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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참을 수 있는 영웅의 가벼움. [데드풀] (5)
2016/02/25 PM 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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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Deadpool. 2016.
영화엔 몇 가지 공식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카메라의 부재이죠. 영화의 전개에 있어 일반적인 카메라의 역할은 훔쳐보기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건을 들여다보는 테두리를 지움으로서 관객에게 극을 극이 아닌 현실로 체험케 유도합니다. 특히나 생생한 장면의 연출에서는 이 부분이 더욱 중요한데요. 레버넌트의 경우, 주인공에 대한 극단적인 클로즈업 구도가 자주 쓰였는데, 그 와중에 그만 디카프리오의 입김이 카메라 렌즈에 서렸습니다. 이를 두고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의 의도이냐, 부주의냐의 구설수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만큼 훔쳐보기는 연출의 기본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데드풀은 이 기본을 산산이 조각내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향한 수다가 끊이지 않을 정도죠. 어떻게 보면 방백이라 할 수 있는데요, 방백은 어디까지나 영화보다 연극적인 요소에 가깝습니다. 물론 연극적 요소가 두드러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화 자체가 특색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가 이제껏 드물었던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표현 방식은 '어바웃 타임'처럼 대개 주인공의 나래이션 등으로 은근하고 완곡했지, 이 영화처럼 노골적으로 그리고 그 뻔뻔함을 캐릭터와 결부시켜 늘어놓는 영화는 확실히 드뭅니다. 관객이 당황할 정도의 낯짝 두꺼움. 이 영화만의 유별난 개성인 셈이죠.
이 뺀질함은 영화의 도입부터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초반 인트로를 장식하는 CG팀의 자뻑 개그와 감독에 대한 장난기 어린 빈정거림은 관객에게 관람태도에 대한 분명한 선을 긋게 만듭니다. 괜히 감상한다고 진지해지지 말고 콜라와 팝콘 옆에 끼고 마구 빨고 씹으며 마냥 낄낄대며 웃으라고요. 하긴 아무리 엄격한 평론가라 할지라도 극의 캐릭터가 직접 작품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비아냥대며 논평하는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더욱이 이 유들유들함이 캐릭터 구성 자체에서 나오는 힘이고 그 힘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면 평론가적 안목은 아예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부분에 불과하게 됩니다.
이런 데드풀의 특성은 캐릭터의 조형에서 가장 빛이 납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기존의 마블 영화와 명확히 다릅니다. 이제까지 마블에서 전통적으로 보여준 영웅상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갈망과 영웅적 힘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발휘하기에 내외적 제약이 많은 갈등의 공존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거기에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반동인물에 대해서도 합리와 타당성을 부여해 누구라도 쉽게 잣대 세우기 어려운 ‘정의의 다양성’을 덧대었죠.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혼돈’입니다. 이러한 설정에 평론가들은 냉전 이후 단극에서 다극화된 사회의 헐리우드적 반영이라 그 세련됨에 높은 평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2008년에 개봉한 아이언맨 1편에서 비롯된 거라 근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지겨울 때도 되었죠.
영화에서 나타난 데드풀의 자기중심적 가치관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우유부단했던 히어로의 태도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를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먼치킨이 먼치킨답지 못함을 개탄한 먼치킨이 나온 셈이죠. 주어진 환경이나 당면한 고민을 그대로 받아치거나 무시하는 헐리우드 쿨가이. 제작비의 한계를 자학 개그로 받아치는 끝도 모를 당당함. 나쁜 놈과 착한 놈이 분명한 선악구조. 인트로 자막부터 던지는 빈정거림의 돌직구. 히어로 영화라면 예상 가능한 규모에 대한 기대 심리를 유머로서 뒤집는 반전의 쾌감. 지금 보이는 대중의 환호와 충성도는 사전 기획의 승리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겁니다. 이토록 통쾌한 마블 영화는 앞으로도 데드풀 속편을 제외하고는 보기 힘들지 싶습니다.
하지만 그 짜릿함의 사이사이로 캐릭터의 강렬함에도 가리기 어려운 어슷함도 보입니다. 시리즈의 시작으로는 보기 어려운 불친절함이 대표적입니다. 데드풀이 관객을 직면하는 까닭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영화에선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만화로 인해 마블 캐릭터가 충분히 익숙한 북미 관객을 제외하고는 ‘왜?’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개그로 꽉 찬 대사는 상황과 엇나가는 경우가 많아 어떤 경우엔 강박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한편으로 순애보적인 러브 스토리이고 이 러브스토리 사이사이에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될 수 있는 장면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너절한 개그로 전복시키려 애를 씁니다. 충성도 높은 관객들이 ‘그래서 이게 데드풀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데드풀의 시도 때도 없는 개그는 캐릭터를 입체화하는 게 아니라 되려 평면적으로 눌러 놓습니다. 뭐랄까. ‘기승전OOO’처럼 깔때기의 끝부분엔 모두 화장실 유머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 되었고 제일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물량의 부족을 액션의 합으로 때운 듯한 시퀀스나 아직까지는 부족한 팀으로서의 ‘매력’도 한 두끝 정도는 모자란 부분이었습니다. (보좌역인 흑인 아주머니의 경우 극 중에서 알프레드 집사라고까지 비유됨에도 불구하고 관객 입장에선 한 때 웃음으로 소모되며 친구인 위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보입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내재된 뻔뻔함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이 캐릭터임을 인지함으로서 등장하는 여러 까메오. 특히 리암 니슨이나 172시간, 그리고 엑스맨의 부재에 대한 반문 등은 훌륭한 꽁트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방 분실이나 전화 불통도 웃음의 소재로서 한 몫 하죠. 또한 번역에도 눈길이 갔는데요. 노골적인 욕설이나 성적 표현이 시시 때때로 등장하기에 힘든 과정일거라 예상 되었는데요. 역자가 수위조절의 묘미를 보여줄 거라 공언함에 걸맞게 적당히 잘 버틴 느낌입니다. 거친 맛은 충분히 와 닿았습니다. 합격점을 줄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줄인다면, ‘사이다 탄 히어로 무비’라 평할 수 있겠습니다. 기존 히어로 무비가 고민했던 지점을 말 그대로 날려 버렸습니다. 고민거리로 치부하지조차 않았죠.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이 특유의 쾌함 때문에 많이 가벼울 순 있겠습니다. 그러나 애초 기획의도가 그런 영화에 대해 진지함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전개의 깊이는 한 켠에 접어두고 전개의 속도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겠죠. 결국 이 영화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건 깃털 같은 가벼움입니다. 기획의도는 전혀 다릅니다만, 게임 '플라워'의 속도감에 대한 인상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퍼질러 앉아 즐기세요. VR로 만들어진 4D 롤러코스터가 아마 이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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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쓰지 않을 수록 쓰기가 어려워지네요. 게으름을 탓할 수 밖에 없지 싶습니다. 다들 즐거운 오후 되셔요. _(_.,_)_
목군 Info 2016/02/25 AM 02:20
잘읽었습니다. 오늘 보고 왔는데, 인트로부터 디스하는 대사여서 아예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을 놓고 봐버린거 같아요.
그래도 글을 읽고 나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첫 편치고는 나름 만족한 결과물이 나온거 같아 좋더군요.
무엇보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나오는 히어로 무비중에 하나는 건졌다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 스탠리옹의 변신도 나름 놀라웠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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