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사로 진급할 때 쯤 우리 대대 인사담당관으로 온 원사님은
경력이 조금 독특했다.
원래는 육사 생도였는데
아들이 사관생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
도포에 갓 쓴 차림으로 학교를 찾아와
"문관 가문에서 군인을 하겠다니 말이 되는 소리더냐!"
라고 하시며 끌고가는 바람에 퇴교 조치됐다고.
그 반발로 결국 부사관으로 입대.
한미연합사에서 근무하며 원사까지 진급했는데
군생활의 유일한 미련이 GOP 근무를 못 해 본 것이란다.
그래서 GOP 사단으로 보내달라 해서 21사단으로 오게 됐는데
하필 당시 행정부사단장이 육사 동기라,
괜히 고생하지 말고 예비 연대에서 편히 살다 가라고 배려(?)한 게
우리 대대로 온 것이었다.
얼마 후에 연대장 이취임식이 있었는데 갈 생각을 안 하길래
"담당관님도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인마, 선배가 후배한테 가서 인사하는 게 어느 나라 법도야? 후배가 와서 인사를 해야지."
알고 보니 신임 연대장이 육사 1년 후배란다.
설마 했는데 정말 연대장이 찾아오더라.
명목 상으로야 대대 시찰이었으나, 내내 인사과에서 수다만 떨고 갔는데 모를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다른 대대는 가지도 않았다.
듣자니 한미연합사 근무 시절에 미군에서 은성 훈장인가도 받았단다.
표창장은 줘도 안 가진다고. 너무 많이 받아서 서류에 쓰기도 귀찮단다.
그러고보면 부대마크 위 아래로 HALO 같은, 처음 보는 표장도 달려 있는 양반이었다.
내가 슬슬 말년 포스를 풍길 때 쯤 이 양반이 군에 대한 지론을 펼친 적이 있는데 대강 이러했다.
우리나라 군대가 결국 젊은 애들 감옥 보낸다고 협박해서 끌고 온 거 아니냐.
근데 막상 와 보니 월급은 쥐 좆물만큼도 안 되고 전역해도 뭔 보상이 없어.
그러니 의욕이 생길 리가 있나.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다 지 전역할 날만 세고 있지.
간부는 다르냐?
육식바나나 너 이 새끼도 똑같이 전역할 날 세고 있지, 안 그래?
장기 복무하는 놈들은 전역할 날은 안 세도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이 생각 뿐이고.
그러니 전투력이 향상될 수가 있나.
모티베이션이 없잖아, 모티베이션이.
그나마 갈굼 당하기 싫다, 이거 하나로 훈련하는 거잖아.
근데 봐라, 징병제라도 만약에 월급을 말이야,
이등병 만원, 일병 5만원, 상병 10만원, 병장 20만원,
이래 놓고 진급심사만 규정대로 제대로 해 봐.
(참고로 병장 월급이 2만 5천원이던 시절)
애들이 진급하려고 기를 쓰고 훈련할 걸?
지금은 진급심사도 의미 없고 때 되면 다 진급 시키잖아.
간부가 모처럼 의욕 내서 제대로 하려 하면 윗대가리한테 욕이나 먹고 말이야.
육식바나나 니처럼, 안 그냐?
(내가 대리 소대장하던 시절 규정대로 이등병 하나 진급누락시켰다가
연대로 소환당해 연대장에게 다이렉트로 갈굼 먹은 일이 있었다.)
근데 잘 하는 놈은 빨리 진급시켜서 돈이라도 좀 더 만지게 해 주고
고문관 새끼, 구타 가혹행위하는 새끼들 강등시켜서 월급도 같이 깎고 이래 봐라.
전투력 향상되는 거 한 순간이야.
동기 부여를 하려면 이렇게 긍정적인 요소로 해야지
뭔 구타 가혹행위가 필요악이니 어쩌니, 그게 개소리지, 개소리야.
뭐 이런 식이었다.
현실성은 둘째치고 일단 이론은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결국 결론은
"야, 난 전역하면 정치 할 건데, 그 때 바나나 너 보좌관으로 쓸 테니까
전역하더라도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공부나 하고 있어. 알겠냐?"
라고 한 양반이
내가 전역한지 10년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
전역하더라도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공부나 하고 있어. 알겠냐?"
라고 한 양반이
내가 전역한지 10년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
아직 그 분이 정치 쪽으로 진출 못하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