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초, 패미니즘과 질주하다.
물과 기름이 절대 권력의 원천이 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회에서 맥스는 방향성을 상실한 유령과 같은 존재이다. 반복되는 혼팅(haunting)과 함께 밀려오는 죄책감만이 그의 삶을 지탱할 뿐,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원동은 이미 예전에 지인의 죽음과 함께 묻어버렸다. 핸들 없이 질주하는 8기통 엔진의 머슬카. 주인공의 외형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1980년대의 횡행했던 마초 영화와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가족과 가치의 수호’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전반적인 문법이었던 여타 영화와 달리, 매드맥스는 ‘남자가 여자를 보호한다.’는 외형이 동일할 뿐, 그 남자다움은 영화가 지향하는 목적이 아니라 단지 사건의 중첩 혹은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매드맥스는 삭막한 세상에서 남성이 살아가기 위해 취해야할 정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여성을 보호하고 지킨다. 그리고 여성은 스스로 일어서서 싸운다.’라 평하며 이번 영화도 남성 위주의 관점을 유지한 채 여성주의를 끌어안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각의 차이인 듯하다.
이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성별의 선악구분이 굉장히 명확하다. 올해 최고의 페미니즘 영화라 평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구도에 영화 전개의 다수를 맡긴다. 새로운 여성상으로 돋보이는 ‘퓨리오사’부터 임모탄의 번식도구로 사육당하길 거부하는 여성들, 그리고 이들을 조력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계집단의 할머니들까지. 영화는 모성의 회복이 사회의 구원임을 강조한다. ‘엄마의 우유’가 젖줄로서 내내 부각되는 것 또한 그렇다.
이에 반해 ‘임모탄’으로 정점을 찍는 남성성은 폭압적인 지배계급이자 불완전한 ‘주류’이다. 영화 내내 남성은 핏줄의 영속에만 매달린다. 공동체의 그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여성들을 뒤쫓는 주된 까닭도 여성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여성이 지닌 ‘자손’에 머문다. 그 핏줄에 대한 집착은 남성 자체의 본능이기도 하나, 이 지점에서 감독은 또 다른 시선을 둔다. 임모탄의 집단, ‘워보이’의 지배계층은 하나같이 모조리 장애를 지니고 있다. 아기같이 왜소한 눈, 비만으로 얼룩진 발, 건장한 체구지만 지적능력에 의심이 가는 근육 등. 이와 같은 시각의 정점은, 죽은 아이에 대한 외침으로 결말이 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완벽한 남성은 모체와 함께 죽어버린 '태아'이다. 거기에다 이 완벽한 남성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든 ‘이름’을 남기려는 외침으로 마무리 된다. 너무도 처참하게 비루해 내 안의 가부장을 한번 게워낸 것 같은 역설적인 개운함마저 느껴진다. 남성은 내세의 천국을 갈망하고 여성은 현세에 낙원을 이루려고 하는 지향의 차이도 이채롭다.
아무래도 올 한해는 여성이 강조되는 해라 봐야 될 것 같다. 지금 미국의 박스 오피스에선 여성 중창단의 이야기를 다룬 ‘피치 퍼펙트2’가 1위이고, 그 뒤를 따르는 작품이 바로 ‘매드맥스’이다. 슈퍼맨의 다른 버전 ‘슈퍼 걸’이 드라마에서 화제로 오르는 것도 무관치 않다. 이는 사회전반에 대한 해석으로도 이어지는데, 미국 민주당 유력주자인 힐러리가 대세를 넘어 시대 아이콘으로 굳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공화당내 선거 브레인들이 여성주의 문화 확대를 경계한다는 후문이 그리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도 또 다른 관점으로 이해의 재미를 준다.
물론, 이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페미니즘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여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은 시사회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밀러 감독이 지닌 인간에 대한 이해 때문에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에 영화가 됐다.”고 말했다. 남성성을 공격성으로, 여성성을 치유로 대척점을 두는 고착화된 이분법적 구조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이어온 가부장적 사회(가부장적 사회가 남성 사회와 등치되지 않는다.)엔 분명 문제가 있다. 성적 패러다임의 전복(顚覆)에 항상 이유와 의미를 두고 싶은 건 이 때문일 것이다.
2. 한도를 넘나든 스타일, 그리고 속도.
미친 영화란 표현. 자주 쓰게 된다. 우리는. 그런데 제목부터 미쳐버린 이 영화는 이변이 없는 이상 올 한 해 가장 확고하게 미쳐버린 작품으로 기억되리라 본다. 펄떡 뛰는 날 것의 스타일로서.
극 초반은 괴랄한 공포 영화의 클리세를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한바탕 액션 뒤에 암흑과 기괴한 모습의 좀비 같은 사람들, 그리고 맥스의 등에 새겨지는 끔찍한 문구와 끓인 쇳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낙인은 관객을 불쾌감의 가운데로 몰아세운다. 마치 필름 사이사이를 난도질 한 것처럼 끊어지는 컷 신과 신 사이를 비집고 득달같이 쏟아지는 헤비메탈의 향연은 탈주의 긴박감을 온몸으로 체험케 한다. 황량한 사막과 생존만이 그득한 풍경은 덤으로 두고 말이다.
매드맥스는 굉장한 속도감을 영화 내내 유지한다. 내달린다는 묘사가 딱 들어맞는 건, 단지 ‘카체이싱’을 소재로 써서 그렇다기보다, 배경 구성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매드맥스는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나 액션의 전개는 4차선 고속도로에서 벌어지듯 한정되어 있다. 퓨리오사의 큰 전투차량을 중심으로 폭력의 초점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 위에서 벌어지고 그 위에서 떨어진다. 이와 같은 제한은 포커스의 집중을 낳는데, 준비된 장비에 비해 자잘한 액션 컷이 돋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사건 전개가 단막극의 연속으로 이어져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흐름을 가지고 결말을 향해 완만한 상승곡선, 그리고 하강 곡선을 그린다기 보다, 톱날을 보듯 한 사건의 인과관계 및 기승전결이 15분 내로 완성되어 끝을 맺는다. 이 시간 흐름에 맞춰 장면까지 전환된다. 요약한다면, 이 속도감은 장소에 제약을 두고 시간을 분절했기에 가능했다.
이와 같은 속도감은 내러티브에 대한 보완도 가능케 한다. 전작과 별개의 영화임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에 대한 서설이 작품의 마침표까지 없다는 건 여타 다른 작품이라면 약점으로 지적될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선 그렇지 않다. 애당초 감독의 의도 자체가 내러티브의 단순함을 사건의 연속으로 밀어버리려는 뚝심에 있어 보인다.
효과음과 음악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가 없다. 전장의 북소리도 북소리거니와 기름 불꽃과 함께 기타를 연주하는 붉은 옷의 워보이는 주인공 이상의 인상을 남긴다. 기괴한 캐릭터들이 그야말로 장면과 더불어 액션에 녹아나는 연출을 보면, 영화 자체가 헤비메탈 뮤직비디오의 연속으로 보일 지경이다. 무엇보다 음향상이 기대된다.
ps. 에구구... 글쓰기가 갈 수록 힘들어집니다. 확실히 연습하면 나아지고 게을리하면 떨어지네요. 깊은 밤, 좋은 밤 되세요.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