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로 자르는것보다 잡아 뜯으면 1cm 더 길게 얻을수 있어서 저런다 함.
모든 동물 털, 가죽을 얻는 과정이 공장화된 곳은 아마도 비슷하겠죠... 중국이니까 기계가 아닌 '사람 손'일뿐..
그.... 폴라폴리스 같은데 더 길고 만지면 꼭 캐쉬미어나 앙고라 만지는건처럼 미끌?부들거리는 느낌던데 이름을 모르겠지만, 요즘 트랜치 코트같은거 안감에 많이 쓰이는 화학섬유(극세산가?)들이 왠만한 동물 털 다 쳐바를만큼 엄청 따숩고 가볍던데 많이 대체되서 수요가 팍 줄었으면 좋겠네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를 한꺼번에 알려줄 순 없습니다.
수학을 교육할때 한꺼번에 모든 의미를 알려주진 않죠.
당시엔 불가능의 선을 임의로 그어놓고 개념의 확장으로 교육하는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위 문제들 역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떠한 의도로
교육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그 어떤 판단도 할수 없겠죠.
저 문제의 정답률이 또래아이들에서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몰라도
문제만 가지고 무얼 판단할수는 없을꺼라고 봅니다.
예술이라고 가정하죠.
답은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럼 교육 아에 안할까요???
당장 그것이 전체를 아우를수 없는 특수한 것일지라도 하나하나 쌓아야죠.
그리고 교육할 당시엔 그것이 전부인냥 인식의 한계를 둬야
방대하고 막연해지질 않습니다.
대부분 성인이 대부분 저 문제를 비틀어 볼만큼 인식의 확장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결코 그렇지 않죠.
(다들 저 비슷한 교육을 받고도 비틀어 보기가 충분히 가능하도록 성장했구요)
물론 교육방식 자체의 딜레마라고도 할수 있고 체점방식의 딜레마라고도 할 수 있겠죠.
비틀어보기와 다른 시점으로 보기는 무언가 시점이란것이
형성이라도 되어야 가능한 것들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그 무엇도 아니니까요.
기준 자체를 아에 안배우면.....
문제가 아리송한것은 성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겠죠.
곱셉도 더하기의 원리로 교육하는데 더하기가 아닌
곱을 곱으로 인식하면 틀리다고 체점하는 경우도 있죠.
최소한 수학을 가르칠 때에는 답이 있죠. 자연수만을 한계점으로 잡는다 해도 나중에 가서 자연수만 가지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저건 큰 어른이 봤을 때 이게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답이 애매해요. 선을 그었으면 그 선안에서 모든 것이 설명이 되고 그 선 바깥에서 봐도 납득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선안에서 마음대로 한계를 규정해 버린 거죠.
만일 초등 수학에서 0보다 작은 수는 없다. 라고 해버리면 그건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0부터 숫자를 가르쳤다 한들 0보다 작은 수가 없다는 지문은 여전히 틀린 겁니다.
그런데 저 문제는 초등수준의 교과서에 그렇게 나왔지만 나중에 가서는 다른 것도 있다고 확장이 되어야 하는데 저건 확장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책이나 외어라 수준입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만 봐온 것도 아니고 다른 매체를 통해서 다른 것을 접했을 경우에는 왜 이게 안되지? 하고 충분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건 선행이 아니라 직접 겪은 일에서 나올 수도 있는 문제죠.
저건 순전히 문제 출제자가 교과서만 보고 오류로 가득찬 문제입니다. 수능으로 예를 들면 교과서에는 한계점에서 이렇다.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나온다면 당연히 오답처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아무리 그 한계점 내에서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나중의 확장을 위해서는 그 확장 되었을 경우를 상정을 해야 하죠. 배우는 사람이 초등생이더라도 가르치는 사람은 어엿한 성인이니까요.
그리고 왜 틀렸는지를 말해줘야 나중에 고치지 왜 선만 찍 그어두고 마는질 모르겠네요. 저 어머니도 왜 틀렸는지가 납득이 안되니 저렇게 글을 올린 거고요.
그저 줄 세우기 위한 점수메기기 용도일 뿐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까지 줄을 세워야 하니 문제는 내야겠고 알송달송한 문제를 내서(조사하나 바꾼다든지 하는) 줄 세우는 거죠. 진정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위한 교육이라면 시험은 단지 아이의 발달정도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되어야지요. 현재의 시험은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줄세우기 위한 척도일 뿐입니다. 오죽하면 외국 대통령인가 교육부 장관인가 기억이 잘 안나지만 한국교육을 배우러 온다면서 왔다가 돌아가서 한국교육은 절대 따라해서는 안된다고 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