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전 명칭이 민비/ 대한제국 이후 추존된 이름이 명성황후 둘 중 어느 것을 사용할 것인가
일본이 대한제국을 인정하지 않기위해, 혹은 한민족을 낮춰봐서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부르는 것 자체는 낭설
하지만 민비와 명성황후 중 제대로된 호칭은 최종적으로 추존된 이름인 명성황후가 맞음
역사책 등에선 '당시 명성황후는..' 이라고 서술하면 존재도 하지 않은 사람이 등장하게 되므로 '당시 민비는...' 이라고 서술하는게 정확
하지만 이렇게 하면 수많은 이름이 겹친다는 것과 역사책의 서술과 해설의 이름에 차이가 나는 문제때문에 추존된 이름으로 통일
ex. 숙종대의 민비-고종대의 민비 /숙종대의 인현왕후-고종대의 명성황후
2. 민비는 정말로 나라를 말아먹었는가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2078/read?articleId=20256338&nil_id=13&objCate1=497&bbsId=G005&t__nil_ruliweb=best&itemId=143&t__nil_ruliweb=best&nil_id=13
특정 사실 몇개로 그 사람을 XX왕이나 쓰X기로 취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그냥 가져왔음
3. 고종은 민비에 휘둘려 무능했는가
능력있는 인물이었음 어릴때부터 아버지에 시달려 의지박약이거나 선택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이미지는 잘못된 것
하지만 그건 행정업무보다는 개인치부에 관해서 능력이 있다는 것임
갑신정변 정강을 보면 일체의 재정을 호조가 관리한다 라고 되어있음
왜냐? 국가의 지조수입을 호조와 왕실 내탕금 두개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왕의 이름으로 라는 이유로 내탕금이 점점 증가해 호조에 넘어갈 돈이 줄었고 업무 마비까지 올 정도가 됨
갑신정변이 실패했음에도 갑오개혁때 일체의 재정을 탁지아문이 관리하게 된 것도 이때문임
(당시 명성황후와 뮐렌도르프가 은본위제를 실시하기 위해 차관 얻으려던 김옥균을 물먹인것도 가관)
뭐 이것도 결국 대한제국이 내탕금 증액하고 외국무역의 주 수입인 홍삼판매를 황실에서 관리하면서 유명무실화
4. 고종과 명성황후는 일제의 의해서 격하되었는가
어느정도는 사실. 식민지 국가의 왕실을 격하해 식민지배가 합당했다는 서술은 어느 제국주의 국가에나 등장
하지만 고종과 민비의 당시 행태를 보았을때 고종과 민비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는 것은 사실
이는 순종도 다를 바 없음은 물론이고(백성들은 독립운동하고있는데 혼자 일제에 생일'잔치'상 받아 쳐먹....)
5. 왜 명성황후는 비운의 국모가 되었는가(나는 이 글을 왜 썼는가)
이렇게 악행이 자자한 인물이 왜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키다가 일제에 잔혹하게 죽은 비운의 국모가 되었는가
이는 이미연이 꽃단장하고 나오는 드라마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꽤 이전부터 등장하던 사고방식이다.
바로 박정희시대.
수출 중심의 경제로 전환되고 외국의 차관도입, 서양 따라잡기가 국가의 경제발전 모토가 되면서 개방이라는 좋은 예시를 들먹일 필요가 생김 그래서 찾아낸게 명성황후
혼란한 시기에 개방으로 리드하여 국가를 개발시키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한말 구미세력의 등장과 제국주의 침탈 속 수많은 국가와 통교를 시작한 명성황후와 대응시킨 것
그 결과 흥선대원군은 삼정을 개혁하고 외척정치를 해결했지만 통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나라를 걸어잠궈 조선을 100년 뒤로 퇴보시킨 국제정세에 무지한 인물이 되었고
명성황후는 수많은 가족적 이익을 해먹었지만 각종 외국과의 다양한 교류(중국, 미국, 러시아)때문에 조선을 개방으로 이끈 여성형 리더이지만 일제의한 잔혹함때문에 죽임당한 비운의 국모가 됨
결론: 베스트 글 올라온거보고 급하게 썼지만 명성황후는 개X기(개인적으론 민비라고 부르고 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