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화학과 학생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역사를 공부하는 사학과 학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 역사물의 고증이란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다른 것을 뜻하는 것은 사실이다. 말하자면 시네필보단 역사 고증의 문제가 더 눈에 잘 들어오지만, 사학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 고증 문제에 딱히 큰 문제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량>의 문제는 그런 의미에서 델리케이트하다. 영화사나 후손들이나 둘다 납득갈만한 말을 하고 있다. 확실히 배설 장군은 탈영 전적이 있다해도 사보타주에 프래깅까지 한 전적은 전혀 없지만 <명량>은 이를 각색하여 극에 더 극적인 드라마를 실어주는 방향으로 설정, 아예 악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물에서 고증 문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필자가 좋아하는 TV 시리즈
개인적으로 필자는 명예훼손으로 다른 이들을 법정에서 공격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법 자체가 (한국의 다른 법들과 같이) 너무나도 애매모호에 일부 특정한 이들이 비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게 가능한 법이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 유포죄와 함께 이미 전부터 표현의 자유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법으로 말이 많아왔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건드릴 필요도 없이 이미 영화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그렇게 영화의 초반씬이 통째로 잘라져버렸다 (물론 이 조차 절묘하게 풍자하였지만).
그럼 표현의 자유는 아무것이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인가? 아니다. 자유란 언제나 책임을 동반한다. 표현의 자유는 필자가 "히틀러는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게 해 줄수 있지만 이 말을 하고 사회적 린치를 당하는 것을 막아주진 않는다. <명량>의 배설 장군 케이스도 비슷하다. 영화는 "배설장군이 이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자유는 있다. 하지만 그걸 말하면 역공을 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표현의 자유라고 얼버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저희는 이리이리해서 그리 묘사하였습니다"라고 맞받아쳐야한다. 그리고 그렇게 맞받아칠 수 없는 클레임은 욕먹을 각오가 없으면 아예 하지 말아야한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말할 권리를 주지만 말한 것을 비판과 비난으로부터 막아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를 '법'이라는 엄연한 공적 효력이 있는 것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반이다. <명량>의 케이스에선 소송을 건 쪽이 더 합당해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필자는 영화사가 픽션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그렇게 역사적 인물을 묘사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명량>에서의 케이스만이다. 이 명예훼손 소송이 법정에선 후손쪽 승리로 끝난다면 이는 영화계에 크나큰 재앙이다. 선례를 남기기 때문이다. 선례는 현대법의 기초중 기초이다. 만약 선례가 있으면 이를 뒤집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런 선례를 남겨버리면 영화계는 구체적인 시스템만 없을 뿐 3,4,50년대 헐리우드처럼 계속 자체 검열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명량>이야 최대 흥행 영화이지만 만약 이후 정부나 사회의 구린 점을 꼬집는 인디 영화가 이런 "명예훼손죄"에 소송된다면?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암울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시각으로 접근했다. 영화사나 후손 쪽 둘다 납득할만하다는 것이 아니라, 둘다 잘못했다는 것이다. 영화사가 문제를 시작했지만 후손들이 택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대한 접근도 잘못되었다. <명량>의 배설 장군 케이스는 이렇게 접근되면 안된다. 이 사건을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게 대하는 방법은 누군가를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배설 장군은 이러지 않고 <명량>은 틀렸다는 것을 관객들이 직접 인지해야하는 것이다.
이를 사회가 인지하여 관객들이 직접 <명량>을 비판하는 것(혹은 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옹호하는 것)이 옳은 방식이다. 명예훼손이란 치맛가락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만약 관객들이 이런 사건에 관심이 없으면 그들을 지금과 같이 매스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책임감있는 사회 일원이라고 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볼테르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자유는 내 목숨을 걸고서 지킬 것이다." 이 말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마음 속에 세기고 있어야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량>은 이런 고증 문제로 박터지게 싸울 가치조차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