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항상 성공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실패할 수 있고, 때론 인기가 없으며 무능하단 평가를 받을 수 있지요.
민주적인 대통령이었으나 정부적 측면에서 실패하거나 무능하단 평가를 받는 케이스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간'으로선 훌륭한 인물이지만 '대통령'으로선 엉망이었다."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하지만 정치를 못했다는 이유로, 정책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지미 카터란 인물을 심판할 순 없는 겁니다.
지미 카터는 실패했지만, 부패하진 않았으며, 그 정부는 무능했지만 민주주의 정신을 더럽히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면서도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는 체제입니다.
어찌보면 정말 억울한 체제이기도 하지요.
난 그 사람을 지지하지 않았는데도, 그 실패에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패 가능성, 무능한 정부의 탄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민주주의 체제의 지속을 염원하는 이유는
잘못된 정책과 정부는 쉽게 국민의 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부의 심판론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실패한 정부는 새로 쓸 수도 있지만, 고쳐쓸 수도 있습니다.
모든 정부는 공과가 존재합니다.
어떤 정부라도 모든 분야에서 실패를 한 것은 아니며
설령 실패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그 정신적 가치의 측면에서 충분히 지지받거나 이어받을 부분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새 정부를 만든다는 것은
전 정부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계승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잘못된 부분을 분명 새로 고쳐야할 수도 있으나
의미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적인 계승, 수정보완적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정부론의 기치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부는
설령 무능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투표'의 행위로 충분히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기대를 걸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정부, 흔히 독재 정권은 다릅니다.
만약 그 정부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부이거나
권위적이며, 지속적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습성이 강하다면
그 정부는 초반에 아무리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 할 지라도
결국은 부패하게 됩니다.
권위주의적이면서 부패한 정부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흠결을 숨기려 하고, 자신들의 공을 내세워 어떻게든 포장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부는 권력의 영속화를 통해
자신들이 누리는 부패한 이윤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초반에 성공적인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부패, 폭력, 은폐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 민주주의 폐기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엔
아무리 국민이 투표를 한다고 해도
정권을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 놓이면, 표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폐기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
국민이 다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려 한다면
그 때가서는 인터넷에 올리는 한 줄의 글로도 부족하며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와의 정치적 논쟁으로도 부족하며
투표장에서 투표를 하고 인증하는 행위로도 부족하며
오직 누군가의 피.
그것이 어린 누군가의 피일 수도 있으며
나와 친한 누군가의 피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내 가족의 피일 수도 있으며
나의 피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민주주의 제도는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도의 보장 장치이며
설령 누군가에 의해 실패할 순 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폐기되어선 안된다는 것만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이유로 이름을 자주 바꾸는 모 당은 절대지지하지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