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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사상] 자신이 자유주의자라 생각한다면 알아야 할 가치들 (1) 2021/12/10 PM 05:07


자유주의자는 왜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가?

그것은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기획이라도

완벽하게 통제된 결과를 가져오진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과 사회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전제하고 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고, 그 결과가 오롯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파악할 순 없다.

따라서 설계자는 언제나 결과의 실패를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 실패에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나 대비책도 갖추어야 한다.

언제나 그 설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정확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결정론은

예측불허한 사태에 대해 대비하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높으며

무지개빛 결과만을 예측한 설계자는 그 결과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변명하는 것으로 매듭짓는 결과

결국 선한 의도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사야 벌린은 이런 결정론자들을 비판하며 말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인간의 성장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불확실한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바로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자아는 스스로 성장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며, 완벽히 통제된 계획은 도리어 그 성장 가능성을 막아버릴 수 있다."

즉, 벌린은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의 선택 가능성을 중시한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부른다 할 지라도, 개인의 선택 가능성, 그것으로 자신이 불러올 수 있는 자아의 성장 그 자체를 막아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벌린이 무조건적으로 국가의 복지나 역할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예를 들어, 공교육이나 건강보험 문제에 있어서

이를 사교육이나 사보험으로 대체하는 것을 벌린은 경계한다.

대부분 사교육을 중시하는 경우, '선택의 확장'을 빌미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이는 선택의 가능성을 지닌 계층에 한한 것이며, 빈민층의 경우 도리어 초기의 높은 비용으로 인해 '개인의 선택권' 그 자체가 박탈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이는 도리어 개인 자유를 제한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모든 악명 높은 참상들이 다 맞는 말이다. 법률상의 자유란 극단적인 형태의 착취, 무자비, 불의와 양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들의 적극적 자유를 위해서 또는 적어도 최소한의 소극적 자유를 위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가 또는 어느 다른 효과적 대리자가 나서서 간섭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지극히 강력한 일리가 있다." -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중 p.131


이사야 벌린은 자신을 무자비한 자유방임주의자라 비판하는 학자들에 대하여

자신이 쓴 글, 자유론의 서문에 빌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무제한적인 자유방임의 폐해가, 그리고 그러한 무한경쟁을 허용하고 조장하는 자유방임의 폐해가, 그리고 그러한 무한경쟁을 허용하고 조장하는 사회체계 및 사법체계의 폐해가, "소극적" 자유에 대한 침해, 즉 기본적 인권 - 자유로운 의사 표현 및 결사의 권리 등, 그것 없이도 정의나 박애 또는 심지어 일정한 종류의 행복조차 혹시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나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는 권리 - 에 대한 광포한 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그 글(〈자유의 두 개념〉)에서 강조하였던 것보다 더 강조했어야만 했던 것 같다." - 이사야 벌린 자유론 서문 중


즉, 벌린은 여러 비판에도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그나마 어떤 거대한 힘이 개인의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피에르 브루디외와 같은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각 개인의 선택권을 말할 때.

만약 그가 태어난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즉 어려서부터 환경이 좋았던 부자들의 (흔히 금수저) 경우,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은 처음부터 어글어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금수저들은 어렸을 때부터 요트 여행이나 골프와 같은 고급 취미를 미리 접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사전 지식과 관계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나중에 사업을 하더라도 요트 사업이나 골프 관련 사업을 누구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이러한 문화를 애초부터 향유할 수 없는 빈곤층에게는 애초에 범접 불가능한 장이다.

이러한 기회에 있어 부자와 빈자는 구별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부르디외의 장이론, 구별짓기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자신이 성공한 것이 항상 자신의 노력에 귀속된다고 여겨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실패가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실패할 최소한의 권리나 운조차 받지 못한다.

즉, 자신이 위치한 입장, 관계, 환경, 사회망. 이 자체를 하나의 타고난 운 적 요소로서 파악해야 하며, 본인의 성공에 관해 항상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어야만 개인의 성공은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런 주장들이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반역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묶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언급하자면..)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전통 보수주의는 항상 강조하는 가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명예에 대한 헌신"이다.

여기서 명예란 자신의 위치를 의미한다.

즉, 자신의 위치가 귀족이나 학자와 같은 계층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누군가를 박해하거나 침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 국가나 공동체, 혹은 자신의 지역사회 인구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때

보수주의는 비로소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본다.

공동체주의자 샌델의 주장과 매우 흡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자유주의자라면

결과적으로 계획된 통제가 아니라 개인의 성장 가치를 염두한 기회와 선택의 가능성을 중시하되 (왜나하면 언제나 개인과 사회의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차별적인 자유방임에 악용되는 것을 막고

자유에 의해 얻어진 성공이나 이득에 관해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반성적으로 성찰하여 결과적으론 전체의 이익(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말한 국부의 확장과 일맥상통한다.)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참고한 책들

이사야 벌린 - 《자유론》  (특히 서문과 자유의 두 개념)

피에르 브루디외 - 《구별짓기》

마이클 샌델 - 《공정하다는 착각》

유벌 레빈 -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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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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