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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눈길 (0)
2014/09/26 AM 11:53 |
첫사랑이 나오는 꿈을 꿨다.
때는 겨울,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걷다가 문득 보지않고도 그녀가 뒤에 걸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길가에는 까페가 줄지어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까페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 내 본심이었으리라. 혼자라도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까페로 들어가는 내 모습을 알아보면 그녀가 혹여나 불편해질까싶어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어느새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지 않고도 그녀가 떠나갔음을 알았다.
아, 돌아보지 않기를 잘했다.
차가워진 몸을 데우려 비로소 까페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직원이 그녀의 이름이 적힌 쿠폰을 건낸다. 찍으실래요. 여러번 들렸는지 벌써 다섯번째 도장.
밖으로 나오니 걸어온 눈길은 녹아 질척해져 있다. 커피도 바닥의 녹은 눈도 넘실댄다.
요의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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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밤의 길이 (0)
2014/09/09 AM 12:20 |
몸을 섞었으니 이젠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그를 옆에 재워두고 말을 걸었다. 잠이 든 얼굴이 오늘도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무엇이 그렇게 당신을 고통스럽게 해요?"
"........다시는 사랑할 수 없으리란 생각."
"그런 사람은 많았어요. 결국 모두가 새 사랑을 찾던걸요."
"그 생각도 나를 괴롭게 해. 내가 첫번째 사람이 될거라는 생각."
눈을 감은채로 답했으니 잠꼬대인지도 모른다. 더이상 묻지 않고 그냥 부비적 들어가 옆자리에 누웠다. 몰아쉰 숨이 닿자 그도 한숨처럼 말했다.
"밤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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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가차 없다 (0)
2014/08/21 AM 12:15 |
1. 가차 없다는 말의 어원은 한자 육서 중 하나인 가차(假借)에 있다. 임시로 빌어올 것도 없으니 사정 봐줄 일도 용서도 없다.
2. 아름다운 여배우를 보면서 문득 옛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빌어온 것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옛 사람의 아름다움을 빌어서 여배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었구나.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3.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옛 사람을 빌어 떠올려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묻지않아도 그녀는 이런 일에 가차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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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새벽 세시 (1)
2014/08/07 AM 02:59 |
새벽 세시.
'아마 새벽 세시는 가장 많은 사랑이 떠있는 시간일거에요. 저도 매일 그 시간에 사랑을 떠올려요.'
미소를 띄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닿지 않는 무언가를 어루만지는듯 먼 세계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좋아 그저 바라보고 있는데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고통에 찬 얼굴이 되어 말했다.
'이제 미련만 떠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새벽 세시에 누군가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1분도 그 마음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당신도 그렇죠?'
맞다. 그래서 새벽 세시에는 반드시 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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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수치 2 (0)
2014/08/06 AM 02:49 |
짝사랑만을 계속하다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고 나서 나는 화가 나 따졌다. 왜 방향이 마주해야만 사랑이 성립되나요. 크기가 더 중요합니다.
눈을 뜨니 머리 위로 애정의 수치가 떠다니는 새로운 세계다. 그녀와 그녀의 연인, 내 머리 위에 떠다니는 수치들을 비교해보고 알게된 것은 보답없이 발치에 내던지는 것이라고 짝사랑이 더 위대할거라는 흔한 착각, 아니 내 사랑이 언제나 남보다 클거라는 수치스러운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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