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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s, 1939) (0)
2014/07/31 AM 02:23 |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s, 1939)
장 르누아르의 영화는 처음 감상하였습니다만 그의 영화적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그의 재능이 대단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인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라는 이름에 가려져 여타 많은 2세들이 그랬듯 그의 아들로만 기억되었겠지요.
영화는 대서양을 23시간만에 횡단한 앙드레가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연인이 공항에 오지 않은 것에 낙담하여 라디오에 대고 그는 이 모든 것은 한 여인을 위해서였음을 고백하고 매우 실망했다는 말을 남깁니다. 장면이 전환되고 그의 연인 크리스틴이 등장합니다. 크리스틴의 남편인 로베르 후작은 이 이야기를 라디오를 통해 듣습니다. 하지만 상류사회의 규칙에 맞춰 아무런 표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에게도 주느비에브라는 연인이 있고, 사람들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는, 장 르누아르가 직접 연기한 옥타브와 많은 사람들이 후작의 파티에 초대됩니다.
파티는 하층민인 밀렵꾼 마르소, 크리스틴의 하녀 리제트, 그의 남편이자 사냥터지기인 슈마허의 관계까지 얽히면서 정신없이 사나워집니다. 파티가 무르익어 빠르고 강렬해지는 음악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가면이 벗겨져, 본성을 보이는 모습은 하나의 소극이 되어 전 등장인물 사이에서 휘몰아칩니다. 파티가 끝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상류사회의 인간 그 가면을 쓰고, 이 모든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남자인 앙드레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찾아오고 맙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일종의 성적 유희를 즐깁니다. 하녀 리제트와 밀렵꾼 마르소의 유희는 좀 더 노골적이고,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성적 유희는 은밀하고 비유적이죠. 그들은 스스로의 규칙으로 포장하고 숨기지만 파티가 무르익은 시점에서 벌이는 난동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참모습을 숨기고 있습니다. 장 르누아르는 이런 상류사회 사람들의 이중성과 난잡함을 고발하죠. 얼마전 개봉한 영화 그레이트 뷰티가 생각납니다. 주인공 젭은 상류 사회에 발을 딛기를 소망했지만 거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화려함 뒤에 가려진 더 추악한 세상입니다.
영화 컨버세이션에서 본 피가 역류해오는 유명한 장면과 같이 숨겨두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충격적이고 두렵습니다. 겉모습이 깨끗할수록 그 충격은 배가되고 마는데, 그래서 이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엔딩에 이르러서는 더 잔혹하게 느껴집니다. 서글프기도 하고요.
공간을 사용하는데에 있어서 정말 멋진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의 동선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화면의 전후좌우, 심지어 상하까지 이용해서 카메라의 바깥에서 바깥으로 인물들을 이동시키는데 입체감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사냥터의 장면도 대단하지요.
이 영화가 어째서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번을 다시 보아할 영화 같네요. 특히 영화를 이끄는 템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엔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허위와 가식에 의해 끊임없이 희생자가 만들어지고 마는 것이 여전히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게임의 규칙일까요.
사회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앙드레 바쟁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위대한 영화들은 그로 연결되기도 하는군요. 책을 찾아 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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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명(Notorious, 1946) (2)
2014/07/25 PM 01:06 |
히치콕의 영화는 많이 감상하진 못했습니다.
워낙 작품을 많이 찍은 감독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막연한 생각에 별로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항상 히치콕하면 떠오르는 영화 싸이코의 이미지가 너무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서 대충 유명한 장면들을 본 기억은 있지만 싸이코는 아직 감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세보니 총 일곱 편을 감상했네요. 다이얼 M을 돌려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로프, 현기증, 이창,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그리고 이번 감상한 오명입니다. 새벽에 감상했는데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제가 본 히치콕의 영화 중에는 현기증, 이창과 더불어서 이 작품을 Top 3로 꼽고 싶습니다. 다른 영화를 본다고 해서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군요. 그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캐리 그랜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이 영화는 첩보물과 로맨스를 적절히 배합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법정에서 한 남자에게 미국에 대한 반역죄가 선고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등장하고, 그녀는 방금 선고를 받은 남자의 딸인 엘리샤 후버만(잉그리드 버그만)입니다. 그녀는 독일의 스파이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어머니의 나라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아버지를 못마땅해합니다. 술을 마시며 방탕하게 지내던 어느 날, 미국 정보부의 요원인 데블린(캐리 그랜트 분)이 나타납니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데블린은 임무 때문에, 엘리샤는 자신의 전력과 처지, 자존심(이라고 해야할까요)때문에 둘의 사이는 계속해서 삐걱거립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예전부터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독일인 세바스챤을 유혹하여 정보를 빼내오는 것이었고, 이런 저런 사건들 끝에 임무의 성공 그리고 애정을 확인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오프닝과 엔딩씬 모두를 환상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그건 이 영화에서도 다르지 않은데 오명에서도 초반에 이야기를 이끄는 법정 씬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 사건의 종결로 여겨지는 법정을 등장시킴으로 사건의 전개를 빠르게 보이게 하고, 또 관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영화의 엔딩씬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말 영화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 중 하나입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볼 때는 몰랐는데 캐리 그랜트는 매력적입니다.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미소는 007 같은 영화에서 보던 매력적인 스파이의 전형이네요. 단연 007이어야 했을 사나이 같은 느낌입니다. 사랑을 쉬이 드러내지 못하는 데블린의 성격을 잘 연기해서 영화에 대한 지배력이 엄청납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연기는 더 대단합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느낌을 주는 몇몇 씬에서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보는듯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적인 표정을 짓곤 하는데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세바스티안과 데블린을 바라볼 때 미세하게 달라지는 눈빛연기도 멋집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난 후에 그녀가 내뱉는 대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작품에 들어가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굉장한 명대사더군요. 멋진 스타일링 역시도 그녀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킵니다.
이 영화의 평을 보면 초반부 데블린과 엘리샤가 티격태격하며 대화를 나누는 씬들이 너무 길다는 평이 많던데 제 생각엔 반대로 히치콕 특유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후반부의 씬들보다도 이 씬들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상당히 재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반부의 씬들 특히 와인 저장고로 들어갈 때, 샴페인 병의 숫자로 시간을 한정해서 긴장감을 주는 장면들이 결코 부족한 것도 아니죠.
이 영화에서 가장 껄끄러운 점은 아마도 국가나, 이데올로기의 충돌 가운데서 개인의 인간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되고 무력한가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결국 데블린도 임무에 의해서 애정을 포기하려 애쓰고, 엘리샤 같은 경우는 사실 더 심하죠. 어떻게 보면 데블린까지,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남성들은 그녀를 이용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게 어찌보면 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하고 있는 본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씁쓸하기도 합니다.
히치콕 영화 안 보신 분이라면 이창, 현기증 그리고 이 오명만큼은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제목이 왜 Notorious인지는 보면 쉽게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도 멋지군요. 저는 계속 Notorious B.I.G랑 투팍이 떠오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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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2)
2014/07/24 AM 01:04 |
웨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에 대한 소고
웨스 앤더슨 영화로는 다섯번째네요.
문라이즈 킹덤, 로열 테넌바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다즐링 주식회사,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순으로 보았습니다. 다섯편을 모두 보고나니 확실히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는 늘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하니, 이런 테마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영화가 나온 순서대로 간단히 살펴본다면 2001년 작품인 로열 테넌바움은 가족을 다시 뭉치게 만드는 아버지의 이야기고 2004년 작인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가 즉,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 2007년 작인 다즐링 주식회사는 아버지를 잃고 난 세 형제가 새 삶을 찾게 되는 이야기, 2012년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위탁 가정에서 살던 샘이 방황 끝에 자신을 보듬어줄 새아버지를 찾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로가 추억하는 무슈 구스타프란 결국 행동양식을 가르쳐주고, 사회에 발을 딛게 하며 기차 안에서의 장면들처럼 때로 보호막이 되어주고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유산을 남겨주는 아버지 이상의 아버지처럼 보이죠. 그래서 무슈 구스타프는 마치 슈퍼맨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해양 다큐멘터리 감독인 스티브 지소가 다큐멘터리를 찍던 도중, 동료인 에스테반을 처음 보는 상어에게 잃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카메라를 놓쳐 괴물 상어의 모습을 찍지 못했고, 다큐멘터리는 시사회에서 혹평을 듣습니다. 스티브는 상어를 잡으려하고, 그의 배에 자신이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청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함께 유대감을 쌓아나가죠. 그 안에서 오이디푸스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아버지와의 유대감이란 일정부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요새 읽고 있는 신화 관련 책들을 보면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버림 받는 아이라는 화소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신화 속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모르는 것이라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게 되고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영웅적 행보 끝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며 그리하여 신성(神性)을 획득하는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도 분명히 이런 줄기 안에 들어있습니다. 신화 속에서 신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해석해보면 자아를 확립하여 한 인간으로 일어선다는 의미에 가깝고, 감독 자신의 생애를 생각해본다면 간접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낸 작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애착이 갑니다.
익히 알고 있는 웨스 앤더슨스러운 스타일이 이 영화에서도 묻어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제외하고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그의 스타일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의 음악들이 영화 전반에 OST로 사용되었다는 점도 좋고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아주 사랑스러운데가 있군요. 로열 테넌바움의 기네스 펠트로나 문라이즈 킹덤의 수지역이었던 카라 헤이워드, 케이트 블란쳇, 시얼샤 로넌, 레아 세이두 같은 여배우들을 보건데 여배우들의 매력을 끌어내는 점이 정말 탁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스타일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요.
앞서 다섯 편의 영화 속의 아버지들을 보면 다음 번 영화에는 어떤 아버지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추억이나 향수, 그 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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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 (3)
2014/07/22 AM 03:41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
영화를 보고 나니 이야기를 상상해낼 수 있는 능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지금부터 95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대단합니다.
오래 전의 명화들을 보다보면 얼마전에 본 영화가 떠오르곤 합니다. 원래는 새로 나온 영화를 보고 예전의 명화를 떠올려야 겠지만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한 탓에...... 어쨌든 이 것 역시도 대단한 즐거움입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이후 영화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을지.
기괴한 세트들과 과장된 동작을 사용해서 표현된 인간의 내면 세계, 특별한 사운드 없이 영상과 스토리 텔링으로만 만들어내는 공포심,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어버리는 마지막 장면의 여운까지.
개인적으로는 '칼리가리 박사가 되라.'는 대사가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는 장면, 그리고 제인이 흰 옷을 입고 걸어오고 프랜시스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또 칼리가리 박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에서 느끼는 프랜시스의 두려움은 숨겨두려했던 자신의 내면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주면서 저까지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팀 버튼의 스타일과(가위손에서의 에드워드 분장 같은) 영화 셔터 아일랜드가 가장 많이 떠올랐습니다. 찾아보니 스코세지 역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같은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더군요.
영화사적 의미를 제하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한 내러티브를 가진 환상적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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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텔로니(I Vitelloni, 1953) (0)
2014/07/21 AM 05:40 |
비텔로니(I Vitelloni, 1953)
빈둥대는 청년들이라는 뜻의 이 영화는 이탈리아 리미니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파우스토, 알베르토, 레오폴도, 리카르도, 모랄도 다섯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은 그저 목적없이 방황하기만 할 뿐입니다. 갑작스러운 결혼 앞에서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파우스토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바람을 핍니다. 극작가의 꿈을 품은 레오폴도는 신세한탄만 할 뿐이고, 알베르토는 동생에게 돈을 받아 사용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비웃습니다. 모랄도는 새벽녘 거리를 거닐면서 이런 삶의 공허함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만 깊은 무력감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합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모든 시대의 청춘이 느끼고 마는 슬픈 자화상입니다. 다섯 주인공들은 다섯이면서도 또 하나이기도 합니다. 꿈은 달성되지 않고, 가정을 꾸릴 준비는 되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는 인정받고 싶고, 이 모든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무력감이 습관이 되어 더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래서 더 깊은 고민으로 빠져드는 청춘의 이야기들을 보여줍니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태어나기도 한 공간적 배경 리미니라는 도시는 이 무력감의 근원으로 설정되어 주인공들은 이 도시를 떠날 것을 다짐하곤 하지만 대부분 달성되지 않습니다. 모랄도만이 마지막에 더이상 미루지 않고 기차를 타고 도시를 떠날 뿐입니다. 결국 계속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겠죠.
펠리니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축제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축제가 끝난 아침, 삐에로의 가면을 바라보는 알베르토의 내면은 축제날과 강렬하게 대비되어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깁니다. 마치 도피처를 찾아 하룻밤을 신나게 즐겼다가 집으로 향하는 길, 한숨을 따라 후회를 조각조각 내뱉어놓는 슬픈 발걸음처럼요. 그 후 알베르토의 동생이 떠나는 에피소드는 상당히 인상적인데, 슬프기도 하고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끕니다.
보고난 후에 상당히 긴 생각을 남깁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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