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매우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1990년대의 문화 향유 기억을 가지고 있는 현재 30대, 40대들에게 당시의 일본문화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당시 일본 엔터테인먼트는 게임, 아니메, J-Pop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의 최정점에 달해 있었고, 20세기 말이라는 특수한 시대상도 겹쳐 있었으며 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장기경기침체의 여파가 문화계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콘솔의 차세대 기종으로 플랫폼을 변경해서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 7 - 이하 FF7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라고 부를 만 했습니다. 미려한 그래픽(지금 보면 구리기 짝이 없는 목각인형 폴리곤이지만 ;)과 방대한 분량, 충격적인 스토리 구성 등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지요. 저만 해도 이전까지는 JRPG(일본식 RPG)에 큰 관심이 없었고 일본어도 잘 몰랐으나 FF7을 시작으로 하나씩 플레이하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레 일본어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FF7이 저의 가장 큰 일본어 선생님이었다고나 할까요.
FF7은 FF 시리즈 중에서도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임 내적으로도 그렇고, 외적으로도 현재 FF 시리즈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후의 출시작들은 7의 위상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FF8은 뮤직비디오만 잘 만든 역대급 망작이라고 보았고, FF9와 FF10은 꽤 괜찮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5부터 7까지의 셋을 가장 높이 칩니다.) 게다가 흥행성적에 비해 후대 관점으로 너무나도 아쉬운 그래픽 수준 등이 더해져 FF7의 리메이크설은 PS2 시절부터 끊이지 않았고, 출시 후 20년이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 기대에 부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리메이크에 대한 팬들의 욕구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 나온 리메이크작의 퀄리티는 기대를 만족할까요?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저는 "아니올시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는 FF7R 뿐만이 아닌, 어떻게 보면 일본 영상문화 전체에 대한 디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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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장점부터 말하면,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진일보했습니다. 우선 혁신된 전투 시스템. FF10까지의 시리즈에 전통적으로 유지된 턴제 배틀 (ATB 또한 턴제배틀의 개선작에 지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은 포기하고 액션성을 대폭으로 넣었습니다. 전통적인 FF 시리즈보다는 오히려 동사의 성검전설 시리즈를 연상시킨다고 해야할까요? 이에 대하여 호불호가 갈린다고는 하나 언제까지 전통적인 턴제 배틀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이해하며, 충분히 긍정적으로 보고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너무 쉬워서 문제였던 원작의 전투 난이도 또한 개선됐고, FF7의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개선이 턴제 배틀보다는 더 어울려보입니다. 아울러 배경음악의 혁신은 음악 리메이크의 교과서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스전 음악인 更に闘う者達=Those Who Fight Further 가 자주 나오지 않는 건 아쉬웠습니다만)
또한 비중이 없던 조연들의 캐릭터성이 개선된 점과 스토리의 인과성이 강화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7번가 플레이트 붕괴에 대하여 턱스 일원들이 느끼는 회의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할까요? 아울러 미드갈(미드가르)의 어두운 분위기가 더 강조되었고, 이에 대비하여 에어리스의 근거지(교회, 집)의 밝고 화사함이 더 부각된 점은 칭찬할 만 합니다. 전체 스토리에서 에어리스의 비중을 생각해보면 말이죠.
에어리스네 집 전경. 가끔씩 마테리아가 떨어져있는 건 원작과 같다.
에어리스는 꽃보다 저기 떨어진 마테리아 주워서 팔면 더 돈을 벌지 않을까 (...)
그저 그런 변화도 있었습니다. 장점도 아니지만 단점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이를테면 바이크 체이스는 상당히 재미났으나 그렇다고 엄청 발전했다고 부르기는 조금 부족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울러 새로 등장한 "필러"는 아직까지 이걸 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빼도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스토리 전개가 될 것 같고, 오히려 상당부분의 전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필러가 우와아앙 하고 몰려오면서 대충 때워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 이제 단점을 봅시다. 일단 분할 출시를 염두에 둬서 그런지 미드갈 분량이 너무 심하게 확장 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고, 빼도 스토리랑 아무 관계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열차의 무덤 부분에서는 실시간으로 입에서 험한 말이 쏟아져나왔네요. 월마켓의 지하투기장도 좀 거슬리긴 했으나, 다른 부분에서 내용없는 분량 불리기가 너무 많으니 투기장은 애교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뭐, 어쨌든 제작사에서는 이익을 내야하고, 그러려고 무리하게라도 분할해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분량 불리기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
가장 치명적이라고 보는 점은, "리얼리티 추구의 방향을 잡아도 너무 잘못 잡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게임 발전사에서 리얼리티와 그래픽 기술을 가장 많이 따진 게임 시리즈로 셋을 듭니다만 -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 - 사실 FF 시리즈는 다른 둘만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버추어 파이터 3와 메탈기어 솔리드 4는 둘 다 리얼리티 혹은 영화적 연출을 너무 중시하다 게임성에서 손해를 보았다는 심각한 문제를 떠안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FF7R은 문제가 다릅니다. 발전된 그래픽만큼 리얼리티를 얻으려다 다른 부분에서 너무 맞지 않으면서 오히려 리얼리티가 사라지는 느낌이 너무 강했습니다. 상당부분 영화적인 연출이 들어갔는데, 이게 "일본영화" 혹은 "일본드라마", 즉 일본 영상물의 표현 클리셰라는 게 문제가 되겠네요. 난데없이 등장하는 과도한 설교나 현학적인 설명장면은 일본 영상물에서 특히 자주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일본 영상물에서 오히려 리얼리티를 삭감시켜버리는 부분으로 봐서 선호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허영만 화백의 만화에서 이런 부분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는 한데, 허영만 화백의 만화작품은 화풍부터 리얼리티랑은 거리가 있어서 큰 문제가 안된다는 생각이거든요.
표현기술은 최신스러운데 연출은 일본영화의 안좋은 표현기법까지 들어가 있고, 거기에 고전 게임이나 고전 판타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야기 전개까지 들어가니 결국 구시대적인 이야기를 최신 기술로 표현하여 쓸데없이 과하게 무게잡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모두 힘을 합쳐 악을 무찌르는 - 하지만 주인공은 정해져있는 - 고전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퀘어 게임을 하고있는지 게임아츠의 게임을 하고있는지, 반지의 제왕 초반부를 보자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면 너무 심한 과장일까요? 이런 부분은 기획자의 내면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차기작에서도 그다지 개선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엔딩을 보고 난 후의 결론은, 최신기술로 미려하게 표현하였지만 정작 나온 결과물은 로도스도 전기 아닌가 하는 것. (개인적으로 미즈노 료의 로도스도 전기 시리즈를 극렬하게 디스하는 입장입니다.) 단지 저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더 짜증나는 사실은, 원작을 매우 재미있게 플레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리메이크 차기작이 나오면 생각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도 결국 구입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젠장!
영화 같은 게임을 표방하며 그래픽은 이제 영화 이상이 되었는데
과연 이 게임이 영화로써 어떤가 하면 좀 아쉽습니다
스토리 진행, 대사와 연출들이 어딘지 촌스러운...
원작의 시절에는 유저들에게 게임의 영역에서 그정도여도 됐다면
이제는 그 이상의 영역이 되버린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특히 아쉬운 것은 예전의 스퀘어 게임은 고상한 맛이 없어지고 있는 점이네요
섬세하고 고급스런 표현이 있었는데 말이죠...