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운 삶을 위하여
이 글은 한양대 병원노조 조합
원 1,000여 명이 임금인상과 직제
개편을 요구하며 30일째 철야농
성, 파업을 하던 중, 노조측의 강
연 요청으로 1989. 5. 17 한양병
원을 방문한 노의원의 지지 · 격
려연설이다.
여러분, 환영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이렇게 퍼질러 앉아서 싸우고 있는 문제는 정치가 좀 잘 되어간다면 정치인들이 벌써 다 해결했어야 될 문제들인데 그렇지를 못하니 정치를 한답시고 나선 사람의 입장으로는 부춤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사기를 보니 여러분들은 반드시 이길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려놓고 일이 잘 안 풀리면 국회의원들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는 일이 많이 있어서 가끔 나서보기도 했는데, 나서보니 국회의원이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다니는 동안 한 가지 배운 것은 있습니다.
파업현장에 가보면 이 사업장은 이기겠구나 하는 감이 잡히는 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보통 결과를 보아도 이깁니다. 물론 중재를 해서 해결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처음 보았을 때 여기에서는 노동자들이 이기겠구나 싶은 확신이 생겼을 때만 중재가 성공합니다. 그것도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내용의 중재가 성립되지요. 그런데 처음 딱 보아서 아, 이 사업장은 갑갑하다 싶으면 노동자들이 집니다. 중재를 해보려해도 도대체 중재가 되지를 않습니다.
파업장에 가서 처음 딱 보았을 때 노동자들이 규율이 잘 잡혀있고, 모여앉아도 반듯반듯하게 줄을 지어 앉고, 구호도 착착 잘 맞고,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리고 사기가 충천해 보이면 백발백중 이겨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여러분이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사기가 높아 보입니다. 어제 백골단의 습격을 받고 위원장이 잡혀갔는데도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뭉쳐 있는 것을 보니 여러분은 꼭 이길 것입니다.
본래 권리는 타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다
여러분, 요즈음 신문을 보면 노동운동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가 많이 실리지요. 정부의 발표를 보아도 그렇고, 무슨 유식한 학자라는 사람들의 글을 보아도 그렇고, 보도 자체를 보아도 모두 노동운동을 은근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수출이 안된다, 물가가 오른다, 경제가 침체된다 하는 소리는 항상 듣는 소리고,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사업이나 병원과 같은 공익사업장에서 파업이 생기면 시민의 발을 담보로 요구를 관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느니, 노동자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느니 이런 것들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그 말이 옳고 그른 것은 나중에 따져 보기로 하더라도 그 같은 보도가 사실은 사실입니까? 과연 여러분이 갑자기 진료업무를 중지하여 치료를 받다가 중단된 사람이 있읍니까? 사실은 여러분은 이미 입원해 있는 환자들과 응급환자의 진료업무는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일부업무를 거부하였을 뿐인데 오히려 병원측이 한 술 더 떠서 환자를 내 보내고 마치 병원 전체업무가 마비된 것처럼 선전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환자를 담보로 한 것은 병원쪽이지 노동자 여러분은 아니지요. (예 ──)
여러분, 여러분은 보도가 사실과 달라서 억울하고, 보도하는 입장이 편파적이라서 억울하지요. 그러면서도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하는 일은 아닌가 갈등도 생기고 주춤거려지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위해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회에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될 경우에는 여러분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하여 끝까지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노동3권은 헌법상의 권리입니다. 그것도 어느날 갑자기 몇 사람이 모여 얼렁뚱땅 만들어낸 권리가 아니라 백년이 넘는 역사의 실험을 거쳐 세계 문명한 나라의 헌법이 모두 인정하고 있는 보편적인 권리입니다.
본시 어떤 사람에게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는 자동차가 지나갈 권리가 있기 때문에 보행하는 사람은 불편하지만 참아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자동차가 불편을 참아야 합니다. 그렇듯이 여러분에게 파업의 권리가 있을 때는 시민들이 다소 불편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파업이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파업이 옳지 못하다고 비난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자기의 권리만 알고 남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적 태도입니다. 요컨대 문제는 궁극적으로 요구 조건이 정당한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
여러분,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하게 휴식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몇 시에 출근하여 몇 시에 퇴근합니까? 근무시간중에 적당한 휴식 시간은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3분의 1은 됩니까? 여러분들이야 어렵게 살더라도 자녀들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을텐데 학자금은 걱정이 없는지요. 몸은 건강합니까? 지금이야 건강하더라도 언제 몸져 누울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걱정이지요. 지금 정년제도대로라면 자식들 대학가고,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쯤 직장을 그만두게 될텐데 저축은 좀 되는지요.
여러분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대답을 하기가 어렵지요. (예──) 이런 것만 해결된다고 사람다운 삶이 충족되는 것은 아닙니다. 먹는 것 입는 것도 나름이고, 집도 집 나름입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흉내는 내고 싶지요. 남에게 기죽고 싶지 않고 가끔 책도 사보고, 음악회도 가보고 싶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싶습니다. 특히 내자식이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기 안 죽게 해주고 싶지요.
여러분이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하면 돈 많은 사람들은 좀더 열심히 해서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모두가 좀더 풍족하게 살자면 모두들 부지런히 일해서 생산이 늘고 경제가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노동자들이 놀았습니까? 80년대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하면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말만 믿고 정말 뼈빠지게 일해 왔습니다.
이제 수출 500억 달러, 국민소득 4,000달러가 되었는데도 노동자들의 형편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노동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길고 산재도 세계 제일입니다. 작년 한해 동안만 해도 산업현장에서 18만 명이 다쳐 그 중 2천여 명이 죽고 8만여 명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돈 1억만 은행에 넣어 놓으면 가만히 놀고 있어도 한 달에 100만원씩이 생기는데, 그 절반도 안되는 돈을 벌겠다고 위험한 작업현장에서 하루 10시간씩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노동자들이 살기 어렵다고 하면 걱정없는 사람들은 요새 밥 굶는 사람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즈음 노동자들이 건방져서 옛날에는 취직하러 오면 잔업 많이 하느냐고 물었는데 요즈음은 한 달에 며칠 노느냐고 묻는다고 불평합니다. 아직 좀더 참아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너무 성급하게 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1억을 버는 사람, 하루에 1억을 넘게 버는 사람,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경제는 아직 사치하고 낭비할 만큼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 모두가 절제하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 자녀교육, 질병과 노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아직도 노동자들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것은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땀 흘려 번 돈을 몇몇 사람들이 모아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노동자들도 제 몫을 나누어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투쟁은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투쟁이다
여러분은 스스로 인간답게 살기위하여 여러분의 정당한 몫을 찾으려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투쟁은 여러분 혼자만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입니다.
여러분의 가난과 고통은 돈이 몇몇 사람에게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빈부의 격차는 여러분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메마르게 하고 도덕을 타락시켜 사회를 파괴시킵니다. 여러분이 투쟁을 통하여 제 몫을 찾는 것은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사회를 바로잡아나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빈부격차는 그 자체가 부도덕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 수단 등지에서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비아프라, 방글라데시 등의 기아가 널리 보도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수억의 인구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김구선생께서는 40여 년 전에 이미 세계의 자원과 생산력은 전세계 인구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쪽에서 수억의 인구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매년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것은 돈이 한 쪽으로 너무 몰려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인구의 33%에 해당하는 선진국 사람들이 세계 전기의 90%를 소비하고 나머지 67%의 인구가 나머지 10%의 전기를 나누어 쓴다고 합니다.
국내적 규모에서 빈부격차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재산'하면 땅이 먼저 생각나지요. 땅이 부의 척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몇몇 사람이 몽땅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자기 땅 한 평도 못 가지고 있습니다. 땅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불과 5%의 사람들이 전체 토지의 67%를 모아 쥐고 있습니다.
땅을 쓸 데도 없는 몇 사람이 모아 쥐고 있으니까 정작 땅이 필요한 사람은 땅이 모자라고 그러니까 땅값은 자꾸 올라 덩치가 자꾸 커지고, 땅값이 오르니 땅세, 집세가 올라 없는 사람 호주머니의 돈이 부자들의 호주머니로 솔솔 빨려들어가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집니다. 이렇게 되니 어떤 사람은 방 한칸 사글세 들어사는 것도 무허가니, 재개발이니 하여 철거되고나면 길거리로 내몰립니다.
1987년 말 200여세대의 철거민이 명동성당에서 천막을 치고 몇 달이나 살았지요. 그런 일이 어디 근 일 년에 한두 번입니까?
1985년에 신문을 보니 국민학생 수학여행비를 못 주어서 부부간에 싸움이 벌어져 남편이 화김에 불을 질러 이웃 다섯집의 가재도구가 몽땅 타버렸는데 경찰이 추산한 피해액을 보니 120만 원 이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장롱 하나에 4천만 원, 소파 한 조에 1천만 원이 넘는 호화가구가 불티나게 팔리고, 국민학생, 중학생까지 해외여행이 유행이라니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후진국이 가난한 이유는 자본이 없고 문명과 기술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선진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수탈 때문입니다. 자본이 모자라고 기술이 뒤떨어진 것도 결국 식민지적 수탈로 자주적인 발전을 방해당해왔기 때문이지요. 마치 국내에서 노동자나 농민이 끊임없이 착취를 당해 재산을 모을 수 없어 밑천이 없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 직업을 바꾸어 보려고 해도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빠 어찌 해볼 엄두릍 못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빈곤은 인간의 자존심을 짓밟고 삶의 가치와 보람을 뺏아간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장 먹고 살 것이 없는 사람,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은 먹고 사는 것 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겨우 먹고는 사는 사람도 보고 듣는 것이 있어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특히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결국 돈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파출부, 이발소 안마사, 때밀이, 접대부, 창녀, 스트립걸······.
가정부도 경우 나름입니다. 정말 그 집 주부가 무슨 다른 일에 바빠서라면 별 문제지요. 고스톱이나 치거나, 살이나 빼러 다니거나, 어울려서 놀러 다니면서 설겆이나 청소를 남에게 시키는 경우, 이건 노동이 아니라 종노릇입니다. 안마나 때밀이도 환자나 노약자에게 꼭 필요한 것일 경우 그것은 훌륭한 치료 또는 간호 행위이지만 밤낮 먹고, 놀아 살만 피둥피둥 찐 사람을 때 밀어주고 주물러 주는 일은 더럽고 아니꼬운 일입니다. 접대부, 창녀, 스트립걸, 이런 일은 더 따져볼 것도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은, 직업에 귀천이 있느냐, 그것도 소득의 분배 아니냐, 그것도 없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듯 하지요.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직업에는 분명히 귀천이 있습니다.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즉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노동 그 자체가 바로 삶입니다. 노동이 보람되면 인생이 보람되고 노동이 즐거우면 인생이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노동시간이 길어서 여가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보람있는 노동은 그 노동이 인류사회의 행복에 기여할 때입니다. 인류 모두에게 보탬이 되는 생산적인 일, 인류 모두가 꼭 필요한 일이라고 공감하는 일이라야 보람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의 말초적 감각만을 자극하고 퇴폐적인 쾌락만을 충족시키거나 인간의 정신을 타락하게 하는 노동은 아무리 땀흘려 일해도 오히려 죄악입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은 귀한 직업이고 남의 기분이나 맞추는 직업은 천한 직업입니다. 돈이 골고루 나누어져서 모두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누가 이런 천한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먹고 살고 있는 현실에 치중해서 그것도 소득재분배 구조이고 덕분에 그런 사람들도 먹고 살고 있으니 그런 일자리라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당장 어느 회사의 사장이나 임원들이 그런 소비적 노동의 서비스를 즐긴다고 합시다. 그들이 그 돈을 그런데 쓰지 않고 회사에 되돌려 천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면 생산이 더욱 늘거나 전체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돈이 나누어진다고 다 소득분배는 아닙니다. 돈이 바로 나누어지면 사람을 사람되게 하지만, 돈이 잘못 돌아다니는 분배구조는 사람의 자존심을 갉아먹고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빈부격차는 도덕적 타락을 촉진합니다
또 있습니다. 요즈음 여러분의 주택가에까지 퇴폐 · 향락업소가 들어서서 정조가 공공연히 쾌락의 도구로 매매되고 온갖 퇴폐행위와 음란물이 범람하여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걱정하게 하고 자녀교육에 걱정을 끼치더니 마침내 인신매매범까지 나타나 이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연일 보도되는 떼강도, 가정파괴범, 성폭행 범죄 이런 무시무시한 범죄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지요. 이런 범죄도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경쟁에서 뒤떨어진 사람에게 그 사회가 어떤 대우를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설사 좀 뒤떨어 지더라도 최소한의 사람 노릇을 하고 살 수 있게 되어 있을 경우에는 열심히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뒤떨어지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을 때, 자존심도 팔고 양심도 팔아야 할 때, 그도 살기가 힘들어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경우 그 사람은 낙오하고 좌절하고 결국 될 대로 되라하여 마약에 빠지고 범죄에 빠져들게 됩니다.
매춘이나 범죄의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있게 마련이지만 돈이 한 쪽으로 몰려있는 사회일수록 극성을 부리게 마련입니다. 한 쪽에서는 가만히 앉아 놀아도 돈이 남아도니, 못된 짓이 생각나고 한 쪽에서는 먹고살기 힘드니 정조의 매매와 퇴폐 · 향락이 성행됩니다. 돈으로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고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더럽고 아니꼬운데, 그 돈을 버는 과정이 또한 떳떳하지 못할 때 낙오한 사람의 좌절감은 반감으로 바뀌게 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되니 범죄가 들끓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빈부격차구조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유행은 본시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흉내에서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유행은 옷차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전부가 유행을 따르게 됩니다. 돈이 남아도는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을 즐기면 모든 사람이 흉내를 내려하기 때문에 사치와 향락이 온 세상을 휩쓸게 됩니다. 너도 나도 하니까 모두에게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고, 도덕이 타락하니까 먹고 살만한 사람들도 양심도 자존심도 정조도 예사로 생각하게 되어 도덕적 타락과 범죄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사회가 파괴되어 누구도 안심하고 살 수 없게 됩니다.
빈부격차와 독점자본주의 구조
옛날부터 돈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당연히 있을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독점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폐해가 특히 심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버는 제도입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은 자본이 없는 사람을 고용하여 물건을 만들고, 이 물건을 팔아서 받은 돈 중의 일부만 노동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지므로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고용할 때나 물건을 팔 때나 자본가들 상호간에 경쟁을 하게 되므로 노임도, 물건값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고, 결국 그렇게 경쟁을 하다 보면 돈 으로 돈을 번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돈, 즉 자본이 몇몇 사람에게 몰려 있으면 한두 사람이 산업과 시장을 독점하여, 사는 것이든 파는 것이든 몇 사람이 값을 마음대로 정하게 되지요. 한두 사람, 또는 몇 사람이 노임을 마음대로 정하니까 노동자들의 호주머니는 얇아지고, 물건값을 마음대로 올리니까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지요.
노동자가 소비자고 소비자가 노동자니까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노동자지요. 돈이 몰리니까 이것저것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가리지 않고 마구 벌리니까 중소기업은 살아남을 재간이 없고 결국 독점은 더욱 심해져서 전국시장과 은행돈의 4할을 30대 재벌이 몽땅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재벌들은 이것 저것 사업만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땅을 마구 사모으니 땅값, 집값이 마구 오릅니다. 작년과 올해 집값이 마구 오르니까 돈 있는 사람들은 재산이 몇 배나 불어났습니다.
정부에서 평당 130만 원으로 정해 놓은 아파트값이 평당 1,000만원까지 올랐다고 하지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1억5천만 원 주고 아파트를 한 채 샀는데 몇 달 안가서 집값이 4억으로 올랐답니다. 그 사람, 자기가 생각해 보아도 어이가 없는지 좋아하기는 커녕 정말 큰일났다고 걱정합니다.
나는 재벌들이 무엇 때문에 돈을 그렇게 끝없이 모으는지 이해가 안가요. 죽을 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 죽을 때 갖고가나, 이 말은 재벌들이 더 좋아하는 말이지요. 그 사람들, 너무 악착스럽게 돈을 모은다고 누가 뭐라고 하면 죽을 때 갖고 가길 하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사업하는 줄 아나, 이렇게 되묻습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딸린 식구들, 자기네 가족이 아니라 전종업원과 그 가족들 먹여 살릴려고 사업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을 자꾸 키우고 늘리더라도 주식은 종업원들이나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면 펄쩍 뛰지요. 실제로 이런 재벌을 만났을 때 하도 자기 혼자 잘살려고 하는게 아니라고 강조하길래 슬쩍 한 번 권유해 보았더니 펄쩍 뛰면서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포기하자는 거냐고 따집니다. 자본주의가 제 할아버지 유언인지는 몰라도, 여러분, 그렇게 하면 자본주의가 안됩니까?
끝없이 돈을 탐하는 이유는 지베욕 입니다. 사람은 본시 강한 지배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끝없이 돈을 탐하게 되고, 결국 더 큰 돈을 모으기 위해서 독점을 고안해내고 독점의 구조는 돈을 더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더 큰 지배력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독점자 용구의 지배구조
저는 오늘 여러분의 파업투쟁을 격려 · 지지하러 왔는데 이야기를 너무 엉뚱한 곳으로 끌고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 사실은 지금 이야기가 바로 여러분의 노동운동의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언제부터 남을 지배하기를 좋아했는지는 저도 다 알지 못하고, 조금 알 듯하다 해도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류사회에는 소수의 사람이 여러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반면에 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위하여 뼈빠지게 노동하면서도 사람대접도 못 받고 헐벗고 굶주려 왔습니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부려먹기 위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괴롭혀왔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여 왔습니다.
옛날에는 신분 질서에 의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왔습니다. 법으로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하고 강제로 일을 하게하거나 생산물을 뺏아가고, 심지어는 집의 크기와 옷차림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직접 법으로 어떤 사람은 권력을 쥐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어떤 사람은 억압받고 착취를 당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안 억압받던 사람들은 이것이 옳지 않다하여 싸워왔고 그 결과 혁명의 시대를 거쳐 민주주의 사회가 되면서 법이 바뀌어 신분질서는 무너지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리가 선언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꼭 같은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 초기에는 돈과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돈이 돈을 벌기 쉽도록, 얼마든지 벌어서 얼마든지 가질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돈을 못 벌게 하는 법은 없었기 때문에 얼른 보면 공평한 제도 같이 생각되지만, 돈이 돈을 벌게 되니 자연 돈은 한 쪽으로 몰리게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입에 풀칠도 어려워 돈이라면 목숨이라도 팔아야 될 형편이 되고 보니 자유고 평등이고 하는 권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읍니다. 결국 아무것도 못 가진 사람은 돈 가진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못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못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놈의 돈이 독점자본주의 사회 아래서는 몇 사람의 손에 몰려 있으니까 그 몇 사람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지요. 심하면 죽이고, 살리는 것도 그 사람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 죽이면 살인죄가 되고 당장 잡혀가서 처벌받을텐데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제 말이 맞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업장에서 파업이 있었는데, 여러분,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업주인 어느 재벌이 공장문을 닫겠다고 했습니다. 한 2천여명이 일하는 공장인데 공장문을 닫으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갑니까? 어떻게 먹고 삽니까? 그 가족까지 합치면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어디 다른 데 취직하면 되지요. 그러나 요새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있어서 적어도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다른 데도 취직이 안됩니다.
그 회사가 적자가 났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처럼 기분 나쁘다고 공장문을 닫아 버리면, 그래서 전국의 노동자가 몽땅 해고되어 버리면, 그 사람들, 돈 많다고 목에 힘주던 사람들 누구한테 목에 힘줄니까? 전국의 노동자들이 몽땅 일손을 놓아 버리면 그 사람들 돈은 어떻게 법니까?. 그게 안되니까 그 사람들 계속 목에 힘주고 노동자를 죽이고 살리고 마음대로 하는 거지요.
지금까지 제가 계속 가난한 사람들이 자존심을 짓밟고 종노릇 하는 얘기를 하니까 돈푼이나 있고 목에 힘께나 주는 사람들은 자기와는 관계없는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종노릇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이사 · 부장 · 과장님들, 모두가 소망하는 아파트도 한 채 있고, 자동차도 한 대 있고, 주말 되면 골프도 치고, 처자식 차에 태워 야외에 놀러도 가고 직장에 오면 깍듯이 존경받고, 때로는 호령도 할 수 있고, 그럴듯하게 살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구시대를 만듭니다.
무슨 사건이 있어서 회사가 관련된 재판이 벌어지면 법정에 서서 위증합니다. 특히 노동사건 재판에서는 더욱 심하지요. 이중 장부 만들어 탈세하고, 그린벨트 훼손하고 공무원들 찾아다니며 굽실거리고, 오리발 흔들고, 뇌물 주고 바이어라 하면 꺼뻑 죽고, 동생같고 딸 같은 처녀를 양놈, 쪽바리한테 수청을 들게 하고 못된 짓을 안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고 싶어 합니까. 안 하고는 못배기니까 하지요. 그러다가 들통이 나면 감옥가지요. 회장님, 사장님 대신에 감옥갑니다.
여러분, 흥부 매품팔이하는 얘기 읽어 보셨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매품팔이하는 사람이 제일 비참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사건 지시했다가 감옥 간 한유동전무(당시 현대엔진 전무이사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노사담당 팀장), 그린벨트 훼손했다고 벌금 문 무슨 상무, 지난번 백화점 사기세일 사건으로 부장들 줄줄이 잡혀갔지요. 그 사람들 정말 자기들이 범법하고 싶어했습니까? 다매품팔이 한 겁니다. 그 사람들뿐이 아닙니다. 무슨 공해사건, 탈세사건, 노동사건, 조무래기 사장들이야 직접 감옥가고, 벌금 물고 하지만 어지간히 큰 회사 회장님, 사장님은 절대로 감옥 안갑니다.,
소신껏 하는 일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면 왜 숨어서 합니까? 적어도 평소에 이런 일하면서 집에 가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랑은 못하지요. 중소기업 사장님들, 특히 하청이나 납품하는 분들, 온갖 아니꼬운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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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당하고는 사업 못 하지요. 남는 것은 대기업에서 다 걷어먹고 몇 푼 안 남으니 노동자들과 싸우는 것도 떠 맡아야지요.
시장이 경쟁의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면 거의 안 해도 될 매품팔이가 지배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요. 돈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져 있어 자유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면 예외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이런 일들이 독점체제 하에서는 돈의 지배가 강화되니까 일반적인 현상이 되는 거지요.
물론 스스로 이런 경험을 안해본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운좋게도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모두에게 그런 일을 시킬 필요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누구라도 그런 일을 명령받거나 해야 할 입장이 되면 과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거절할수 있는 사람은 노동운동가나 민주투사가 되고 고생하는 거지요. 결국 독점자본주의 구조하에서는 경영자, 관리자, 중소상공인, 지식인, 모두가 자존심도 도덕성도 지키기 어려운 속박을 받게 되는 거지요. 적어도 잠재적인 매품팔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문을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독점자본의 지배구조를 해체해야 합니다. 돈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게 해야 합니다.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제도는 법입니다. 법을 만드는 것은 정치가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독점자본주의구조 하에서는 돈이 정치권력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고, 세워진 권력에 대하여 끝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니까 돈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기가 쉽지 않고, 조금 불편한 법을 만들어 놓아도 집행하는 사람들이 돈 많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집행하고 법을 어겨도 눈감아 버리니 돈이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돈 없는 사람이 정치를 맡아서 돈을 흩어지게 하고 그래서 돈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투쟁없이는 돈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돈이 나누어져 버리면 지배구조는 무너집니다. 반대로 정치권력이 돈 없는 사람에게 이전되면 돈을 골고루 나누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쉽지만 돈가진 사람이 돈을 그냥 나누어 줄니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권력을 넘겨줍니까?
역사상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이, 다시 말하면 지배수단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지배권을 양도한 일은 없습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재산을 포기하거나 권좌에서 물러나는 일은 있어도 민중의 힘에 밀려 지배계급 전부가 지배권력과 지배수단을 포기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지배권력을 송두리채 내놓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점차적으로라도 양보하여 억압받는 사람들의 숨통을 열어주기라도 하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될텐데 그것마저 자발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끝임없이 약한 사람들을 더 억압하고, 더 뺏을 궁리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는 힘없는 사람들이 그들을 얽어맨 가혹한 사술과 무거운 짐을 조금씩 벗겨내고 자유와 권리를 하나씩 늘려가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발전은 억압받는 사람들 스스로의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노예제도는 노예들의 끊임없는 저항에 의하여 골병이 들어 붕괴되었고, 중세봉건제도는 시민들의 혁명에 의하여 무너졌습니다. 기존의지 베세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지배세력이 들어 설 때마다 그때까지 억압받던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확대되고 삶이 나아진 것입니다. 이렇게 지배질서가 한꺼번에 뒤집어진 경우가 아니라도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유는 조금씩 확대되어 왔습니다.
같은 중세 봉건제도 안에서도 지대의 형태가 점차 농노들에게 편리하게 바뀌었고, 근대 시민혁명 이후에도 부자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없었으나 차츰 보통선거권이 인정되었고, 지금 여러분이 행사하고 있는 노동3권도 인정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점진적으로 달라진 것도 억압받는 사람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요컨대 왕창 바뀌든, 조금씩 달라지든 그 것은 모두 억압받는 사람 스스로의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지 지배계급 스스로 내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국 억압받는 사람 스스로의 투쟁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겠지요.
여러분의 노동운동은 모든 투쟁의 선봉이요 중심이다
억압받는 사람의 투쟁, 말하기는 쉽지만 막상 실천을 하려고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정말 막연합니다.
막연히 표현하여 억압받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억압의 형태도 다르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계층과 집단도 다양해서 각기 목표도 다르고 투쟁의 방식도 다릅니다. 억압의 방식도 지배구조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르고 그것도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투쟁의 방법도 지배구조에 따라 다르고 지배수단에 따라 다양해야 합니다.
이 점은 저도 아는 것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노동자 여러분이 공부해야 할 과제로 남겨 둡시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은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지각을 가지고, 가축으로서의 치욕스러운 삶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조직적인 투쟁이라야 한꺼번에든 조금씩이든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고통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들고 일어난 일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이념과 목표가 없이 비조직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들은 희생만 치렀을 뿐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지요. 한말의 진주 민란을 비롯한 여러 민란이 그 예이지요.
그에 반하여 뚜렷한 목표를 내걸고 조직적으로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봉기 같은 경우는 끝내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지배구조를 크게 흔들어 놓고 뚜렷한 제도개선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혁명으로 발전한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이제 여러분의 투쟁이야기로 돌아와야 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스스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 투쟁은 결코 여러분 스스로만을 위한 투쟁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3권 자체가 지난 시절 노동자들이 피나는 투쟁의 결과로 얻어낸 고귀한 성과이지만 이 권리를 단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권리로 축소해석해서는 결코 여러분의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투쟁으로 근로조건을 조금 개선하는 동안 지배자들은 또다른 지배수단을 개발하여 여러분의 몫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여러분의 파업을 방해하는 권력자와 자본가들은 임금을 올려봤자 아무 소용없다.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결국 본전이거나 손해만 본다,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인상분을 지금까지 챙겨놓은 자기들 몫에서 내놓지 않고 물가에 전가시켜 여러분의 몫을 도로 빼앗아가는 착취와 수탈의 기술을 스스로 고백하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가지 착취의 기술과 제도 중의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지베구조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본시 노동운동은 지배구조의 변혁을 향한 것입니다.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한 차티스트 운동, 서구에서의 노동자 정당, 러시아 노동자혁명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도 노동운동이 오로지 근로조건 개선만을 위해 인정된 것인양 선전하는 것은 거짓선전입니다. 그 자체가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입니다. 분명 노동운동은 지배구조의 변혁을 위한 전체운동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단순히 여러 계급과 집단의 변혁운동 중의 한 부문운동에 불과한 것은 아니고 그 운동의 가장 선봉이자 중심에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변혁운동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벌려나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노동운동이야 말로 목표가 뚜렷하고 조직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이론과 경험을 쌓아 놓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야말로 가장 수가 많고 가장 심한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역량이 강한 부문운동입니다. 노동운동이 시원치 않으면 어떤 변혁운동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설사 권력이 교체되는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지배자의 얼굴만 바뀌는 것일 뿐 지배와 억압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몇 십일씩 집에도 못 가고, 여기보니까 연세가 지긋한 아주머니들도 많이계신데, 자녀들 밥은 해 줍니까? 아이들 학교는 제대로 나갑니까? 이렇게 외박을 계속하면 남편들 한테 안 쫓겨납니까? 시멘트 바닥에 이렇게 앉아서 쉬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고 계신데, 정말 이길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돈 몇 만 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어 서글프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집에 가버리고 싶지만 동지들 의리 때문에 못가고 주저 앉지요.
여러분, 그런 게 아닙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요. 여러분들이야 말로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변혁운동의 선봉에 서 있읍니다. 돈 몇 푼이 아니라 세상을 달라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반드시 여러분과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당장 하루하루의 싸움에 걱정스러운 여러분들에게 너무 구름잡는 얘기만 한 것 같습니다만 저는 결코 구름잡는 얘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결의를 보고 당장의 싸움은 이기겠구나 생각이 들어 좀 구름잡는듯한 말씀을 드리게 된것 같습니다.
여러분,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