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인 토니 쟈는 11살 때부터 새로운 성룡을 꿈꿨고 때로 끼니까지 걸러 가면서 무술 연습에 몰두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무술감독이자 태국 액션계의 거물인 파나 리티크라이를 만나게 되었다. 토니 쟈는 파나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긴 했지만 3년 동안 스탭들의 시중을 드는 잡부로 일했다. 그러나 그의 무술실력과 성실함을 높이 산 파나에 의해 어린 나이에 스턴트맨을 맡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 무에타이, 검술 및 쿵푸등 다양한 무예들을 섭렵했다.
일과 학업, 무술연마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대학에서 배운 전통 태국무술과 영화의 예술적 요소를 결합시켜 무에타이를 재해석하게 되었고 곧 팀을 결성하여 태국 동북부 지역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는 검술팀을 만들어 의장으로 일했으며 무술 장학생으로 뽑혀 교환학생 자격으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방콕 체육 대학 시절에는 봉술, 검술, 체조, 트랙과 필드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B급 액션 영화 <모탈컴뱃 2>에서의 스턴트맨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 일은 토니 쟈로 하여금 다른 많은 영화에서 대역 배우로 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나 리티크라이가 그를 위한 데모 필름을 제작하였으며 결국 토니 쟈는 영화 제작자 프라차야 핀카엡에게 발탁되어 <옹박>의 주연을 맡으며 액션 영화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옹박> 한편으로 아시아 액션의 판도가 홍콩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듯도 보였고 성룡,이연걸을 잇는 세계적인 액션스타가 금방 될듯도 보였다. 견자단이 충격을 받아서 이렇게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않되겠다는 생각으로 <살파랑>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뤽베송이 러브 콜을 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엄청난 기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러브콜을 보냈던 뤽 베송과의 작업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고 함량 미달의 후속작품과 액션연기 이외의 연기에서의 미숙함으로 점점 바람은 사그러 들었다. 자신이 제작하는 <옹박2>의 제작비가 모자라서 전기.수도가 끝기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촬영장에서 사라져 제작이 지연되기도 했다.
혹자는 전형적인 태국사람의 외모가 그의 발을 잡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악재를 넘어서 <옹박>으로 보여줬던 충격을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