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유명하디 유명한 책. 너무 유명해서 책을 읽어보기 전에는 쓰여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줄 알았다. 여기저기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인용되니까. 아니 그렇게 유명한데 왜 다음 작품을 안 내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낼 수가 없지… 이 책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 6월 13일에 다섯번의 자살 시도 끝에 마지막 시도에서 성공하며 자기혐오로 가득한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향년 39세. 지금 딱 내 나이. .... 몇일 안 남았지만....
바로 앞에 읽은 책과 너무나 대비되는 문체로 쓰여져서 작가에 대해 너무나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자기혐오로 이정도까지… 그야말로 떡칠이 된 글을 쓸 수가 있나 싶어 작가에 대해 찾아보지 않을수 없었는데, 그야말로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만하다. 이야기에 나왔던 대부분의 상황을 작가의 삶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참 많은 의문과 아쉬움이 따른다. 이리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그 재능을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인정받던 사람이 왜 이리 본인에 대해 혐오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까.
인간이 다섯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다. 당연히 개인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첫 시도에 실패하면 그 실패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보다. 그의 첫 번째 자살 시도는 1929년 12월이었는데, 20년에 걸쳐 다섯번이나 시도한 끝에 결국 마지막에 성공했다. 왜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자살 시도를 해야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라면, 내가 만약에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면 확실한 방법을 쓸 것 같은데 어쩌면 그런 반복적인, 네번에 걸친 실패는 되려 거꾸로 삶에 대한 어떤 의지의 표현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해도 책이 작가의 삶을 온전히 반영하겠냐만은 작가로서의 성공이 쏙 빠진 그의 어두운 부분만을 그린 책을 주욱 읽어가다보면 시대도, 상황도 많이 다르지만 오징어게임의 기훈이형, ‘이정재’가 썡뚱맞게도 오버랩된다. 오징어 게임 초반에 보는게 너무 불편해서 하차할 뻔 했었는데, 게임 참가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이정재의 삶이 너무나 불편해서 하차할 뻔 했다. 내가 아마 그런상황이 된다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으려 정말 무던히 노력 하겠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런 못난 이가 된다면 아마 난 자살하지 않을까 싶다. 참가자들 455명에게 가해지는 폭력보다 이정재의 못난 삶이 나는 훨씬 더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했던 이정재의 삶보다 주인공의 삶이 훨씬 더 불편하다. 너무나 못난 자.
그는 사실 그의 삶을 싫어하지 않을 이유가 많았다. 굉장히 간접적으로 보는 타인의 시선이지만 그의 삶을 볼 때, 부러워할만한 일들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은 본인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듯, 자전적인 내용이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극중 주인공의 사회적 성취와 개인적 관계 모두 굉장히 하찮게 그려진다. 생전에 이미 대단한 작가로 평가받은 작가. 그런 그에게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그런 사회적인 평가나 물질적 풍요, 개인적 관계는 작가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그는 내연녀와 동반자살했다. 다섯번의 시도 끝에 결국 그의 삶을 스스로 끝내는데 그는 드디어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을 그 스스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너무도 충분하게, 지나치게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자기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만큼 어느정도 성숙한 인간이라면 부분적인 부분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자기혐오는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부분이 있다. 나는 나 스스로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떼어낼 수 없는 나의 일부분을 혐오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혐오하는 나의 그 부분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나를 사랑한다. 내 모습에 많은 부분 만족한다. 사회적인 성취에 대하여, 개인적인 관계에 대하여, 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 해 볼수 있는 책이었다. 삶에 있어서 자기반성적인 태도는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자기혐오에 깊게 빠져 살 필요는 누구에게도 없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짓은 자학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나 하나라도 내 편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언젠가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에게 했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대체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습니까?
PS. 이 책으로 올해 독후감 50권을 달성했다. 평년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장르인 소설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썼지만 의미있는 숫자라 기분이 좋다.
21년 독후감 50작 축하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