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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신교에 관해 3. (3) 2009/09/04 PM 09:14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 하나쯤 남아있는 여름 성경학교니, 성탄예배니

하는 교회 내의 친목 관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친목관계는 한국이란 사회에서 아주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데...


라는 문장으로 끝냈던 전편.

오늘은 요 개신교의 친목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참고로 본인의 가족은 본인을 제외하곤 다- 개신교 신자이며

본인은 군대에서 초코파이에 영혼을 팔지 않고! 설탕커피에 영혼을 팔아서 ㅋㅋㅋ

천주교로 개종했다.

개종한지 벌써 햇수로 7년째.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개신교의 이러한 친목 관계는 개신교라는 특정한 종교세력

(혹은 개인 기업에 가까운) 이 버텨 나가는데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 가고 있는데

우리가 심심치 않게 보아오던 모 교회가 이사가면서 기존 신자들을 데려가서

소송을 거네 어쩌네 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 시피, 천주교, 불교와 같은 종교들은 하나의 거대한 단체가 있고

그 단체의 결정에 따라서 교리가 정해지며 그와 더불어 재정의 투명한 공개에 어려움이

없다.

왜? 중심이 되는 기관이 있어서 신생 지부(성당이나 작은 절)의 경우에도 크고작은 재정적/교리적 어려움을 해결할수 있으니까.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하나의 독립된 교회가, 하나의 교단 역할을 하기 때문에(한기총 이라는 단체가 있긴하지만, 회원비나 받아먹고 이단이나 고를까.. 하는일은 거의 없다)

개신교회는 그 성격상, 포화될대로 된 파이 나눠먹기- 밖에 할게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당신의 기억력을 테스트해 보자. 대략 초등학교 2~ 5학년 즈음 여름방학, 겨울방학,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만 되면 교회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대학교 일이학년쯤 되는 예쁜 여교사와 (초등부 교사 하악 하악) 성경공부..도 했지만

당신과 나의 기억속에 자리잡은건 그런 시시껄렁한 추억이 아니라 다소 조잡스러웠지만 그 하나 하나가 돈! 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지녔던 달란트 였다.

본인은 경험이 없지만, 주변에서 들었던 얘기로 모 교회에선 달란트를 모아서 가져가면 장난감으로 바꿔줬다던가.. 뭐 그런일도 있었던 기억이 아련히 난다.

(성전에서 상인들 보고 열받아서 다 뒤집어 엎었던 예수가 보면 하늘에서 다시 내려올일)

다분히 자본주의 적이고 상업적인 아무리 좋게 보아도 교회- 라는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장소 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런일이 당연하게 일어났던 이유는

(돌아보니까 애들을 비디오로 꼬시기도 했네.)

개신교의 교회는 종교적 단체인 동시에,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종교나 계급적 체계가 자리 잡혀 있지만, 개신교의 경우는 아무래도 출신지가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이어서인지 어느 종교보다 더욱 심하다.

목사- 담임목사(새끼목사)- 전도사- 집사 등으로 나뉘는 (..더 있는데 잘은 모르겠다)
요 계급 단체는 그 지위에 의해서 쉽게 교회를 떠날수 없게 만드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신도=돈 이니까.

조금이나마 개신교의 체계 이해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다음시간에는 한국 개신교가 도대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뭐 그렇게 한국 개신교만

문제가 많은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한국개신교의 특수성을- 살펴보자.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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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아-あやめ팬    친구신청

그렇지요...
핵심을 하나 짚으셨어요 ^^

그래서, 목사님들 중에서 재산횡령 사건을 일으키시는 분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스미스와존슨    친구신청

개신교의 출신지가 미국이었나요...-_-?

슈하님    친구신청

스미스와존슨// 그러니까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시작됐는데(독일의 루터교) 이후 칼뱅파 장로파 등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요 개신교가 가장 힘을 얻고 꽃핀게 미국이었죠. 메이플라워 호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도망가서 인디언 잡아죽였던
[종교] 개신교에 관해.2 (3) 2009/01/24 PM 09:21
두번째 시간이다. 이번에도 특정 종교에 대한

일방적인 비방 보다는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비난을 쏟아 내도록 노력하겠다.

먼저, 저번 글에 교회 라는 표현에 관해 성당이 아닌가?

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교회 란 -church. 종교의 회합장소를 일컫는 단어 이므로

특별히 개신교 만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당 이란 baptism 이란 단어가 있긴 하지만.. 교회 라는 단어가 약간 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 랄까. 아무튼, 교회 란 단어는 굳이 기독교가 아니어도

불교나 여타 다른 종교에도 적용할수 있는 단어라 할수 있겠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앞서서 성경의 해석권에 대해 이야기 하다 말았는데,

이게 왜 중요한가 하니.

성경이 쓰여진 시기가 빨라야 대략 2천여년전 이야기니 이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는건 사실상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어제 일어난 일을 전하는 데도 사건이 바뀌거나 와전 되는데

그보다 훨씬 무게가 있는 성경의 가르침이야..

그래서, 천주교는 하나된 교회를 이루면서 그 해석권을 교회 만이 가질수 있게 하여

의견이 나뉠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천주교가 급속히 부패하기 시작한 1500년대 후반 들어서

프로테스탄트가 천주교의 부패를 지적하며 새로이 설립되게 된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틴 루터' '칼뱅' 의 장로회, 칼뱅파 가 탄생하게된

배경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천주교의 경우야 교황과 추기경으로

체계적인 계급이 나뉘어 있었지만, 프로테스탄트의 경우에는 각각의 교회가 하나의

기업체 처럼 되어 서로 서로 경쟁 구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천주교에서는 어차피 다 같은 천주교 신자이니 신자가 다른 교구의 교회로

옮겨가는 문제에 대해 신경쓸 것이 없었지만, 개신교의 경우

하나의 독립된 교회가 교회만의 독립적인 수입으로 운영해야 하다보니 신자의

이동이 교회의 존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 하나쯤 남아있는 여름 성경학교니, 성탄예배니

하는 교회 내의 친목 관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친목관계는 한국이란 사회에서 아주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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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스팅    친구신청

오오~ 왠지 개념글이 나올 것 같군요...

EGON SCHIELE    친구신청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펠레일    친구신청

음.. 포괄적 의미로 쓰이는거였군요. ^^ 일반적으론 교회 하면 개신교를 떠올리기땜에 헷갈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질문드려봤습니다. ^^
[종교] 개신교에 관해. (3) 2009/01/23 PM 10:55
개신교의 현재 종파는 대략 2002년 기준 추산

5500여개. (전세계 추산)

거기에 한해에 200여개 정도씩 생겨나는 추세.

개신교와 천주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성모 마리아의 공경' 이 아니라,

성경의 해석권에 있다.

천주교는 교황- 추기경- 주교 순으로 전세계에 하나의 공통된 기구가 있어서

사회의 이슈나 성경의 해석권이 이 기구를 통해 이어지고, 공통적으로 결정된

결과를 각 교회와 신자들이 믿게 된다.

쉽게 예를 들면, 문제가 되었던 뉴에이지와 악마주의 데스메탈에 관해서

교황청은 ...신자의 믿음에 장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관하다.

라고 말했고, 이런 결과를 전세계의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가르치고 따르는 것이다.

개신교의 경우 마틴루터와 칼뱅에 의해 창립될 당시 이러한 성경의 해석권

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에 반발하여 각 신자 모두가 하나의 교회와 같다.

신자 스스로 자유롭게 해석할수 있다 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으나

현재 한국에서 창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개신교는 그 세력권이 교황청에서

'주임목사' 로 바뀐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가

가르쳐준 사회/성경적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것.

또 다른 차이점은 다음 시간에 살펴 보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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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N SCHIELE    친구신청

네 다음시간을 기대하겟습니다.

HP9999    친구신청

한국에서는 개신교는 없고 개독만 있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펠레일    친구신청

천주교는 교회가 아니라 성당 아닌가요? ^^;
[종교] 사탄교! Church of Satan 무섭지? (0) 2009/01/08 AM 05:32

사탄의 교회는 실제로 존재하며, '사탄경'이라 하여 그들만의 성서도 존재합니다.
다른 악마숭배자들이 그렇듯이 사탄의 교회를 만든 사람도 부모의 강요에 의해 교회에 다녔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다른종교와 신을 인정하는 않는 배타적인데다 교회의 모순과 각종부폐에 강한 혐오감을 느끼며 사탄의 교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이 사탄의 교회는 미국의 한 유명연예인이 가입을 하게 되면서 급속하게 번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신도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호기심반으로 가입한 이들도 있고, 혼음파티와 같이 성적인 것을 기대하고 가입한 이들도 있었는데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교회에서는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니만큼 숭배의식을 드립니다. 그리고 제단에 벌거벗은 여인을 올리는데,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뭐 잔인하게 죽이거나 그런 것은 없고 전혀 성적인 것도 없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경건하게 치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교회를 창설한 사람이 사탄의 교리를 전파는 것보다 가입회비면목으로 돈모으는 데만 급급하게 되자 신도들의 불만이 상당히 커지게 됩니다.

그러자 한 사탄의 추종자는 '사탄의 9계명'을 발표하며 새로운 종파를 창설하고 뒤이어 여러 종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만 200여개의 사탄의 교회와 15000여명의 추종자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루시퍼의 교회도 있지만 사탄의 교회에 비해 신도수는 미비한 수준입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아래 사진은 안톤레비(사탄교의 창설자)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뭐 뉴에이지와 묶어서 악마의 움직임이다 락이 악마의 음악이다

라는 증거로 주로 써먹는게 사탄교인데 보시다시피 이거 뭐 그래도 명색이 '악마'교

인데 ..초라하다. 눈물좀 닦자.

이 악마의 교회가 얼마나 살아남고 싶어서 몸부림 치는가 하면

안티크리스트(적인 가사) 로 유명한 마릴린맨슨과 슬레이어의 캐리킹에게

교회 입단을 허가하고 발표했으나 정작 본인들은 아무 관심도 없었음.

특히 캐리킹 같은 경우는 악마교 경전을 읽어본적이 있는데 60페이지쯤 읽다가

하도 똥같아서 던져버렸다- 라고 함.

그러니까 이 식은 떡밥 그만 좀 가지고 오라고 이 일부 몰상식하고 폐쇄적인

개신교 일부 종파야. 아참 안톤레비 똥 치우는 김에 네가 싸질러놓은

백워드 마스킹도 가져가. 벌써 30년째다. 지겹지도 않냐?

어메이징 그레이스 거꾸로 감아서 들어볼래?

뭐 천사의 소리로 들릴거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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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주님의 은총을 받아 (0) 2009/01/08 AM 03:06
뤼미에르극장 이야기-김수형 감독 아름다운사람들
2006/03/28 10:01

http://blog.naver.com/preaching12/130002970942
이 포스트를 보낸곳 ()


뤼미에르극장 이야기

김수형 감독
취재 ㅣ 이병왕 기자




불나방은 자신이 타 죽을 것을 모르고 불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이 왜 불을 향해 달려드느냐는 질문에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지가 불에 탈 걸 알면 가겠습니까? 모르니 그러지요.”라고 대답 한다.

에로물 전문 감독에서 국내 유일의 기독교영화전용관 <뤼미에르> 운영주로 변신한 김수형 감독. 불나방 같이 세상의 정욕을 따라 살던 옛사람 김수형은 수많은 에로물을 제작하던 중 1981년, 어머니 때문에 고 최자실 목사의 삶을 다룬 영화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영화관에서 다시 상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십자가 위의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에로영화의 대명사

인터넷 검색창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영화감독이란 타이틀과 함께 그가 감독한 40여 편의 영화제목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절반 이상이 에로물임을 알 수 있는 제목들이다. 6집까지 제작된 <산딸기>시리즈는 그를 1970~80년대 한국의 대표적 에로영화 감독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말한다. “당시 교회는 거의 못 다녔지요. 전도사였던 어머니는 평생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철야기도를 하셨어요. 하지만 세상의 끈을 놓는 게 힘들더라고요.”
어머니와 형님 등이 아무리 기도하고 말려도 “에로영화도 예술이다.”라며 버텨나갔다. 자기 나름대로는 잘 나가는데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와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했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이다.

참회록

“10여 년 전쯤 영화를 개봉하던 날 대홍수가 나면서 영화관이 물에 잠기고 쫄딱 망했어요. 그 때 성동구치소에서 4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러나 그가 실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이다. 그가 영화감독을 하는 동안 거의 매일 교회에서 철야하시며 그를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 후 새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신학공부도 시작했다.

‘나는 즐거워서 했지만 사회를 오염시키는 데 한 부분을 차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와 선교를 연결시켜 ‘주님을 늘 만날 수 있는, TV보다 재미있는 교회’를 목표로 기독교영화전용관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발목을 붙잡는 것들

지금의 논현동 뤼미에르 극장에서 기독교영화전용관을 시작하기까지 모든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애초엔 남대문극장을 계약할 예정이었다. 이미 계약금까지 치르고 개관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극장 측으로부터 해약 요청이 들어왔다. 표면상의 이유는 매일 아침마다 극장에 나와 불공을 드린다는 극장 사장 어머니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로영화 감독이었던 그가 영화관을 운영한다고 하자 성인전용극장으로 운영되는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기독교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준비했던 그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좋은 장소를 주실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그가 겪는 시험과 손해는 더 좋은 곳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소망교회 하명중 집사가 운영하는 뤼미에르 극장을 알게 됐고 이를 놓고 기도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던 하 집사의 마음이 돌아섰고 그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개관 준비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과로한 나머지 지난 3월, 시신경 마비가 왔다. 담당 의사는 7개월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 말고 쉬기만 하라고 했다. 그래야 60% 정도 회복이 가능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준비했던 기독교영화관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주저앉아 걱정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관을 준비하는 두 달 여 사이에 그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기독교영화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다.

부활의 몸짓

사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감상하기 때문에 일반 상영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요즘, 누가 일부러 기독교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을 찾을까? 일단 개관은 했지만 입장수익은 형편없다. 토요일엔 100명 정도, 평일은 평균 50명 정도 관객이 들 뿐이다. 그래도 그는 “첫날엔 30명이었는데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고 말하며, 희망을 가졌다. 극장 운영에 부족한 금액은 신앙 간증 강사료 등으로 근근이 메우고 있다.

경제적 압박이 불 보듯 뻔한 것을 알면서도 직업이 영화감독이라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작업으로 기독교영화전문 상영관을 생각했다는 김 감독. 영상선교사로 제2의 영화감독의 삶을 살겠다는 그는 조만간 한국교회 120년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촬영에 들어가고, 12월 중에 ‘기독교 영화제’를 개최해 기독교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다.

“당분간 고전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기독교 문화를 활성화하는 영상선교사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사탄의 문화가 복음주의 문화 속에 합류되도록 끝까지 밀고 나갈 것입니다. 그 동안은 세상에 즐거움을 줬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즐거움을 드릴 생각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에스더가 그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그가 어려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즐겨 본 서부영화의 주인공은 결코 죽지 않았다. 주인공이 죽으면 영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서부영화의 주인공으로 방금 전에 부름을 받았다. “The end”라는 자막이 뜨기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가 펼쳐야 할 활약 또한 많이 준비되어 있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이 언제 돈타령하는 것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악당과 맞서서 물리치기만 하면 현상금은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에 의해 보안관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아리따운 아가씨와의 로맨스라는 보너스와 함께….

축제의 예배를

그는 말한다. “예수님은 이벤트의 일인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이끌며 말씀을 전하셨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고 축제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주)시네마 오병이어>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기독교영화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끄셨던 군중들이 느꼈던 것과 같은 이벤트를 이 땅에 재현하며 영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자 한다. 최근 상영 중인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에서 간질에 우울증까지 겹친 무영 엄마가 안수기도를 받고 우울증이 치료되는 장면을 보고, 한 우울증 환자가 눈물을 흘리며 치유함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이벤트의 본질일 것이다.

그저 기독교 영화만 보는 곳으로 머물지 않고, 음악회, 세미나, 간증집회 등을 구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매주일 오후 4시에 열린 예배 형태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들러서 함께 예배하고,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축제의 공간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공간이 주님의 역사가 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벤트의 장(場)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게재:2005년 11월
[출처] 뤼미에르극장 이야기-김수형 감독|작성자 지혜문학


...라지만 영상선교사의 임무는 3년도 못되어 끝났음.

주님이 시키지도 않은일 했다고 빨리 끝내게 하신거 같음.

개신교의 그 잘난 믿음도 자본 앞에선 GG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코웃음칠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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