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도 사쿠라 님이 나온다는 것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영화음악이라는 것 빼고는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보러 갔습니다.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은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을 봐서 어느 정도 대표작들은 봤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감독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이만큼 생각할 거리를 묵직하게 던진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운이 깊고 진하게 남습니다.
왕스포 내용을 이야기할 것이니 아직 안보신 분은 뒤로 가십시오.
영화는 같은 시간대의 사건들을 서로 다른 인물들의 관점에서 따라가는 3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형식인데, (딱히 챕터를 구분하지는 않지만)
첫번째 챕터에서 주인공 미나토의 엄마, 두번째 담임인 호리쌤,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비밀들을 간직한 교장쌤, 미나토, 요리까지,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의 시점에서는 부당하고 비합리적이고 답답하고 분노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사건에 얽힌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시선으로 볼때는 어쩔수 없다고 해야하나,
말할 수 없는 사정들과 감추고 싶은 비밀들에 의해서 온전히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기도 하면서,
제 마음에 큰 화두거리를 던졌습니다.
남들에게 말 할 수 없는,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비밀을 가진 입장의 사람들(미나토, 요리, 교장)에게도 너무나 공감이 되고,
단편적으로 목격했던 타인의 행동과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평판을 근거로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라고
편견을 가지고 대한 적도 많았고..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편협한 근거로 괴물 취급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계속 씁쓸하게 남더군요.
특히 교장쌤과 미나토가 관악기를 불면서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들을 뱉어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엄마나 담임쌤 시점에서는 마치 나를 괴롭히는 보이지 않는 괴물의 울음소리 처럼 기괴하게 들리는데,
사실은 말 못하는 짐승의 구슬픈 울부짖음과 같이 느껴져서 너무나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교장쌤의 “행복은 특별한 누군가만 가질 수 있는게 아니야,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하지.”라는 대사도 여러가지로 공감이 됬어요.
극 후반부 엄마와 담임쌤이 버려진 열차칸에서 아이들을 찾으려 폭우속에 흙이 쌓인 창문을 열심히 닦아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네요.
사건의 진실, 혹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 싶어도 쏟아지는 비와 흙탕물이 계속 쌓이니 결국 창문을 통으로 들어내기 전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던것 처럼. 모든 문제들을 계속 대충 덮어놓고 가려는 학교측이나, 정확한 취재 없이 담임쌤을 쓰레기로 못박아 버리는 언론이 그런 흙탕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리의 아버지로 나카무라 시로 배우님이 나와서 반가웠는데(지금 만나러 갑니다 주인공) 작중 가장 나쁜놈이라 짜게 식었네요ㅎㅎ
요리의 아버지는 요리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아이를 학대하면서 고쳐야 한다 이지롤을 하는 개쓰레기 였는데,
미나토의 엄마는 만약 미나토의 성향을 알았어도 잘 보듬어주는 엄마였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구요.
담임쌤 배우도 혹시나 일드 노다메 칸타빌레 나왔던 그 배우 아닌가? 했는데 그 에이타 배우님이 맞더군요.
후반부에 모든 떡밥들이 정리되면서 뭔가 울컥울컥 했는데, 엔딩씬에서는 결국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지금 다시 떠올리니 또 뭉클함)
조조로 갔던 극장에 제 앞자리에 남자분 한분 계셨는데 그분도 엔딩크레딧 올라갈때 눈물을 훔치시더군요ㅎㅎ
엔딩에서
요리 : 우리 다시 태어난건가?
미나토 : 아니 여전히 그대로야.
라는 대화를 나누고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나더군요.
거기에 크레딧 올라가기 전 사카모토 류이치 추모 문구에 또 한번 울컥.
글 쓰면서 다시 생각해도 뭉클한 기분이 드네요.
오랜만에 엄청난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