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책은 그냥 이미지 샘플용입니다. 제목이 주는 임팩트는 큰 책이지만, 실제로 본문은 제목의 강렬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주 얕은 지식만을 전달해주고 있어 크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목은 이 시대를 참 잘 대변하는 느낌이라 가져왔습니다.)
전 주호민의 행동이 분명 잘못됐고, 그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요즘 커뮤니티에 불고 있는 낙인 찍기 광풍은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이 한 두번 일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특정 개인의 잘못이 드러나면, 그것을 지옥까지 쫒아가 죽일듯한 기세로.
아니 실제로 사회에서 생활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생각마냥, 아예 매장시키겠다는 어떤 광적인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크게 늘었습니다.
솔직히 전 과거에 잘못한 개인이 제대로된 사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봤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지요. 그러나 사회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사죄를 받아줄 자세가 되어 있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설령 진심어린 사죄라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 특히 인터넷 사회 안에서 사죄란 설령 진정성이 있더라도 무용지물에 가까운 행위가 됐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죄를 받아줄 생각이 없으며, 관용과 용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관용과 이해가 사라진 사회는 경직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보며
이런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협의점에 이를 수 없다고 하죠.
결국 경직성 강한 사회는 양극화된 분열 아래 부러질 수 밖에 없는 불안정성을 보입니다.
이게 단연코 한국에서만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 전 세계가 범인 색출과 낙인 찍기에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분열과 극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미셸 푸코가 말하던 파놉티콘 방식의 감시는 아닙니다.
남의 감시가 무서워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과 다른 양상입니다.
오히려 나의 행동이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사라지고, 적극적으로 타인의 잘못을 발견하여 그것을 고발하는 시대에 가깝다고 봅니다.
서이초 사건에서도 이런 양상을 볼 수 있었는데.
'학부모'라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집단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누군가에 대한 '단죄'에 대해 언급하기 보다는 '교사 인권 회복'에 대한 정책적인 이야기가 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어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나타나자마자, 논쟁의 양상은 '정책 변화'와 '제도 개선'이 아니라 '범인 색출'과 '신상 털기'로 옮아가기 시작했죠.
결국, 인터넷 사회는 확실하게 '처벌할 대상'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처벌한다 하더라도 정책적인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화하는 것이 없을 것인데, 우리는 확실히 책임져줄 '개인'을 항상 색출하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주호민 사건은 정확히 처벌하고 단죄할 개인이란 '대상'이 존재하기에
인터넷에서 더욱 광적인 열풍이 분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호민은 분명 잘못했고,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를 받은 교사의 복권과 특수학교 교사와 교실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지, 주호민이란 인물의 과거 작품과 활동까지 싸그리 끄집어 내어 마치 '분서갱유'하듯 불태워버리고, 앞으로의 활동길을 막아 사회에서 추방해 버리는 것은 과연 문제 해결을 위해 올바른 방식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주호민이 자신의 입장에서 밀어붙인 강고한 주장이 교사의 부당 직위 해제로 이어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라고 봅니다.
인터넷 속 우리는 마치 주호민이 그러한 것처럼 나의 입장에서 나의 정의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누군가를 매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일까요? 결국 이것은 우리가 심판하고자 했던 대상의 잘못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도덕과 정의의 개념에서 우리는 '나'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도덕과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대상은 언제나 '타인'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제외되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도 그러할 겁니다.
사실 도덕과 정의의 관점에서 '나'와 '우리'에 대한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지만, '너'와 '그들'에 대한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상황입니다.
인터넷 사회는 누군가의 죄를 심판한 만큼, 누군가를 많이 죽여왔을 정도로 죄가 많은 공간입니다.
전 과연 인터넷 사회가 그토록 정의로운 공간이었는지 의문을 품곤 합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심판에 의해 죽음까지 이른 생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살했을 때, 대부분의 인터넷 여론은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곤 하죠.
인터넷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인 투사였던 자들이, 사건이 벌어지면 태도를 바꿔 자신이 공격했던 대상의 변호자가 되는 경우도 흔치않게 봐왔습니다. 우리는 대중 집단과 익명성이란 방호막 아래 쉽게 내지르고 쉽게 숨어버리곤 합니다.
어떤 윤리학 책을 보더라도 도덕과 정의관의 관념은 우선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공자왈 맹자왈하던 고전 철학에서나 볼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대부분의 윤리학에서도 가장 기초로 내세우는 토대입니다. '나'의 윤리가 바로 설 때, 비로소 타인의 도덕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인터넷 사회가 그렇게까지 '나'와 '우리'에 대한 윤리와 정의감이 바로 선 사회인지 잘 모르겟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추악한 행태들을 많이 봐왔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관대하게 행동해왔습니다.
주호민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를 단죄하려 하지만, 그 결과로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심판했다는 후련함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주호민의 문제를 그와 친분이 있는 주변인에게까지 연대책임을 지우려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정말 옳은 정의감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사상검증하듯, "당신 저 사람과 친하잖아? 저 사람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표하지 않으면 너도 심판 대상이야!"라고 행동하는 것은 대중 심판이 지나칠 정도로 위험해졌다는 신호라고 봅니다.
전 궁금합니다.
인터넷 사회가, 우리가, 혹은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심판할 정도로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만약 내가 어느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죄를 저질렀을 때, 이 경직된 사회에서 나는 과연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설령 내가 여태까지 죄없이 살아왔다 하더라도, 과연 모든 면에서 타인에게 자신을 공개해도 떳떳할만큼 티없이 맑은 사람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요?
난 "그 사람처럼 유명인이 아니니까 잘못을 저질러도 상관없잖아?"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그것은 더욱 잔인하고 부도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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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정치사회 게시판으로 착각하신 거 같으신데
엄연히 마이피에는 사회&정치&경제를 논할 수 있는 탭이 존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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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있어왔던 탭인데
갑자기 마이피는 그런 기능이 없다고 하는 거 자체가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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