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에 온지도 오늘로 삼일째.
첫날 병실에 왔을때 이미 병실엔 백발이 성성하고 검버섯이 얼굴에 많이 핀 제일 나이 많아보이는 어르신.
6-70이 막 되 보이는 비교적 젊은 어르신.
여성 간병인에 의존하는 거동 불편하신 어르신.
저보다 젊어보이는데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온 환자
이렇게 4명이 먼저 병실에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합류하게 된 저는 별로 특별할 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첫 밤을 맞이하게 되었을때,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격게 되었습니다.
잠을 자던 중, 요란하고 경박한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백발이 성성하고 검버섯이 가득한 그 어르신이
지팡이로 제 침대를 마구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선 아무말도 않고 어둠속에 가만히 서서 절 계속 노려보시기에
무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한 저는 대뜸 말했습니다.
"무슨일이세요? 무슨일이시냐구요."
그러자 어르신도 소리를 지르십니다.
"코골지마! 코골지 말란말야!!"
첫 날 밤부터 당혹스러운 일을 당하고 나서도 그 다음날 아침에도 어르신은 계속 저를 쳐다보며 눈을 흘깁니다.
침대 배치도 서로가 마주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고 불편함은 더해가기에
내심 '방을 바꿔달라고 해야하나','내가 코를 좀 골았기로소니 옆사람도 괜찮다고 말을 하는데 너무 하신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며 급기야 '오늘밤에도 똑같이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하는 욱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만
병실에서 많은게 시간이고 할게 생각뿐인지라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중이 나가는 편이라 저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울프맨은 코를 정말 심하게 곤다] 라며 학을 떼곤 합니다.
원룸에서 자취할때 같이 지냈던 뉴막내도 '저도 코 많이 곱니다' 라고 했지만 하룻밤만에 '대리님 코 장난아니시네요' 라며 백기를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저도 억울한면은 있었습니다.
이렇게 코를 고는걸 스스로도 알기에 타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될때면 무조건 맨 마지막에 잠을 청합니다.
그날도 새벽 3시에 다들 잠든걸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고 4시에 봉변을 당했습니다.
나도 나름 배려하고 노력했는데 왜 알아주지 못하나 하고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생각끝에 문제는 나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실의 어르신들은 최소 몇달 길게는 년단위로 이곳에 계시는 장기 환자분들이시고 -집은 따로 계시겠지만- 이제 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생활을 보내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 그분들의 삶에 저는 불쑥 나타난 굴러온 존재입니다.
평온한 일상을 영유해오던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한것도 나고 분란을 일으키게 된 것도 나.
함께하는 집단생활에 서로 맞추어 생활해야하는 법인데 말이죠.
어르신의 입장에선 안그래도 잠을 잘 못이루고, 가까스로 드는 잠도 깨우는 제가 병실에 큰 골칫거리일 것이고 가장 연장자로서 한마디 해야한다. 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엔 자신의 결점을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날 어르신에게 품었던 서운했던 감정을 털고, 그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서운한 감정 자체를 갖질 말았어야 했는데, 이기적으로 생각했던거였죠.
아직도 멀었습니다. 아직도
오늘도 아침을 먹고 보행기에 의존해서-필요없다고 극구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대여하신- 병실이 있는 층을 돕니다.
첫날엔 다른 병실 환자들과 간병인들을 보고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오늘은 인사를 합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돈 안드는건 많이 할 수록 좋다.'
병원에서 드물게 젊은 사람이 인사해서인지 어르신들 얼굴에 미소가 피어납니다.
따스함과 따스함이 미소로 전해집니다.
앞으로 가능하면 계속해서 인사를 하고 다닐 생각입니다.
짧게 있을 한달이지만
'젊은놈이 눈매 사납게 치켜뜨고 다니더라' 라는 말로 남고 싶진 않으니까요
저런 돌발상황에서 경험해 보면 그게 막상 쉽지 않더라구요 ㅠㅠ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