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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살아있는 동안 구원(해탈)에 이를 수 있는가? (0) 2019/04/07 PM 02:56

살아있는 동안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혹은 해탈할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특정 종교적 가치가 아닌 보편적 구원을 논하기 위해서다.

보통 기독교적 구원을 이야기하면 죽은 후에 천국에 간다고 하지만
그건 교리적인 해석이고, 예수님이 전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만나는 것이다.
즉,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지옥은 없다. 
오직 살아있는 동안 신을, 신의 나라를, 신의 영광을 접하는 것이다.

불교적 구원(?)은 무엇인가?
흔히 불교의 윤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불교는 윤회가 아니라 해탈이고 열반이다.
윤회는 힌두교적 사상이고, 이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다.
해탈을 설명하기 위해 윤회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해탈을 통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의 본질은 부활이고 그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인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살아있는 동안 부활할 수 있는가?



무리다. 살아있는 동안은 부활이 불가능하다.
예수님도 죽은 후에 부활하셨다.
부처님의 경우 살아있는 동안 해탈하셨지만 죽음으로 열반에 이르셨다.

예수님 이후에는 아무도 부활하지 못했다.
수제자 베드로도 애제자 요한도 그리고 사도 바울 역시 ...
부처님 이후로 해탈에 이르렀다고 전해지는 이도 없다.


기독교는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고 한다.
이 심판이라는 어감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반칙 없이 정당한 시합을 한 선수에게는 공정한 심판이 최고다.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소천이라 표현한다.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선종이라 표현한다.
개념적 차이는 있지만 '신의 품에 안겼다.' 정도로 해석함이 옳다고 본다.

불교에선 사람이 죽으면 입적 혹은 열반이라 한다.
해탈 이후에 이른다는 열반을 왜 평범한 죽음에도 사용하는걸까?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면 사람이 죽었는데 바로 부활했다고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왜 죽은 사람에게 열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할까?

혹 죽음 자체가 이유없는 열반일까?
그렇다면 기독교적 죽음은 그대로 부활이 되는걸까?

그런데 죽음 자체가 구원이라면 살아있는동안 해탈하는 것이나
살아있는동안 구원받아 신의 영광을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예수님은 왜 자신의 가르침을 지키라고 하셨을까?
비유적 의미로 십자가 지고 죽어야만 구원이 있을까?

성서에서 세례는 죽음을 의미한다 하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매일 죽는다고 고백(하소연)한다.

개신교 교파 중 
장로교는 예정설을 통해 개인구원을 설파하고
감리교는 만인구원을 설파한다.


현대 신학자들은 구원을 자아해체라고 표현한다.
자아해체는 다음 링크 참조 - http://starvewolf.egloos.com/7241379


살아있는동안 이런 자아해체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살아있는동안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없다면 기독교 신앙이나 불교 수행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있다면 진리에 이르는 길은 어디란 말인가?

[첨가]
1 - 열반 사상은 불교 이전 힌두교 철학에도 있다.
2 - 초기 불교와 대승 불교는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초기 불교 - 열반, 출가 / 대승 불교 - 승속불이, 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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