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젤린스키에 대한 평가가 이재명 후보의 토론회때의 코미디언 출신의 초보 정치 지도자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때문에 진보층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다행히 이재명 후보는 전쟁 발발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은 아니라며,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었던 발언에 대해 사과하여 논란을 종결시켰다.
나는 이재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재명의 발언 맥락상 취지에 공감하는 입장이다. 특히 전쟁 발발의 책임 유무와 별개로 전쟁을 외교적 해결방안으로 미리 막지 못했다는 점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 이재명 후보의 지적은 옳다고 본다.
설사 그부분이 이재명의 실언이라고 하더라도, 윤석렬이 토론회에서 한 수많은 망언과 비교해보면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우크라이나 정치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것이며, 토론회에서 이슈가 되지 않았다면 진보 보수 상관없이 젤린스키를 코미디언 출신의 무능한 대통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업보 정도로 다들 기억했을 것이다.
다만 한국 대선과 별개로 젤린스키라는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면
일단 전쟁 발발 직전에서부터 발발 이후까지 그의 지도력은 합격점을 줘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그는 망명을 권유한 미국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가 이미 우크라이나를 떠났다는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에 맞서 바로 키에프 시내를 배경으로 그의 측근들과 같이 인증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다.
이 동영상이 미리 녹화된 것이라는 러시아의 프로파간다가 시작되자 바로 키에프 시내를 산책하며,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실시간 방송을 하여 아예 논란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그가 정치초보이면서 외교를 해본적 없는 최측근을 주요 요직에 기용한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었던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부 장관은 EU 외무부 장관 하나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를 상대로 swift 국제 통화 결제망에서 퇴출시키는 제재를 EU의 제재안에 포함시키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스위프트 제재에 반대한 국가는 이탈리아, 키프러스, 헝가리, 독일이었는데, 쿨레바 장관은 하나씩 설득하여 결국 가장 완강했던 독일 마저 제재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할 스위프트 제재는 바로 젤린스키와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의 활약 덕이었던 것이다.
특히 젤린스키는 전임 대통령들이 크림반도를 그냥 헌납하고, 동부 반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과 달리 착실하게 우크라이나 군의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2014년 돈바스 내전때와는 달리 러시아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지연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미국과 EU 영국의 여론을 완전하게 반전시켜, 의용병과 전투기까지 제공받는 사실상 동맹국이 아닌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푸틴이 처음 젤린스키가 회담을 제의했을때 전쟁 발발전에는 아예 전화도 안받고, 발발후에는 우크라이나 군이 무장을 해제해야만 회담에 응하겠다는 오만함을 보이다가, 이제는 조건없는 회담을 하자는 제의를 먼저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젤린스키의 지도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젤린스키가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이 있다면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젤린스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필연적이었을거라 본다. 혹자는 민스크 협정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준수하지 않았음을 이야기 하지만, 평소 돈바스 지역 뉴스를 눈여겨본 사람은 알것이다. 돈바스 반군과 반군인척하고 돈바스 지역에 진주한 러시아 군과 러시아 정부 용병들 자체가 민스크 협정을 지킬 의지 자체가 없었음을 말이다.
그 유명한 도네츠크 국제 공항에서의 우크라이나 공수부대의 마지막 저항 그리고 전멸은 민스크 협정 체결 이후 발생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나토 가입 역시, 한때 러시아에 구 소비에트에 강제병합당했던, 그리고 스탈린의 수탈로 유례가 없는 대기근으로 아사를 겪었던 우크라이나 역사를 기억하는 대다수 우크라이나 인이 바라는 것으로 그 어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