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올랐다.
2011년 8월에 이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이 2020년.
햇수로 10년차. 만으로도 9년을 거의 채워간다.
10년만에 세전 기준으로 받는돈이 딱 두 배 됐다.
뭐.... 월급만 회사에서 받는건 아니지만.
보너스가 작년부터 꽤 덜 나오기 시작해서
실 수령액은 재작년보다도 못한 상태일것 같지만...
여튼 세전으로 명세서에 찍히는 금액은 딱 두배. 뭔가 뿌듯하다.
72의 법칙을 대입해서 만 9년...으로 계산해보면 매년 8프로씩 올랐다.
이 뭐같은 경기에... 내 만족을 기준으로 보면 적지 않다.
어쨌든 올해는 꼭 보너스 받아봐야지.
직급도 대리로 입사해서 어느덧 차장.
이 코딱지만한 회사에 직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결혼하기 전에 입사해서 지금은 어느덧 애가 9살. 초등학교 2학년.
요즘은 학교를 못가서 뭐.... 2학년인게 실감은 나지 않지만.
몇일 전 아들 옆에 누워 아들을 재우는데, 아들이 묻는다.
아빠 회사는 얼마나 다녔어?
음 아빠는 회사다닌지 십오년정도 됐어
아니 예전 회사 말고 지금 회사
지금 회사는 십년째 다니고 있지
아니 원래는 그 노란 건물에 있었자나
아 그거. 아빠가 다니는 회사가 통째로 이사한거라서 아빠가 회사를 옮긴건 아니야
아 전에 노란건물에 있을때랑도 같은 회사야?
응 아빠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십년째 다니고 있어 너가 세상에 없을 때부터
헐 완전 오래됐네 나 없을땐 왜 일했어?
아빠가 일을 해야 아빠도 밥 먹고 엄마도 맛나는거 사 주지 임마~
나 없으면 일 안해도 되는거 아냐?
근데 인제 너 잘 먹일라면 인제 열심히 일 해야지 아빠가 눈감아 임마
새삼 실감이 난다.
옆에 누워서 나한테 장난치는 키 130정도에 몸무게가 33키로나 나가는
몸만으로 보면 한 반쯤 키운듯 한 아들놈이
세상에 없을때도 이 회사에 다녔구나. 참 오래도 다녔다 싶다.
아들과 이야기 하는 잠깐사이에 10년동안 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짧지 않은 세월이니만큼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좋건 싫건 내 삶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사에서도
일을 일로만 생각하려.. 애 쓰는 편이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월급에 기반한 알량한 책임감에
뭐같은 성질머리에 윗 사람도 가끔 들이받았었고
요즘은 대가리 컸다고 사장님과도 맞먹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일 안하는 상사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기도 하고
회사 내부적인 일로 외부에 얼굴들기 창피할만큼 낯부끄러운일도 몇번 겪었지만
가끔 일이 잘 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결국 옮기지는 않았지만 과분한 조건의 스카우트도 몇 번 받기도 했었다.
물론 일은 매달 얼마 되지 않으나마 통장에 꽂히는 월급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돈 때문만에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일하는 시간 자체가,
내가 주인이 아닌 내 삶 자체가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에
그저 일에 불과힌 그 일을 나와 어느정도 동일시하며
일 안에서 보람을, 즐거움을 찾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엔 일은 일일 뿐.
그만두지 않을 만큼만 월급주는법을 배우는 학원이라도 다니듯이
정확히 그 언저리에서 월급을 주는 사장과
연차가 쌓여갈 수록 늘어나는 책임.
이 나이에도 이 연차에도 윗 사람의 따뜻한 한 마디를 바라고 마음 상해하는 나 자신과
동료 직원들의 당연한 기대, 회사 정책과 내 생각과의 괴리에서 오는 스트레스.
여러가지가 버무려져 굳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려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에대한 환멸은 점점 늘어난다.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면 좀 나을 수도 있겠으나
뭘 하고 싶은지 이 나이에도 아직도 뚜렷하지도 않고
그나마 하고싶어지는 것들을 하기에는
어깨에 얹혀진 것들을 내려놓을 수 없어
그저 지금까지의 관성으로 계속 나아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생각을 해 보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 안에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내 즐거움을, 내 행복을 알아서 찾으려 해 보지만 그나마도 여의치 않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 지난 10년 동안에도 그랬고,
앞으로 올 10년후, 20년 후에도 그렇겠지만
난 아마 그리 좋은 직원도, 아빠도,... 남편도 되지 못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