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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켓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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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잉?”
장 선생이 그 전단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요 앞 슈퍼의 세일전단이네……. 가만 있어봐. 계란 한판에 4천원?이거 꽤 싼 거 아냐?”
그렇다면 오늘은 계란 덮밥이다. 계란밥에 계란후라이를 얹고, 계란말이를 토핑하자. 그리고 야식은 계란찜이다.
장 선생은 그런 소박한 꿈을 꾸며 슈퍼로 향했다.
그렇다. 오늘의 이야기는 매우 클리셰적인 이야기.
장 선생이 눈독드렸던 4천원짜리 계란은 선착순 30판.
그리고 그가 향하는 슈퍼의 반경 700미터 내에 거주하는 주부의 수는 약 150명.
경쟁률은 최저로 잡아도 약 5:1. 계란 한판을 두고 다섯 명의 주부가 경쟁을 펼친다.
그렇다. 오늘의 장 선생이 겪게 될 결말은 이미 확정되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든, 장 선생은 오늘도 죽는다.
***
“오, 케 씨도 계란 사러 온 거야?”
“장 선생.”
S시 고등학교의 기갑총사 케이젤은 투구의 바이저를 살짝 올려 보이며 말했다.
“…그런 장비로 괜찮겠나?”
“케 씨도 참. 장보러 오는데 전신갑주를 입는 사람이 과하지, 내가 과한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데, 그런 장비로 괜찮겠나?”
“그거 참…….”
장 선생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괜찮아. 문제 없어.”
“무운을 빌겠다. 살아남기를.”
“하하. 이 양반 오버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 대화가 오간 사이, 전직 루차도르(중남미식 프로레슬링 루차 리브레를 구사하는 프로레슬러를 지칭하는 말)이자 슈퍼마켓 ‘나스카’의 점장인 알 파카가 확성기를 든 채 단상에 올랐다.
“엑.”
그 순간, 대기의 질이 바뀌었다. 클리셰에 둔감한 장 선생마저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장 선생과 케이젤 주위에는 어느새 범상치 않은 투기를 불태우는 역전의 아주머니들이 나타나 있었다.
“뭐, 뭐야. 이 아줌마들 다 어디서 나타났대?”
“음……. 토템 음악학원의 고 원장까지 왔군.”
케이젤을 긴장케한 토템 음악학원의 고 원장은 등 뒤로 나부끼는 늠름한 흰 털과 장대한 가슴이 인상적인- 고릴라였다
“장 선생. 긴장하도록. 고 원장의 악력은 370kg에 달한다고 들었다. 저자한테 판을 빼앗기면 그 판은 포기해야 해.”
“저기. 흐름을 못 따라가겠는데.”
“오- 호호호호! 이거 참. 동양고의 장 선생님? 그런 무장으로 잘도 나오셨네요?”
이번엔 장 선생도 아는 인물이었다.
“앗, 조 사모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왜 도복차림을? 팔에 쇠고리까지 두르시고…….”
카앙!
순간, 불꽃이 튀어올랐다. 장타와 함께 팔에서 쏘아진 철륜이 장 선생의 심장을 노렸으나, 재빨리 반응한 케이젤의 숄더 태클이 이를 견제한 것이다!
“중앙아파트 계모임 철륜문 당주 조 가오렌! 이게 무슨 짓이지? 알 파카의 신호는 아직인데.”
“흥. 양철치고는 좋은 반응이네요. 나의 철륜장을 받아내다니.”
“잘 정비한 갑옷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지.”
“후후후. 장 선생은 별것 아니겠지만, 당신은 만만치 않겠군요.”
“간만의 계란 특가세일이다. 중앙아파트의 요괴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어.”
“해 봐라. 서양깡통.”
살기를 높여가는 가운데, 장 선생은 뺨을 긁적이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니까. 흐름을 못 따라가겠다니까. 이거 나만 갈피를 못 잡는 거야?“
”봐서 알겠지만 장 선생. 오늘 세일엔 적이 많다. 석달 전의 한우 특가세일을 떠오르게 하는군. 내 미스릴 갑옷을 뭉갠 가위바위보 권법은 전율 그 자체였지.“
”그때도 이렇게 죽일 기세였어?“
”하지만 걱정 마라. 오늘, 우리는 두 사람의 마켓라이더니까.“
”아니, 케 씨. 설명을 해. 설명을. 뭔 상황인데 이게.“
”전우여. 함께 가자!“
장 선생이 혼란해 하는 사이 모든 마켓라이더들이 모였다.
토템 음악학원의 고 원장. 중앙아파트의 조 가오렌. 카페 ‘할렐루야’의 마담 마리아 같은 실력자부터 시작해, 내일 미르와 같이 먹을 도시락에 넣을 계란말이를 위해 급히 조달한 미식축구 헬멧을 쓰고 온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동네에서 ‘세일’을 겪어본 역전의 용사들이 일제히 발산하는 투기는 대기를 일그러트리고, 악마마저 울게 했다.
이윽고 7시 정각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알 파카의 우렁찬 계시 선언이 나왔다.
“세이이이일을! 시좌아아아악. 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의 파도가 천공을 찢어발겼다. 말하자면 천지개벽! 철륜이 벚꽃처럼 휘날리고, 고릴라가 가슴을 두들기며 위용을 과시한다! 마법이 번뜩이고! 살짝 붉은 빛이 도는 하늘에 녹아든 은침이 혈을 노린다! 아스팔트를 소재로 소환한 아스팔트 골렘이 닌자를 견제하기 위해 잽을 날렸다!
압도적 광란! 한번이라도 특가세일 현장을 경험해 봤다면 이게 일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장 선생은 몰랐다. 그가 특가 세일 전단을 본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으니까!
“으아아아. 으아아아.”
“처음에는. 주먹.”
“엣.”
장 선생이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그 말이었다.
다음 순간 대기가 압축되고, 장 선생의 눈 앞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
7시 3분.
케이젤의 갑옷은 180초간의 사투 이후 완전히 걸레짝이 되었다. 투구는 찌그러지고, 어깨와 가슴쪽의 부품은 아예 어디로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아주 없던 것도 아니다.
“후우. 장 선생. 보고 있나? 계란이다. 우리가 저 흉포한 아줌마들을 상대로 계란 한 판을 사수했네!”
놀라운 성과를 두고 케이젤은 열에 들떠 말했지만, 노을빛을 받고 있는 장 선생은 말이 없었다.
“그런가. 후후. 알겠다 전우여. 너를 위한 계란은 따로 빼두도록 하지. 지금은 그저, 쉬도록 하게.”
장 선생의 시체를 가까운 의자에 앉혀놓은 뒤, 케이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저무는 태양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영혼의 티끌 하나까지 완전히 연소시킨 장 선생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워보였다.
***
이곳은 K국의 S시.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4화.
아무쪼록 즐거운 한가위 되시고, 창작의 즐거움이 고통을 가뿐히 이겨내는 생활이 지속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