적인 망상조차도 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로 만드는 것으로 냉정한 사실성을 완성해냈습니다.
 바로 여기가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의 정체일수 있을것입니다. 이 영화의 아서는 다름아닌 우리 보통 찐따의 초상이며, 아서의 화려한 파멸은 어쩌면 우리의 자기 파괴적 망상의 현현이라는 점. 어쩌면 '어이 어이 너도 조커냐?' 가 농담이 아니라 '나도 조커였으면' 이라는 위험한 망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치 거울속에 형편없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듯한 민망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한가지 위안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찐따의 삶을 살지는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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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마키    친구신청

보면서 느낀게 딱 조현병환자 (정신분열증)을 기가막히게 만든 케릭이라고 느꼈네요
딱보면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망상인지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실상 전부다 망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영화 처음 시작할때 애들에게 간판등 빼앗긴것도 망상일수도 있다는점을 보여줌으로써 실상 중반부 3명을 총을 쏴죽인것도 실은 그냥 서 있는 사람인데 아서의 망상속엔 나쁜짓을 한 사람들로 인식되어 쏴죽일수도 있는것이구요 . 어찌되었든 망상과 현실의 괴리를 교묘히 끝까지 펼친것 같습니다
구급차로 박아서 죠커를 구하고 우상화 시키는 마지막 차에서의 장면도 망상일수도 있다는 처리를 비롯하여
보니까 시간에 11시 10분이라는게 자주 나오는데 이시간이 정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테스트를 할때 11시 10분을 그려보시오라는 테스트를 환자들에게 한다고 하더군요
[영화잡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감상 (스포일러 주의) (0) 2017/12/15 AM 09:04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상예정이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먼저 영화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상대적인 것이며 개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일수 있다는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글을 통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악평을 쏟아낼 것이며 그것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신 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신 분들이라면 ''아... 저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번 에피소드 7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클래식 에피소드를 복제한 나머지 새로운 에픽을 구축하는데에 실패한 세계관, 극 진행의 편리를 위해 안이하게 설정되어지고 난데없이 등장하며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슈퍼웨폰 스타킬러베이스, 그로인해 클라이막스다운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스타킬러베이스 공습장면 등등의 이유로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적으로는 파탄수준이지만 스타워즈다우면서도 클래식 에피소드와는 차별되는 에픽을 구축해낸 프리퀼 시리즈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 7에서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주역 3인방-레이,핀,카일로의 캐릭터와 꼼꼼하게,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흩뿌려진 떡밥들이 그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에피소드에서 가장 맛났던 부분들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모조리 붕괴해버리고 맙니다.


 에피소드 7 공개이후 팬들 사이에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던 떡밥은 다름아닌 레이의 정체에 대한 것들이였습니다. 루크, 오비완, 팔파틴등 시대적으로 연결이 가능한 모든 네임드 캐릭터와 레이의 관계를 추측해 보았고, 클론이나 실험체, 심지어는포스의 현신이나 아나킨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설까지 나온지라 이것들중 하나가 아닐 가능성이 없어보일 정도였습니다. 카일로에 대해서는 어땠나요? 단순히 중2병으로 치부하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다스베이더에 집착하고, 다크사이드에 더욱 깊이 잠겨들기 위해 아버지 한 솔로를 죽이는 그의 모습에서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은 없으셨습니까? 혹은 에피소드3의 다스 플레이거스 테마를 정성스레 발라가며 흩뿌린 스노크 정체 떡밥은 또 어떤가요? 어째서 레이의 포스에 대한 잠재력은 저토록 거대하며, 그 잠재력이 하필이면 스카이워커 가문의 성검을 만지는 순간 '첫번째 가르침이다'라는 요다의 속삭임과 함께 훈련된 다크제다이의 마인드 컨트롤에 맞설만큼 폭발하는지? 루크가 잠적한후 작동을 멈추었던 R2-D2는 어째서 지도조각을 가지고 있던 BB-8이 아니라 콕 집어서 레이가 저항군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재작동 한것인지? 레아가 레이를 저토록 포근히 안아주는 장면이 정말로 연출실수인지? 정말 먹음직스러운 떡밥들 아닙니까?


 이번 에피소드에서, 지난 에피소드의 떡밥들은 모조리 가장 맛대가리 없는 형태로 회수되거나, 썩어버리거나,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레이의 부모는 그저 돈 몇푼에 딸내미를 팔아버린 시정잡배로써 자쿠 어딘가에 묻혀있고, 카일로는 그냥 다크사이드의 유혹에 경도된 나머지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였으며, 스노크는 사실 다스 플레이거스였던 다스 자자빙스였던 아무 상관없이 되어버렸습니다. 죽었거든요.


 사실, 레이의 부모가 그저 시정잡배일 뿐이라는 떡밥회수는 굉장한 드라마를 만들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나 자신은 특별한 사람일거라고, 언젠가는 특별한 나 자신을 발견할수 있을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알고보니 나는 아무 특별할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였다. 그리하여 실망하고 절망하여 시련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엔 시련을 이겨내고 나 스스로 특별해진다. 라는 전개... 뭔가 굉장한 이야기가 있을것만 같은 이 전개가 그저 반전을 위한 반전 정도로 소모되어버립니다. 극 중반까지 보여주는 레이의 놀라운 포스 잠재력, 포스를 통해 보게되는 수수께끼의 환상, 카일로와 포스로 연결되어 나누는 교감등을 통해 지난 에피소드의 떡밥을 강화하는데에만 골몰하다가 이 모든 떡밥들을 한순간에 날려먹은 다음 별다른 고민이나 시련없이 최후의 제다이로 인증해버리는 것이죠. 그 와중에 포스의 교감을 통해 아직 선함이 살아있음이 발견된 카일로는 단 한순간에 급전직하 그냥 자기 욕심에 충실한 개새끼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결국 '언젠가는 빛의 길을 걷게 될것' 이라는 레이의 대사도 지난 에피소드의 '그의 안에는 아직 선함이 살아있어' 라는 레아의 대사도 그냥 무의미한 허언으로 추락해버리는 겁니다. 뭔가 아슬아슬하게 빛과 어둠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직은 미숙한 다크 제다이라는 카일로의 캐릭터와 함깨 말이죠. 어떻게 보면 레이가 카일로안의 빛을 발견하고 카일로가 레이 안에서 어둠을 발견하는것은 새로운 떡밥일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맛있어 보이던 떡밥이 이렇게 쉬어버렸는데 새 떡밥을 물고 싶냔 말이죠. 여기에 더해 전작에서 팔파틴과는 다르게 제법 진중하고 합리적인 악의 카리스마였던 스노크는 극 중반까지 전작의 캐릭터를 붕괴당한채 말많은 악당 클리셰를 뒤집어 쓰다가 카일로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퇴장하면서 주인공한테 깝치다 총맞아죽은 악당 A급의 존재감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딴 존재감 없는 악당이 다스 플레이거스였던 팔파틴의 클론이였던 이젠 관심 없어요.


 전작에서 잘 만들어둔 캐릭터와 떡밥들을 이렇게 날려버리는 와중에 영화는 의미없는 간지내기와 새 캐릭터 띄우기에 몰두해 질질 늘어지고 맙니다. 저항군의 탈출과 함대단위의 추격전, 그 과정에서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다가 종국에는 밀리네엄 팔콘에 탑승한 생존자들이 살아남은 인원의 전부일 정도로까지 철저히 괴멸당해버리는 저항군. 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긴장감이 전혀 없어요. 아무리 포 다메론이 출중한 에이스라지만 엑스윙 단기에 농락당해 대공포대를 모조리 파괴당해버리는 퍼스트오더 전함은 도대체 어디서 굴러다니던 깡통인지, 아군의 주요 전력이 단 한기이 적 전투기에 농락당하고 있는데 손놓고 구경만 하고있는 퍼스트오더 함대는 또 어디서 굴러다니던 당나라 군대인지, 애초에 전투기를 탑재한 적함 수척을 상대로 전투기 단기만으로 대공포를 모조리 무력화시킨다음 소규모 폭격편대로 공격하겠다는 작전은 어떤 닭대가리가 입안한 작전인지, 데스스타 공격에도 잘만 써먹던 어뢰들은 어따 팔아먹고 직접 상공에서 투하하는 폭탄을 쓰고 있는건지, 그 와중에 저 동양인 여자는 왜 저리 띄워주지 못해 안달인건지...... 오프닝 시퀀스 전투씬 만으로도 크게 실망했는데 함대 단위의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흐름은 더욱 지리멸렬하게 늘어집니다. 뭐 칼리마리 크루저가 무슨 잠수함은 아니니까 다스부트나 붉은 10월같은 쫄깃한 숨박꼭질 함대전이 나올리야 없다고 합시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포 다메론이 무리하게 적함 무력화를 고집한 나머지 전투기 전력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고 해도, 아무리 카일로 편대의 공습에 전투기 격납고와 발진 데크가 파괴되었다고 해도, 함대단위의 추격전이 이렇게 시시하면 안돼죠. 뭔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급박함, 치열한 머리싸움과 작전싸움, 좀더 스펙타클한 함대전을 스타워즈에 기대하면 사치인건가요? 되도않는 PC캐릭터 띄울 러닝 타임에 이런거 해주면 안돼요?  모처럼 스타워즈에서 아군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선상 반란까지 일어났는데 이건 또 왜 이렇게 사족같나요? 갈등이 좀더 치밀했으면 하는 바램과 선상반란의 전개가 좀더 촘촘했으면 하는 바램이 욕심인가요? 어차피 핀과 로즈가 백방으로 뛰어다닌거 로즈의 PC쇼 말고는 다 헛짓이였는데 그 러닝타임에 이런거 묘사해주면 안돼나요? 칼리마리 크루저 특공장면도 그렇습니다. 뭐, 연출적으로 인상적이거 인정합니다. 근데 중간전개가 이렇게 늘어졌는데 간지만 잡으면 영화가 저절로 흥미진진해집니까?  모처럼의 아군내 갈등과 선상반란이 이렇게 스치듯 지나가 버렸는데 어느 포인트에서 '아 내가 저 사람을 오해하고 있었구나. 저사람의 참뜻은 그게 아니였구나' 하고 몰입해야 하나요?  스타워즈에서 크림슨 타이드 기대하면 안돼는 거였나요? 로즈가 목걸이 만지작 거리는 러닝타임으로 이런거 해주면 안돼나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로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망할 PC캐릭터를 띄우기 위해 너무나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하고 너무나 많은 중요 묘사를 생략한 나머지 정작 흥미진진해야할 부분들이 하나같이 수박 겉핧기로 지나가버린채 로즈의 PC쇼를 묘사한것이 극이 늘어지는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문제는 그녀가 단순히 PC캐릭터라는 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드넓은 은하계에 PC캐릭터 한둘쯤 있는다고 이상할게 뭐 있을까요? 영웅이 모두 예쁘고 잘나란법이라도 있답니까? 게다가 외모로만 보자면 그녀는 통통한 외모 치고는 제법 귀여운 축에 속하기까지 한다고요.(개인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이 캐릭터의 진정한 문제는 그녀가 극중 현실을 살아가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감독자신, 혹은 제작진이 설파하고픈 PC적 프로파간다를 관객에게 가르치기 위한 확성기로써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이여자는 고민도 두려움도 욕망도 삶의 고단함도 아픔도 없어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언니가 죽긴 했어요. 그것도 제작진의 무리한 띄워주기를 등에 업고 영웅으로써 희생해요. 그 때문에 첫 등장부터 쭈그려 앉아 오열하면서 등장하죠. 근데 이 캐릭터의 인간으로써의 묘사는 딱 거기까지뿐입니다. 그 이후는 그저 '언니의 유품'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핀과 함께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적재적소에서 PC프로파간다를 한마디씩 읇어주는게 역할의 전부입니다. 언니의 희생만으로 캐릭터의 모든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캐릭터로써의 깊이는 나노미터 단위가 되어버려요. 이런 초박형 캐릭터에 뜬금없는 로맨스를 끼얹습니다. 엔딩 근처에서 아무 예고없이 핀과 키스하는데, 저는 이 처자가 언제 어떻게 왜 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에피소드 5에서 레아가 한보고 '당신은 여자를 몰라'하면서 루크한테 키스하는 순간에도 '아... 저 귀한집 처자가 불한당한테 마음을 빼았겨서 자존심 세우고 있구나...' 라는게 느껴지고, 재미없는 로맨스의 대명사인 파드메와 아나킨조차도 '그래뭐... 남자가 저렇게까지 들이대는데다가 죽을 위기를 같이 넘겼으면 저렇게 될수도 있겠지' 싶은데 로즈는 왜 핀한테 빠진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목걸이 돌려달라고 대신 말해줘서 그랬나? 덤으로 아군 기계화 부대 코앞에서 반란군노무 시키 두마리가 꽁냥대고 있는데 퍼스트 오더는 아무짓도 안해요. 로맨스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나봐요.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스타워즈의 새로운 영역에 들어갔다는 평가는 정확한 것이였습니다. 루크는 -작중 거의 유일하게- 멋지게 퇴장했고, 팔파틴을 연상시키는 스노크는 죽었으며, 저항군은 문자 그대로 한줌 남았습니다. 그리고 진정 최후의 제다이이자 새로운 시대의 첫번째 제다이로 레이가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선함이 남아있다고 평가되었었지만 이제는 분노와 욕망만이 남은 카일로가 스노크를 뒤이을 악의 후계자가 되었죠. 그리고 저는 당연히 에피소드 9를 기대하게 될겁니다. 마치 배트맨대 슈퍼맨에 뒷통수를 쳐 맞았지면 그래도 저스티스 리그를 기대했었던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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