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11월 3일 서면역의 3번 출입구 앞 골목길.
"후우.... 젠장, 프라모델 하나 구하는게 이렇게 어려워질 줄이야."
나의 투덜거림에 길 건너 10번 출구역에 서 있는 친구가 문자를 날린다.
[조용히. 걸리고 싶어?]
나는 마이크이어폰을 귀에 끼고 친구 쪽으로 바라보면서 말한다.
"뭘 그렇게 쫄고 그러냐? 겨우 용다이제 프라 하나 가지고."
다시 문자가 날라온다.
[용다이제 회사도 위태로워. 생산지를 소말리아로 옮겼다는 소문이 있어.]
"그 정도야? 반다이가 대프라통일을 이루고 나서부터 모형질이 점점 힘들어지더니만,"
나는 침을 바닥에 뱉었다. 욕지기가 절로 올라온다.
"니미, 시바루, 이제는 돈있고 빽 있는 놈들만 모형질 하는 세상이라니. 옛날이 좋았지. 그때는 환율 12배니 15배니 해도 살 놈들은 사고."
[그래, 그때가 좋았지. 짝퉁이니, 정품이니, 하면서도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는 세상이었으니까.]
이래저래 친구와 문자와 통화를 번갈아 하는 중에 누군가 접근했다.
"일단 끊어. 판매자가 온 것 같으니까."
[조심해.]
폴더폰을 접고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전형적인 오덕인. 하지만 그 눈빛은 비범했다. 그 오덕인 판매자가 말했다.
"운명의"
암호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데스티니."
오덕인 판매자는 암호 확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에 매고 있는 가방을 내려 놓았다. 세인트세이야의 청동좀비들이 매고 다닐 법한 큰 크기의 가방이었다. 내려 놓는 순간, 나는 품 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음성.
"어이, 여기서 장난 칠 생각은 아니지?"
나는 앞의 오덕인 말고도 다른 오덕인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설마 사기? 아니다. 분명 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중고딩평화제국의 백성임을 알고 있다. 더 치트에서 몇번이고 확인을 했다.
"암호까지 확인했는데, 오해는 마시죠. 현금을 꺼내려는 거였습니다."
"물건도 꺼내지 않았는데? 돈을 먼저 꺼내? 우릴 호구로 알아?"
음성이 더 커지자, 앞에 가방을 내려 놓은 오덕이 손을 흔든다.
"그만해. 그래도 한때는 고전쌍마 중 하나인 식완으로 알려진 분이시다."
식완. 그리운 닉네임이군.
"고전쌍마 식완. 아직까지 모형질이라니, 그 나이가 아깝지 않소?"
뒤에 있는 오덕인의 음성이 누그러졌다.
"뭐, 이 나이를 먹고도 모형질 하는 건 어쩔 수 없지요. 취미니까."
"대화는 짧게 하시죠. 여기 물건부터 확인 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프라박스를 내려다 봤다.
"구매하시려는 것이 망한 컨텐츠 시리즈 다섯별이야기 짝퉁 빵돌이와 검고 다크한 기사 맞죠?"
"음, 이거 분명 옛날에 망한 보크스에서 낸 IMS 시리즈 방돌와 블랙나이트 복제 맞습니까?"
나의 의심에 오덕인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신용이 걸려서인가?
"맞는지는 거기서 사진 확인하고 나오신 거 아닙니까?"
"반다이가 모든 컨텐츠 판권을 쥐고 나서 보크스 제품의 프리미엄이 너무 뛰다보니, 짝퉁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재차 확인을 한 겁니다."
오덕인은 내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에서 프라 박스 하나를 꺼내 개봉했다.
"식완님이라면 전에 정품 방돌 구매한 적이 있었으니, 직접 런너 확인하시죠."
나의 눈은 개봉된 박스 속의 런너를 뚫어 질 듯, 내려다 봤다. 확실히 예전보다 더 나은 품질의 런너다. 보크스 제품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산 과거가 억울할 정도로 좋은 품질이다.
"확인했습니다. 직거래시 차비 빼주시는 거 맞지요?"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꺼내기 위해서 손을 다시 품속에 넣으려는 순간, 친구의 문자가 날라왔다.
[거기서 빠져 나와! 프라방범대다!]
나는 놀란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오덕인을 바라봤다. 오덕인도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인지, 표정이 심각해보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꼬리를 밟힌 것 같습니다. 일단 돈은 나중에 보내주시고, 물건을 여기 놔두고 가겠습니다."
오덕인의 품속에서 음악이 들려왔다. 철혈의 오펀스 19화 엔딩곡 전쟁의 등불(?火の?火)이었다.
"유인은 제가 하겠습니다. 친구를 따라 가시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오덕인은 돌아서고는 느릿하게 걸었다. 나는 뒤에 있는 오덕인에 끌려 짝퉁 프라를 안은 채, 지하철역 계단을 밟았다.
음악 소리에 유인된 프라방범대는 러브라이브 야광봉을 휘두르면서 오덕인을 쫓아갔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과 프라 방범대의 고함소리 속에서도 내 귓속으로 그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즐프라 하시길."
그 한마디에 내 가슴은 울컥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실제로 저렇게 되는 거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