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고 나서야 느낀 것들<-meta />
댁에 보일러는 무탈하십니까? 동파 사고 없습니까? 하! 전 아무 문제없습니다. 제 아무리 춥다 한들 여기는 부산이니까! 영하로 떨어진들 보일러가 터지진 않으니까! 꼬우신가요? 부산으로 이사 오십시오. 물론 이 도시에 안정적인 일자리 따윈 없습니다. (...) ..농담!
아무튼. 이번 추위를 겪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세상을 좁게 보고 있는지 반성했어. (?) 난 평생을 부산에 살았어. 도심 속 화초마냥 곱게 자랐지. 그렇기에 겨울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던 거야.
난 여태 자만에 빠진 신념으로 살아왔어. ..겨울이면, 그 뭐 춥다고! 히터니 보일러를 빵빵 틀어대지? 환경을 위해, 에너지 절약을 위해, 병원 빼고는 난방시설 다 멈춰버려라! 추우면 옷을 더 껴입어! 내복도 입고! ...이렇게 냉소적으로 세상을 비난했다니까.. 정말, 대단한 환경전사 나셨네요..
막상 내 집이 동파 위험에 처하고, 보일러를 돌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어. ..아! 추위는 옷으로만 해결할 수 없구나! 물이 얼어버리는구나! 씻지도, 설거지도, 라면 끓여 먹기도 못하는구나...
...잠깐만, 추위의 무서움을 알아챌 기회는 이전에도 수없이 있었어! ..할머니가 전기난로를 트시고도 손 시려 하셨을 때, 산동네와 달동네 사이사이 황금빛으로 불탄 연탄재를 보았을 때, 그 혁혁한 증거를 보고도 왜 난 몰랐을까... 내 입장만 생각하고, 젊음을 믿었고, 그저 따뜻한 도시가스에 취해있었구나. ...뒤늦게나마 반성합니다..
참, 사람이란 게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체감하는 것 같아. 마치, 방구석 우리는 난민 문제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반면, 정우성 씨는 계란에 바위 치듯 난민구호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물론, 꼭 깊은 공감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너무 깊은 유대 탓에 감정적으로, 혹은 이상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난 세상을 너무 멀리 떨어져 봤어. 야너두? (...)
그러고 보니 남부지방 가뭄도 체감 못하고 있었네? 부산사람인 나조차, 어이! ..하긴, 난 도시인이니까. 낙동강 상류가 말라비틀어진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계속 가뭄을 잊어버려... 이쯤에서 질문, 서울게이들은 남쪽 지역 물부족 사태에 관심은 가? 가뭄인지도 몰랐지? 그치? 이 차가운 놈들, 동파로 수도밸브 다 터져라. (짝!) ..라고 내 속에 흑염룡이 외쳤습니다. 전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럼요. 천사밖에 없는 걸.
아무튼... 자각하려고 해. 깨어 있으려 해. 모든 세상을 꿰뚫어 보진 못하더라도, 최소 인간으로서 선은 지킬 만큼은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어... 그러려면 더 깊게 생각해야 할까나. 더 넓게 바라봐야 할까나. 어렵구나... 에잇! 쉬운 것부터 할래! 일단 물부터 아껴 쓴다! 씻지 않습니다! 오케이! (...)
아무튼. 여러분의 화로는 안녕하십니까? 논과 밭은 메마르지 않았습니까? 멀리 부산 도시인이 부끄럽게나마 안부 인사를 건네 봅니다. 모두 무탈하시고, 건강하시고, 돈 쓸 일 없길 바라면서, 마무리 곡은, 다크소울 OST, 장작의 왕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