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a1m2에 실망한 이유
어제 소니가 a1m2를 발표했어.
a9m3의 외형을 이어받았고, a9m3에 들어간 대부분의 기능을 이어받았고, 분명 전작 a1을 뛰어넘는 카메라야. 하지만 나는 a1m2에 감동하지 않았어. 오히려 가슴 아플 만큼 실망했지.
a1이 2021년 1월에 나왔고, 그 후 4년이 흐른 지금 a1m2가 나왔어. 4년이면 RTX3090이 5090으로 바뀐 시간이고, 스냅드래곤865가 스냅드래곤 엘리트로 바뀐 시간이고, M1 아이패드 프로가 M4 아이패드 프로로 바뀐 시간이고, 내 검은 머리가 하얀 새치로 덮일 시간이고, ...그런데 소니는 뭐해서! 근본적인 발전일랑 없는 a1m2를 내놨단 말인가!
첫째, 센서. a1의 IMX610 센서를 답습했다.
전작과 동일한 5천만 화소, 동일한 15스탑 다이나믹 레인지, 동일한 1/200초 플래시 동조 속도(전자셔터), 동일 동일, 발전이 없다. 2024년에 90나노 공정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사골 육수도 적당히 우려야지!
둘째, 프로세서. BIONZ XR을 답습했다.
BIONZ XR은 2020년 10월에 a7s3와 함께 세상에 등장했고, 역시 4년의 시간이 흘렀어. 이제 근본적으로 프로세서를 뒤엎어야지. 설계 뒤엎고, 공정 뒤엎고, 그래서 저전력 고성능을 이룩해야지!
셋째, 메모리 슬롯, CFE 2.0을 답습했다.
‘소니 알파 루머스’에서 전달하길, a1m2는 CFE 4.0이 들어갈 것이라 했어. 응, 헛소문이었죠! ..나는 소문을 믿고 기존 CFE 2.0 카드를 중고로 처분했어. 대신 알리에서 EXASCEND CFE 4.0 메모리카드를 눈여겨보고 있었지. 난 진심이었다고. ..그런데 현실은 2.0 답습! 내 괜히 CFE 카드 팔았네!
이래서 내가 a1m2에 실망한 거야. 센서, 프로세서, 메모리카드 대역폭 개선 없는 후속작이라니, 이게 말이나 될 소리냐? 그야 파지부가 달라지고, C5 버튼이 들어가고, 여러 소프트웨어적 기능이 추가되고, 하지만 이건 ‘근본’이 아니잖아?
이건 마치, 컴퓨터 바꾼다면서 CPU, 그래픽카드, SSD는 그대로 둔 꼴이잖아? 바꾼 거라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이게 무슨 업그레이드야! ...물론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를 바꾸면 사용성이 확 달라지긴 하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근본! 근원! 이제야 권학봉 님이 왜 a7R5를 a7R4의 ‘게걸음’에 불과하다고 통탄하신지 뼈저리게 알겠어! 센서가 바뀌지 않았는데!
그래도 a7R5는 프로세서와 메모리카드 대역폭은 개선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흥분했습니다. 지금부터는 a1m2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겠습니다. 먼저 AI AF. ...방금했던 말 취소하겠습니다. 난 AI AF에 감탄한 적이 없어. 그야 AI AF 카메라들이 초점을 더 잘 잡아. 그러나 그 수준이 애매하거든.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기존 카메라도 초점을 잘 잡고, 그렇다고 극한의 상황에서는 AI AF도 초점을 놓치고, 이러니 난 AI AF에 별 감흥을 못 느꼈어. a9m3조차 천천히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을 추적 중에 놓쳐버리기까지 했으니까. (부산 소니센터에서 실험)
다음, 전작보다 3스탑 가까이 개선된 손떨방. 이것도 애매한 것이, 사진을 확대하지 않으면 괜찮아. 그런데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떨린 사진은 떨렸거든. 내가 a7R5로 얼마나 손떨방을 실험했는지 몰라. ...참, 내가 너무 소니를 비관적으로 평가하나?
끝으로 4축 멀티앵글 LCD.
4축 멀티앵글 LCD를 반기는 분들이 많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못 받아들이겠다! 왜 스위블인가! 긴박한 순간에 언제 LCD를 옆으로 빼고, 돌리고, 그러다 접촉면 부러뜨려 먹고! a1으로 셀카 찍을 거 아니잖아? 브이로그 찍을 거 아니잖아!
왜 틸트로 안 만들어주는가! 니콘처럼! 후지처럼!
니콘 Z9 틸트 영상을 보니 그나마 속이 가라앉네.
몰라, 내가 영상을 안 찍어서 스위블을 평가절하 하나? ...아닌데, 영상이 주력이라 한들 스위블이 불편할 것 같은데. 스위블 쓰려면 모니터가 옆면 단자들을 가릴 거고, 3.2인치 조박만한 모니터로 화면 확인이 힘들 거고, 이럴 바에 별도의 외부 모니터를 부착하는 편이 낫지 않나? (...) 아무튼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적어도 사진 위주의 카메라는 틸트를 고수해 달라!
끝으로 펌웨어. 마침 ‘제럴드 언던’이 소니의 ‘나 몰라라’ 펌웨어 정책에 대해 비판했더군. 영상 14분부터.
속이 다 시원하다! 소니는 자사 기함급 카메라조차 펌웨어를 건성으로 치부해. 응당 넣어줄 수 있는 기능을 안 넣어주고, 문제를 방치하고, 듣고 있나 소니! 니콘 Z9이 펌웨어 5.0까지 올라간 마당에 소니는 대체 뭐하고 있었나! 소니가 양심이 있으면 a1에 소프트스킨, 초점 브래킷, 포커스맵 등을 모조리 넣어줘야 한다.
아참, 내가 a1m2에 실망한 점 하나 더 있어. 바로 a1 문장.
기존 a1은 금장 도금인 반면, a1m2는 평범한 은색이야. 이런 사소한 차이에 장비가는 뭉클합니다. a1에는 개발진들의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니? 부품 하나하나 애정과 정성이 들어간 느낌이잖아? 그런데 a1m2는, 글쎄다..
내가 a1m2 개발진이라면 슬플 것 같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마저 들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센서를 바꾸고, 프로세서를 바꾸고, 메인보드를 바꾸고, a9m3 이상의 외형을 갖추고, 기능 제약 다 풀고, 12bit RAW 동영상 녹화 풀고, 더해 안정적인 펌웨어까지 약속한 a1m2를 만들고 싶다만, ...윗선에서 막았겠지? 원가절감이다, 이익 극대화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전설은 로망에서 피어나건만.
이상, 안타깝고 아쉬워서 말이 길었습니다. ...이 적적한 기분을 a1 영상을 보며 풀겠습니다. 내 장비혼을 고동치게 만들었던 하나의 카메라, The ONE. a1.
Alpha 1 II with resolution, speed and AI subject recognition | Sony United Kingdom
untitled (a1, a1m2 센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