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년간 절에서 생활하였다.
조계종의 포교사찰이어서 민가와 가까웠는데, 서울의 어느 공원에 있었다.
특징은 여자스님들만 있다는 점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일과를 시작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죶같았다.
부처님이고 부침개고 나발이고 잠좀 실컷 자고 싶더라.
(오히려 어려서 절에서 생활한 덕분에 종교에 대한 이상스런 집착이나 신비주의가 사라졌나보다.)
조그만 놈이 목탁치고 염불하는게 귀엽고 기특했는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점점 늘어가서 장사도 잘 된거같다.
종래에는 내 전용 살구목탁까지 들여놨다.
이게 울림은 조금 부족한데, 청량감 있는 다소 높은 소리가 나는 어린애다운 목탁이다.
절에서는 시간만 나면 다도회를 하였는데
본관과 떨어진 별실로써 다도실이 준비되어있다.
민가 옆 공원이다 보니, 다도실도 그냥 별채건물처럼 지어져 있다.
여름날, 이곳에서 다도를 하며 수박을 먹는데, 스님들이 내가 먹은 수박껍질을 다 뒤집어놓는거다.
자기들것도 그렇게 두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다, 내가 껍질만 두면 스님들이 뒤집어 놓으니 신경이 안 쓰일리가 없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스님 제가 할게요, 이것을 왜 뒤집는겁니까?"
"얘야, 수박껍질을 뒤집어놓던, 그대로 두건 똑같단다. 단지, 내 이자국이 나있는 저 껍질이 다른이들에게 보여서 좋을리가 없기 때문에, 이왕 두는 것 뒤집어서 두는 것이란다"
나는 지금도 여럿이 수박을 먹을 때는 반드시 내 껍질을 뒤집어서 지저분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 다도실에서 있던 일이다.
누나와 한참 장난을 치고 자주 다투기도 하였는데
이날 다도실에서 스님들과 차를 마시며 놀다보니, 한쪽 벽에 지름 1.5m는 되는 커다란 접이식 부채가 있더라.
날이 더워 이것을 쓰려고 해도 도저히 쓸수가 없었는데, 스님에게 기어이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이깟 것을 왜 들여놓았습니까? 쓰지도 못하는 것을"
그러자 스님이 누나와 나를 불르더니, 부채를 가져오게 시키더라
가져다 드리자 스님은, 부채로 나와 누나를 시원하게 부쳐주었다.
"이 부채는 자기자신을 시원하게 하려고 만든 부채가 아니다"
나는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고 성당도 가보았지만
어려서 겪은 이런 사연들 때문에 절과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나신교"
대답이 귀찮을거 같으면 "불교"이지만
지인의 교회에 설겆이 봉사라던지,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간다던지 등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목사님이 영업하려고 들러붙는 것 만은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