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장은 지난 프로젝트에서 신입사원 P의 아이디어를 훔쳐 자기 것인양 포장해 수훈을 가로챘다. 이번에는 내 기안에서 어미와 단어 몇 개 고친 복사용지 수준의 기획서로 한 번 더 승진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날 저녁 회식자리. 집에 갈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지 못해 술도 먹는 둥 마는 둥 좌불안석하던 내게 최 부장은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역시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고 패기도 욕심도 없다며 ‘라떼는~’을 필두로 제법 긴 시간 무안을 주었다.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도망가기는 틀렸다는 생각에 어색한 자본주의 웃음과 함께 다음에는 조금 더 열심히 하겠노라는 사회인 회피 스킬 ‘구라’를 발동했다. 그리고 몇 잔만 더 마시면 이내 쓰러질 것 같은 최 부장의 소주 잔을 채우며 말했다.
“최 부장님. 오늘은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고. 부장님. 잔이 비었네요. 이렇게 기쁜 날 한 잔 더 받으셔야죠.”
<최 부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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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귀여운 공포 네 컷 만화를 지난 불면의 새벽에 그리려다
마지막 한 컷을 아이폰에 손가락으로 먼저 그린 뒤 바로 지쳐(?)
포기하고 그래픽노블(?)로 선회한 결과물입니다.
정초부터 뻘생각하다 갑분설로 끝냅니다.
설날 복 많이 받으셔요. :D
22.01.30 (일)
곰팡이꽃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