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백만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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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웹소설) 10,000회차 연재 후 끝장나는 세계 - 6 (0) 2021/09/24 PM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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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켓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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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잉?”

 

장 선생이 그 전단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요 앞 슈퍼의 세일전단이네……가만 있어봐계란 한판에 4천원?이거 꽤 싼 거 아냐?”

 

그렇다면 오늘은 계란 덮밥이다계란밥에 계란후라이를 얹고계란말이를 토핑하자그리고 야식은 계란찜이다.

장 선생은 그런 소박한 꿈을 꾸며 슈퍼로 향했다.

그렇다오늘의 이야기는 매우 클리셰적인 이야기.

장 선생이 눈독드렸던 4천원짜리 계란은 선착순 30.

그리고 그가 향하는 슈퍼의 반경 700미터 내에 거주하는 주부의 수는 약 150.

경쟁률은 최저로 잡아도 약 5:1. 계란 한판을 두고 다섯 명의 주부가 경쟁을 펼친다.

그렇다오늘의 장 선생이 겪게 될 결말은 이미 확정되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든장 선생은 오늘도 죽는다.

 

***

 

케 씨도 계란 사러 온 거야?”

장 선생.”

 

S시 고등학교의 기갑총사 케이젤은 투구의 바이저를 살짝 올려 보이며 말했다.

 

그런 장비로 괜찮겠나?”

케 씨도 참장보러 오는데 전신갑주를 입는 사람이 과하지내가 과한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데그런 장비로 괜찮겠나?”

그거 참…….”

 

장 선생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괜찮아문제 없어.”

무운을 빌겠다살아남기를.”

하하이 양반 오버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 대화가 오간 사이전직 루차도르(중남미식 프로레슬링 루차 리브레를 구사하는 프로레슬러를 지칭하는 말)이자 슈퍼마켓 나스카의 점장인 알 파카가 확성기를 든 채 단상에 올랐다.

 

.”

 

그 순간대기의 질이 바뀌었다클리셰에 둔감한 장 선생마저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장 선생과 케이젤 주위에는 어느새 범상치 않은 투기를 불태우는 역전의 아주머니들이 나타나 있었다.

 

뭐야이 아줌마들 다 어디서 나타났대?”

……토템 음악학원의 고 원장까지 왔군.”

 

케이젤을 긴장케한 토템 음악학원의 고 원장은 등 뒤로 나부끼는 늠름한 흰 털과 장대한 가슴이 인상적인고릴라였다

 

장 선생긴장하도록고 원장의 악력은 370kg에 달한다고 들었다저자한테 판을 빼앗기면 그 판은 포기해야 해.”

저기흐름을 못 따라가겠는데.”

호호호호이거 참동양고의 장 선생님그런 무장으로 잘도 나오셨네요?”

 

이번엔 장 선생도 아는 인물이었다.

 

조 사모님안녕하세요그런데 왜 도복차림을팔에 쇠고리까지 두르시고…….”

 

카앙!

 

순간불꽃이 튀어올랐다장타와 함께 팔에서 쏘아진 철륜이 장 선생의 심장을 노렸으나재빨리 반응한 케이젤의 숄더 태클이 이를 견제한 것이다!

 

중앙아파트 계모임 철륜문 당주 조 가오렌이게 무슨 짓이지알 파카의 신호는 아직인데.”

양철치고는 좋은 반응이네요나의 철륜장을 받아내다니.”

잘 정비한 갑옷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지.”

후후후장 선생은 별것 아니겠지만당신은 만만치 않겠군요.”

간만의 계란 특가세일이다중앙아파트의 요괴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어.”

해 봐라서양깡통.”

 

살기를 높여가는 가운데장 선생은 뺨을 긁적이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니까흐름을 못 따라가겠다니까이거 나만 갈피를 못 잡는 거야?“

봐서 알겠지만 장 선생오늘 세일엔 적이 많다석달 전의 한우 특가세일을 떠오르게 하는군내 미스릴 갑옷을 뭉갠 가위바위보 권법은 전율 그 자체였지.“

그때도 이렇게 죽일 기세였어?“

하지만 걱정 마라오늘우리는 두 사람의 마켓라이더니까.“

아니케 씨설명을 해설명을뭔 상황인데 이게.“

전우여함께 가자!“

 

장 선생이 혼란해 하는 사이 모든 마켓라이더들이 모였다.

토템 음악학원의 고 원장중앙아파트의 조 가오렌카페 할렐루야의 마담 마리아 같은 실력자부터 시작해내일 미르와 같이 먹을 도시락에 넣을 계란말이를 위해 급히 조달한 미식축구 헬멧을 쓰고 온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동네에서 세일을 겪어본 역전의 용사들이 일제히 발산하는 투기는 대기를 일그러트리고악마마저 울게 했다.

이윽고 7시 정각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알 파카의 우렁찬 계시 선언이 나왔다.

 

세이이이일을시좌아아아악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의 파도가 천공을 찢어발겼다말하자면 천지개벽철륜이 벚꽃처럼 휘날리고고릴라가 가슴을 두들기며 위용을 과시한다마법이 번뜩이고살짝 붉은 빛이 도는 하늘에 녹아든 은침이 혈을 노린다아스팔트를 소재로 소환한 아스팔트 골렘이 닌자를 견제하기 위해 잽을 날렸다!

압도적 광란한번이라도 특가세일 현장을 경험해 봤다면 이게 일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장 선생은 몰랐다그가 특가 세일 전단을 본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으니까!

 

으아아아으아아아.”

처음에는주먹.”

.”

 

장 선생이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그 말이었다.

다음 순간 대기가 압축되고장 선생의 눈 앞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

 

7시 3.

케이젤의 갑옷은 180초간의 사투 이후 완전히 걸레짝이 되었다투구는 찌그러지고어깨와 가슴쪽의 부품은 아예 어디로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아주 없던 것도 아니다.

 

후우장 선생보고 있나계란이다우리가 저 흉포한 아줌마들을 상대로 계란 한 판을 사수했네!”

 

놀라운 성과를 두고 케이젤은 열에 들떠 말했지만노을빛을 받고 있는 장 선생은 말이 없었다.

 

그런가후후알겠다 전우여너를 위한 계란은 따로 빼두도록 하지지금은 그저쉬도록 하게.”

 

장 선생의 시체를 가까운 의자에 앉혀놓은 뒤케이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저무는 태양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영혼의 티끌 하나까지 완전히 연소시킨 장 선생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워보였다.

 

***

 

이곳은 K국의 S.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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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웹소설) 10,000회차 연재 후 끝장나는 세계 - 5 (0) 2021/09/23 PM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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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설의 검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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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연결됐네. 나라니? 맞아. 언니야. 메를렌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얘. 잘 지냈어? ? 나는 말이지…….”

 

나라가 미르와의 첫 데이트에 입고 갈 옷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

메를렌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

 

……. 유럽 E국의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아서왕이 남자냐 여자냐, 레즈냐 게이냐 하는 이야기는 다 제끼고.

한때 그랜드 위치의 조수였던 메를렌은 아서왕 전설 중에서도 성검 엑스칼리버에 대한 부분을 좋아했다.

 

그냥 칼리번이었던가? 뭐 그건 제끼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검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도 바위에 박혀 나오질 않는 검부분이 메를렌의 로망을 자극했다.

그래서 마법에 재능이 없다라는 이유로 그랜드 위치에게 파문당한 뒤, 메를렌은 자기가 만드는 물건 중 거의 대부분에 성검의 디자인을 적용했다.

예를 들자면 연필꽂이. 예를 들자면 책 커버. 예를 들자면 전기 파리채 손잡이.

그리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자동차 디자인에 이르러선, 의외로 천재적인 디자인 재능과 성검의 수려한 모티프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수준에 도달했다.

덕분에 메를렌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그녀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역시 손수 디자인했던 그 차였다.

 

. 그러니까 언니가 이번에 골치 아프게 된 게 그 자동차 때문인데…….”

 

메를렌은 말을 더듬었다. 파문당하긴 했지만, 한때 스승으로 모셨던 그랜드 위치의 손녀에게 자기 치부를 말하려 하니 속이 쓰려왔다.

그녀가 그랜드 위치에게 파문당한 까닭과 차가 문제가 된 것은 의외의 연결점이 존재했다.

그랜드 위치에게 있어 마법이란 좋아하는 것을 현실로 끌어내는 마음이었다.

메를렌에겐 그 마음이 없었다. 사이코패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잡지 못했던 게 재능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은 원인이었다.

다른 부분은 오히려 그랜드 위치의 문하 중 최고 수준이었다. 메를렌은 마법이나 주문은 물론이고, 각종 인을 맺는 법이나 마도구 사용법까지 통달하고 있는 인재였다.

그리고 메를렌은 파문당한 뒤에야 자신이 성검 전설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에서 멀어진 뒤에야 마법을 다루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인 재능을 습득한 것이다.

여기까지 침착하게 듣고 있던 나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저기, 언니. 그래서 언니의 성검 마법하고 자동차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거예요?”

나라야, 너 혹시 바위에 꽂힌 성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니?”

잘은 몰라요. 바위에 꽂힌 검을 뽑은 괴력남이 고대 E국의 왕이 됐다는 것 정도?”

괴력남 아니거든. 작고 예쁘장하고 귀여운 소년이거든.”

언니 취향을 그렇게 말하셔도……. 게다가 검을 뽑은 뒤에 휘두르긴 했을 테니까 괴력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야! 내 아서는 작고 소중하고 아껴줘야 하는 금발소년이라고!”

언니. 제발. 본론이요.”

으음. 미안. 언니가 좀 흥분했나 보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요.”

어쨌든 그 전설에서 중요한 건, 아서가 바위에서 검을 뽑았다는 부분이야. 그걸 차하고 연관 지어봐.”

연관 지어요? 차하고 바위를? 무슨 선택받은 사람이 차를 타면 핸들이 뽑히기라도 해요? 헤헤, 이건 너무 바보 같으려나.”

“ ”

언니. 왜 반응이 없어요? 설마, 진짜로? 뽑혀요?”

핸들은 아니고. 변속기가 그만…….”

 

그녀가 말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퇴근하던 중 아서왕을 본뜬 피규어 신상품이 입하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메를렌은 적당한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빗자루를 꺼내 쇼핑몰까지 급히 날아갔다.

 

차는 어쩌고요?”

급할 때는 빗자루가 더 빨라.”

“ ”

네가 아직 고등학생이라 모르는 거야. K국 교통이 얼마나 개판인데.”

 

마녀로서 욕망에 충실한 건 귀감이 될 일.

하지만 그렇다고 차를 버려둔 것처럼 방치한 건 전혀 칭찬할 요소가 아니었다.

이렇게 버려져 있던 차는 지나가던 건달이 발견했고,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망설임 없이 운전석에 올라탔다고 한다.

그리고 메를렌이 디자인하면서 얼결에 마법을 걸어버린 성검, 아니 성차(聖車)는 이 건달을 왕의 자질이 있는 자로 인정했다.

 

스스로 변속기를 뽑아버린 건 왕으로 인정했다는 표식 같은 거였겠지.”

그래서, 차는요?”

하필이면 그 근처에 악마가 운영하는 회사가 있어서, 거기에 전속력으로 들이박았다지 뭐니.”

()은 마()에게 끌리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되는 대로 말할 게 아니야. 악마만 죽었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람까지 죽었다지 뭐니. 너희 학교 교사라던데.”

언니, 혹시 그 사람 성이 장 씨예요?”

? , 맞아. 어떻게 알았니?”

그럼 그 선생님은 신경 안 써도 돼요. 그보다 나머지 뒤처리는요?”

어제까지 해서 급한 불은 껐는데……. 본사 어르신 중에 마법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있더라고. 리콜 대신 차에 걸린 마법을 전부 풀 방법을 찾아오래.”

어머, 리콜 안 해요?”

현대에 왕이 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걸 전부 리콜하냐고 하던데.”

, 으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기도 한데…….”

그래서 말인데 나라야, 그랜드 위치님께 다시 제자로 들여달라고 대신 말 좀 해주지 않을래? 한동안 너희 집에서 살면서 그랜드 위치님께 속성으로 배우는 게 일을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거 같거든. ? 부탁 좀 할게.”

으음, 할머니가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물어나 볼게요.”

 

열흘 후, 악마들 사이에서 마녀 한 명이 S시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졌다.

그녀가 악마만 보면 폭주하는 저주받은 차를 몰고 다닌다는 기묘한 괴담과 함께…….

 

***

 

이곳은 K국의 S.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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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웹소설) 10,000회차 연재 후 끝장나는 세계 - 4 (0) 2021/09/22 PM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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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고래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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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는 한때 범고래를 동경했다. 시골에서 S시로 상경하자마자 이름을 오르카로 개명한 것도 이때문이다.

물론 돌고래는 범고래가 될 수 없다. 왜냐면 돌고래는, 돌고래였으니까. 태생적인 한계였다.

하지만 오르카는 오늘도 범고래의 꿈을 꾸고 있다. S시의 빵집에서 빵을 팔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한 자루의 총이 자리하고 있었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질적인 의미로 말이다.

 

***

 

빵집 아르바이트를 끝낸 오르카는 앞치마를 풀어헤치고, 대신 새카만 정장을 입었다. 이것이야말로 돌고래 사회의 집행자에게 허락된 정식 복장이었다.

 

돌고래는 돌고래의 법으로 심판하라.’

 

그것이 육지에 사는 돌고래들이 공유하는 절대적인 법률. 규율을 어긴 돌고래를 처단하는 것이 집행자의 직무였다.

스마트폰에 들어온 명단을 확인한 오르카는 가볍게 혀를 찼다.

 

망할 목록에는 오늘도 죄다 이상성욕자들 뿐이군.’

 

돌고래는 본래부터 지능이 뛰어난 생물. 지능이 뛰어난 만큼 추구하는 방향이 다양하고, 이는 성적 기호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돌고래는 지상에 있는 종족 중에서 이상성욕이 특출난 편이었다.

그 유명한 식인 엘프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패티시즘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돌고래고, 선을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물의를 일으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돌고래를 처치하는 게 바로 집행자였다.

낮에는 빵집 아르바이트, 밤에는 동족을 처단하는 무자비한 집행자.

서둘러 학교로 향한 오르카는 때마침 목표물이 걸어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교사 주제에 돌고래와 다람쥐가 교미하는 일러스를 커미션 했다지? 용서할 수 없다.’

 

품에 숨긴 총을 쓸 필요도 없었다. 하굣길의 혼란 속에 자연스레 섞인 오르카는 목표의 허리를 깊게 찌른 채 속삭였다.

 

이건 존슨이 아니야. 바다마녀의 특제 마법독이지. 도리를 벗어난 돌고래는 대가를 치러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오르카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잠깐 인상을 찌푸린 장 선생은 입을 떼기도 전에 온 몸에 퍼진 마법독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맛봐야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굣길의 하늘에 울려 퍼진 것은 살해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의 비명- 이 아니라, 환호성이었다.

 

장 쌤이 물거품이 됐다!”

아니 여기서 마술 쇼를?”

어이 저기 봐. 폭죽까지 쏘아올리셨어.”

. 장 선생님 답지 않은 지저분한 불꽃놀이로군

그래도 석양하고 잘 어울리지 않아?”

아아, 석양이 굉장해졌군.”

마치……

 

한편, 골목길에 숨어 장 선생이 물거품과 폭죽이 된 것을 확인한 오르카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번졌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담당자를 만나야겠어.”

 

***

 

손님 한명 없던 꽃집 너구리에서 느닷없이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꽃집은 교외의 대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부서진 온실의 유리 파편 위에 온 것은 경찰의 발이 아니라 석양의 주황빛 뿐이었다.

이 소란의 중심에 있던 것은 오르카였다. 암살 현장에서 재빨리 이탈한 뒤, 지령담당관의 거점인 이곳까지 무작정 오토바이를 몰고 온 것이다.

화단 한쪽에 오토바이를 처박은 오르카는 돌고래들의 지령담당관이자 꽃집 사장인 너구리를 보자마자 그의 고환에 총구를 겨눴다.

경고 따윈 없었다. 그는 집행자다. ‘쏴야 한다생각했을 때는 이미 쏜 뒤어야 했다.

 

대답은 신중히 해라 너구리. 남은 불알 한쪽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야.”

끄윽. 다짜고짜 불알을 쏴버리다니……. , 암살 대상이 물거품으로 변하기라도 했나?”

네 녀석, 보고있었나?”

, 간단한 이치다. 의문이 생긴 집행자는 네가 처음이 아니란 거지.”

 

너구리는 부상 따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느긋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일어날 수 있냐는 표정이군. 그렇게 놀라지 말라고. 순서대로 말해줄 테니.”

 

너구리의 갈색 털 위로 비릿한 웃음이 번져갔다.

 

너 같은 놈들이 하도 많으니까 빼서 다른 곳에 숨겨뒀지. 토 생원이 별주부 엿먹일 때 쓴 방법을 배워두길 정말 잘했다니까.”

 

너구리가 뒤이어 말한 것은 오르카의 가치관을 근본부터 뒤집는 내용이었다.

돌고래의 사회는 돌고래들이 아니라 사실 어떤 조직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조직의 이름은 유교드래곤. 이상성욕 없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이성교제 사회를 목표로 하는 그들은 인간만큼 성욕이 강했던 돌고래들을 주시해왔고, 이를 음지에서 통제해 왔다.

 

그렇다면 집행자는 그들의 수족에 불과했던 건가.”

처음에는 아니었어. 제대로 도를 지나친 녀석들만 통제했지. 그렇지만 유교드래곤이 손을 댄 뒤부터는 그게 과해지고, 이윽고 돌고래 사회 밖에 있는 인간에게 까지 집행자가 가게 만든 거야.”

그렇군. 설명에는 감사를 표하지.”

대가는?”

어쨌든 너도 날 속인 셈인데,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나?”

, 그렇다고 치지. 앞으로 어쩔 셈이야?”

집행자가 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다.”

호오, 그게 뭐지?”

이상성욕의 과잉 통제 역시 이상성욕 중의 하나. 그렇다면 유교드래곤 역시 숙청 대상에 불과하다.”

돌고래는 돌고래의 법으로 심판한다는 건가. 행운을 빌지.”

너구리가 비는 행운 따윈 믿지 않아.”

 

그렇게 말한 오르카는 S시 상공에 떠있는 거대 운석이 만드는 그림자에 섞여,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성욕을 통제하려 하는 유교드래곤과 그 야망을 저지하려 하는 돌고래가 벌이는 장절한 사투의 서막이었다.

 

***

 

“-그런 기획을 세워봤는데요.”

 

광고회사 파랑새의 직원인 나구리는 발표를 끝내고는 부장의 반응을 기다렸다.

S시의 육상 돌고래 단체에게 홍보영상 의뢰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아이디어를 100% 그대로 옮긴 기획안이다. 나구리는 이게 통과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부장이 문 담배가 반쯤 타들어간 후, 나구리의 기획서는 정확히 반으로 쪼개졌다.

 

자질구레한 설정이 너무 많잖아. 게다가 배경 자체도 무겁고. 배트맨이냐? 이게 배트맨이냐고. 얼간아. ? 아주 제목도 돌핀맨이라고 하지 그랬냐? 이건 기각이다. 기각!”

.”

 

***

 

이곳은 K국의 S.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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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웹소설) 10,000회차 연재 후 끝장나는 세계 2 (4) 2021/09/20 PM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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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좀비님, 실례지만 세금이 체납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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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제트! 거기 지게차 가니까 조심해!”

…….”

 

아돌프 렉싱턴. 일터에서 제트라 불리는 그가 반응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어있었다. 지게차의 포크가 그의 목을 절단냈다.

하지만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소란스러웠던 건 물류센터 옆에서 일어난 사망 현장이었다.

 

옆동네 장 선생이 차에 치여 죽었다!”

아냐 멍청아. 치이기도 전에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쫄보였구만 이거!”

어설픈 녀석은 S시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지!”

어차피 다음 화에 멀쩡히 살아있겠지만!”

 

포크 위에 안정적이게 올려진 제트의 머리는 팔자눈썹을 한 채 투덜거렸다.

 

뭐가 저렇게 시끄러워. 현장 안보다 밖이 사고가 더 많은 거 같은데?”

 

한편, 지게차 기사는 차에서 내려 그의 몸을 포크 앞까지 가져왔다.

 

아이고 미안혀 제트. 나중에 호두 사줄 테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흡연장 가서 쉬고 있으라고.”

김 씨. 거 운전 조심 좀 하라고.”

아 어쩌겠어. 화물 때문에 뭐가 보여야지.”

 

제트는 한때 잘 나가던 오컬트 학자였지만 지금은 좀비다. 또한 내야 할 세금이 3년치 정도 밀린 체납자이며, 그래서 S시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온갖 일용직 현장에서 뛰고 있었다.

 

***

 

제트가 일용직 현장을 전전하게 된 까닭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G국에 살았던 그는 대학의 오컬트 학과에서 장래가 유망한 인재였다.

오컬트라 해도 괴기스러운 건 아니다. 굳이 따지면 민속학과에 오파츠와 강령술, 약학이 조금 섞인 정도.

원래 대학이란 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 말도 안 되는듯한 학과나 강의가 있지 않던가.

예를 들자면, 돈벌이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문예창작학과 같은 거 말이다. 오컬트 학과도 그중 하나였다.

동네 학자 나부랭이가 되고 싶었던 제트는 불행히도 전쟁 때문에 G국이 계획한 극비 프로젝트의 연구원으로 차출되었다.

 

군인을 죽지 않게 하는 약물을 개발하라고요? 저희가요?”

 

말도 안 된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근로환경에 책상과 각종 문구류, 그리고 등 뒤에 겨눠진 권총 한 자루가 포함되어 있다면 대부분은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밖에 못 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또 두 종류로 나뉜다.

역시 말뿐인 선언이어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고 쓰러지는 쪽.

그리고 진짜로 해내버리는 천재. 제트는 이쪽에 속하는 인재였다.

 

이게 된다고? ?”

 

세계 최초의 좀비 연구가이자 좀비 1호가 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연구실에 불을 지르는 일이었다.

일단 총구를 겨누고 시키니 만들기는 했지만, 죽은 사람을 일으켜 싸우게 한다는 게 얼마나 비윤리적인지는 알았다.

그는 운이 나쁜 오컬트 학자지, 턱관절이 빠진 자기 할아버지를 무덤에서 일으켜 전장에 보내는 패륜아 새끼는 아니었다.

그래도 G국에서 한참 떨어진 K국까지 도망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자나 망명이 안 된다고?”

 

당시 입국 관리자는 복잡한 표정을 한 채 답했다.

 

그게……. 서류적으로도 생물적으로도 선생님은 완전히 죽어있는데 이걸 어떻게 문서화 하라는 겁니까?”

, 일리있군.”

그렇지만 세금은 내셔야 해요.”

아니 시벌 내가 왜. 죽었다면서?”

그치만 일단 생활은 하실 거잖아요.”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세금 내셔야죠.”

. 일리있나?”

그래도 살아있지 않으시니까 엥겔지수가 낮을테니 살만하시지 않으실 까요?”

이거 참 살아있는 건지 살아있지 않은 건지 헷갈리는 대화로구먼.”

 

그로부터 약 50.

좀비의 주식인 뇌를 호두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제트는 고액 체납자가 되어, 오늘도 현장 일용직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

 

언제 들어도 기구하구먼.”

 

급한 일을 마치고 흡연장으로 온 김 씨는 아직 머리와 분리되어 있는 제트의 입에 불 붙인 담배를 꽂아주며 말을 이었다.

 

나름대로 세계를 구한 거 아냐? 하여간에 정치인과 관료들은 나 못써먹을 놈들 뿐이라니까.”

그건 아냐 김 씨.”

그래?”

 

담배연기가 제트의 입을 지나, 문자 그대로 시원하게 뻥 뚫린 목 아래로 빠져나갔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나쁜 새끼들이 훨씬 많거든. 그래서 티가 덜 나는 것 뿐이야.”

그렇구먼. 연륜에서 나온 경험인가? 멋진데.”

멋지긴 시벌 개뿔. 멋지면 이러고 50년을 살았겠나.”

아니, 좀비잖아. 살아있다고 하면 안 되지.”

됐고, 이따 호두 사는 거 잊지나 말고. 하아, 다 때려치고 로또나 됐으면 좋겠는데.”

누가 아니래냐.”

 

두 노동자는 오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꿈을 꾸며 담배를 뻐끔댔다.

사람이 죽었든 살았든, 오늘도 구름은 흘러가고 있었다.

 

***

 

이곳은 K국의 S.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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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스핀스파게티    친구신청

저는 카카페만 이용 중이라 다른 곳에서 흥한 뒤 등록되길 기다리겠습니다. 작가님 글은 장면 장면의 임팩트로 따지면 웹툰으로 표현해도 굉장히 멋질거란 생각이 드는데 화자가 다양하고 여러 사건을 한줄기로 이어나가는데 능하시니 또 이걸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어려운 작업이 될거란 생각도 드네요.
아무쪼록 즐거운 한가위 되시고, 창작의 즐거움이 고통을 가뿐히 이겨내는 생활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녹차백만잔    친구신청

늘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파게티님도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_^)

Artyna R.S    친구신청

오홍~ 웹소설은 이렇게 쓰는거군용!!

녹차백만잔    친구신청

에...아마 웹소설 이렇게 쓰는 작가분들은 극소수일 겁니다.
원래 제대로 하려면 5천자 이상은 써야 하니까 말이죠. 하하 ^^;;;
[대충 소설] “파트너. 승리의 주문을 부탁해.” (1) 2021/06/04 PM 08:25

“파트너. 승리의 주문을 부탁해.”
 
프로복서의 부탁을 받은 메두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승리의 주문을 외웠다.
 
“내 눈을 바라봐.”
 
그 말을 실천하자 복서의 꽉 쥔 주먹이 단단한 돌이 되었다.
 
손목까지 단단히 굳어진 것을 확인한 메두사가 눈을 감자 석화의 저주는 딱 거기서 멈췄다.
 
“완벽해! 오늘도 멋지게 이겨주지!”
 
메두사는 복서가 링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거 도핑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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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시고 싶으신 분은 이쪽으로 : https://novelpia.com/novel/16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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